잊힌 우리의 반쪽 역사
잊힌 우리의 반쪽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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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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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3월 1일 서울 시내는 흥분한 군중들의 힘찬 만세 소리로 들끓었다. 3·1운동은 점차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한국 역사상 최대 민족운동으로 발전했다. 이후 계속되는 독립운동과 함께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우리는 나라는 되찾았으나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 여성 독립운동가요? 
유관순 열사요. 그 외엔 잘…"

 "여성 독립운동가에는 누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유관순 열사"를 외친 최정빈(화학공학 2) 학생은 "그 외엔 잘 모르겠다"며 다음 대답을 얼버무렸다. 반면 남성 독립운동가를 묻자 "김구, 안중근, 윤봉길, 이회영…."이라며 4명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최정빈 학생은 "학교에서 독립운동가에 대해 배울 때 여성 독립운동가보다 남성 독립운동가가 훨씬 많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최정빈 학생의 경우만은 아니다. 실제로 현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독립운동가는 대부분 남성 독립운동가의 활동에 국한돼있다. 부산 서면 한 서점에서 중·고등학생 한국사 교과서 속 등장하는 남녀 독립운동가 비율을 살펴본 결과 출판사 총 7개 중 2곳 만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내용을 기재했다. 그러나 그 2곳 또한 유관순 열사의 언급이 전부였다. 

여성이기에 지워진 많은 이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 외에도 우리나라를 위해 몸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들이 많다. 남자현, 이신애, 윤형숙, 권기옥, 연미당, 박차정, 김마리아, 정정화, 이혜련, 오광심, 조신성, 지복영, 안경신, 안수산 (사진순서:왼쪽부터 아래로) 등이 그 주인공이다.

 남자현 의사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의 실제 캐릭터로 알려져 있다. 1926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작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으며, 1933년 60세가 넘은 나이에 관동군 사령관 부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다 체포됐다. 1932년엔 국제연맹조사단이 만주 사변 진상조사를 위해 만주를 방문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헝겊에 '조선독립원'이라고 쓴 일화 또한 유명하다. 손가락을 3번이나 자르고도 독립 의지를 꺾지 않은  주체적인 독립운동가다.

 '대륙의 들꽃'이라고 불리는 박차정 의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여러 차례 체포됐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글을 라디오와 잡지에 싣기도 했으며 무장 독립 투쟁에 직접 참전했다. 신간회의 자매단체였던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광주 항일 학생운동을 도왔고 조선 의용대 복무 단장으로 여성 대원들과 함께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 1939년 2월, 중국 장시성 곤륜산 전투에 의용대 여성 대원으로 참가했다가 총상을 입었다. 후유증을 앓던 그녀는 1944년 광복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았다. 

 동풍신 열사는 1919년 17세라는 나이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시위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힌 열사는 재판에서 "만세를 부르다 총살된 아버지를 대신해 만세를 불렀다"고 말했다. 열사는 2년 뒤인 1921년 건강 악화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윤형숙 열사는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에 앞장서며 '남도의 유관순'으로 불렸다. 태극기를 든 팔이 잘리자 반대편 손으로 다시 태극기를 집어 들어 만세를 불렀다는 일화는 독립을 향한 그의 강한 열망을 짐작게 한다.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잡혀가 옥살이를 하다 석방된 후에는 고향인 전남 여수에서 학생 교육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에서 주최한 '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후보 48명 중 여성은 7명뿐이다. 후보는 지난 5년간 빅데이터(뉴스, 블로그, 트위터) 139억 건을 분석해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순으로 선정됐다. 여성 후보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워진 존재를 또렷이 새기다

 이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생 연합 취업동아리 '새라'는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알리고 역사에 기록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올해 5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진행한 'Brochure Project 1 : 무궁화 활짝 피우다'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들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일상에서 기억할 수 있도록 '여성 독립운동가 희생의 결과인 태극과 무궁화를 결합한 문양'을 새긴 카드지갑과 배지, 스티커를 제작 판매하는 기획을 추진했다. 이진솔 공동대표는 상품 제작비를 제외한 순수익의 50%는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에 기부해 여성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소책자의 소개비로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목표 금액 30만 원의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펀딩 3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하고, 펀딩이 끝난 지금 4,216만 7,999원을 달성했다. 

 펀딩에 참여한 이상철 씨는 "나라가 잊었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며 "기성세대가 지나친 역사 과제를 대학생들이 해결하려는 게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덧붙여 "펀딩을 통해 여성 독립운동가 보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앞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의 독립항쟁이 정당하게 평가되고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가 추진한 『여성독립운동가 인물사전』 제작·출간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같은 취지다. 연구소는 2009년 창립 이래로 여성 독립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지난 7월 15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구소 측은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독립운동가 12분을 선정해 달력을 제작·배포하고 있지만 매년 여성은 단 1명만 선정되고 있다"며 "이번 펀딩을 통해 전 세대가 여성 영웅의 역사를 공감하고 그들의 독립정신을 함께 알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까지 진행된 펀딩은 목표액을 넘은 775만 4,000원을 달성했다.

모두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으려면

 펀딩에 이어,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73돌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93명(애국장 31명, 애족장 62명), 건국포장 26명, 대통령 표창 58명 등 177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을 수여했다. 이번 포상은 여성 26명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에서 예년과 다르다. 지난해 삼일절 기념 포상에서 75명의 독립유공자 중 여성은 6명에 불과했다. 포상받은 여성 독립유공자가 일 년 만에 6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성 중심 보훈 사업을 통해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를 가려왔던 과거와는 상당 부분 달라진 결과다

 정부의 변화는 민간의 움직임에 힘을 더했다. 지난달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추모문화제는 국제심포지엄과 청소년 창작연극 등 다양한 볼거리로 구성됐다. 광복절 당일이던 15일에는 시민참여프로그램과 8·15 기념식, 청소년 빠른 말 노래(랩) 자랑대회 순으로 진행됐다. 초상화 및 자료전시회는 추모문화제 기간 내내 공개됐다. 

 익명을 요구한 추모문화제 참여자 A씨는 "이번 추모문화제의 의미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추모문화제를 통해 그들의 발자취를 직접 마주하며 감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덧붙여 "판소리 창에서 '해방이오'라고 외치는 대목이 과거의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겹쳐 보여 뭉클했다"고 전했다. 

 추모문화제를 주최한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은 "그동안 독립운동가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감사는 대부분 남성 독립운동가에 치우쳐 있었다"며 "이번 추모문화제를 통해 모두, 특히 여성에게 민족의 자주독립을 향한 정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역사 속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을 살려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교양물을 많이 접하고, 역사와 현실에 대해 넓고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현재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추모헌공차례, 초상화 전시, 추모대행진, 대중교육강좌, 대형 현수막 게시, 소식지 발간 등을 통해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우수현·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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