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무기력해지는 나, 번아웃인가요?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나, 번아웃인가요?
  • 조은아 기자
  • 승인 2018.09.03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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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 최윤지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 최윤지 기자

□ 이전에 즐거웠던 일들이 요즘은 무미건조하고 삶의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 아침에 눈뜰 때마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부터 걱정한다. 
□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 전에는 그냥 넘길 수 있던 일들이 요즘엔 짜증나고 화를 참지 못한다.
□ 기억력이 옛날 같지 않고 깜빡깜빡한다.

 위 체크리스트는 '캠퍼스 잡앤조이'에서 게시한 '번아웃 증후군일까 아닐까' 자가진단 테스트다. 다섯 가지 항목 중 1~3개 정도만 해당해도 '삶의 의욕이 꺼져가는 단계'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 게시물은 말한다.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뉴욕의 정신 분석가 프로이덴버거가 '상담가들의 소진(Burnout of Staffs)'(Herbert J. Freudenberge, 1974)이라는 논문에서 상담 전문가들의 무기력함을 설명하기 위해 '소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프로이덴버거는 번아웃을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직종과 무관하게 과도한 업무로 인한 '심신의 에너지 고갈', '무관심 또는 냉소적', '업무 성과 저하'의 증상 등도 번아웃 증후군에 해당된다.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

 번아웃 증후군의 희생자는 주로 직장인으로 대표된다.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직장인 1,032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88.6%, 즉 914명이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김유겸(21) 씨는 입사 초기, 난생처음 가져보는 직장에 뿌듯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CS(Customer Satisfaction)업무의 특성상 개인 실적이 급여로 이어지기에 직장 내 분위기가 상당히 개인주의였고, 고객의 항의 전화를 받는 일이 일상이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고 한다. 요즘 팀원들과 "퇴사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그는 출근과 귀가만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방식과 과도한 업무 등이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역시 번아웃으로부터 안전하지는 않다. 지난 2015년 5월 20일에 방영된 KBS2TV <추적 60분-탈출구 없는 피로 사회, 번아웃 증후군> 편에서 조사한 대학생의 번아웃 지수를 보면, 참가자 21명 중 16명이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거나 번아웃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또한 취업준비생 1,098명을 대상으로 한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7%(955명)가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우리 대학교 이창희(정치외교학 2) 학생은 외부 대회 참가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번아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번아웃을 만나면 전원이 나가듯 내 몸을 지탱하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하다. 움직이기도 생각하기도 싫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움이 필요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가 어려웠다"며 "해야 할 일을 견뎌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초라했고 내 상태를 주변에서 알게 됐을 때 그 시선이 좋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올해 2월 우리 대학을 졸업해 현재는 취업준비 중인 K 씨는 "2030세대의 번아웃 증후군이 노력보다 결과가 따라오기 힘든 젊은 세대의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의 성취를 현재 청년들이 따라가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보다는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으나 기성세대의 성취 및 목표를 따라가려 하니 현재 청년들이 결핍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YOLO 문화와 같이 개인적이고 소비적인 가치관이 유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임을 지적했다. 

 워라밸이 번아웃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워라밸'은 'Work-life Balance'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다. 잦은 야근, 높은 업무 강도, SNS를 통한 상사의 업무 지시 등으로 개인적인 삶이 없어진 현대사회에서 워라밸은 직업이나 일터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됐다.

 최근 워라밸을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은 다양하지만, 그중 국민의 워라밸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시도가 단연 눈에 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해 7월 워라밸의 제고를 위해 '일·가정 양립과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근무 혁신 10대 제안'을 내놓았다.

 더불어 올해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도 주목할 만하다. 법정 근로 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16시간 단축한 현행 개정안은 기업 규모별로 그 시행시기를 차등 적용 중에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퇴근 후 문화센터를 찾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등 야근에 고통 받던 이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한 노력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따라 회식과 같은 '직장 문화'는 줄고 운동이나 자기계발과 같은 '개인의 삶을 위한 문화'가 늘어나면서 관련 산업도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이처럼 워라밸을 위한 움직임에 생활반경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워라밸을 위한 현재의 제도적 움직임이 2030세대가 번아웃을 극복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번아웃은 주로 경제적인 요인과 관련돼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대부분의 번아웃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과도한 노동이나 역할을 떠맡게 돼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과도한 노동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번아웃을 감소하는 데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긍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는 이어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무시간에 관련한 것이므로 직장인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정착되면 사람들이 근무 시간 외의 잔여 시간을 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 투자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며 근무시간의 제도적 변화가 직장인을 제외한 사람들의 워라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번아웃, 해결방안은? 

 근무시간의 제도적 단축을 통한 '개인의 삶을 돌보는 문화의 형성'은 분명 기대할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2030세대의 번아웃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윤인진 교수는 "개인의 인식 전환 및 행동의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 사회가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번아웃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인권·기본권과도 맞닿아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특히 대학생이 '번아웃 취약집단'에 내몰리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위한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생계를 위해 학업과 근로를 병행하는 학생들을 번아웃 취약집단으로 꼽은 그는 이들의 압박감을 낮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에 학생이 학업과 근로를 병행하더라도 학생의 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근로 시간을 제한하는 제도가 존재한다"며 "필요에 따라 제도적으로 근무 시간을 규정하는 것도 학생의 번아웃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취업준비생의 번아웃 해결책에 관해서는 현재 일부 기업과 기관들로 인원이 몰리는 편향 현상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취업준비생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기대를 의식 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기대가 충족될 만한 일자리를 찾다보니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고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이를 해결할만한 정부 차원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일부 대기업이나 기관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의 악순환을 끊어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속되는 구직난과 이로 인한 취업준비생들의 번아웃 증후군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과 농어업 등의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며 "대기업을 다니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자신의 취업준비 기간을 부끄럽지 않게 여길 정부 차원의 배려 및 근무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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