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 겨울, 우리는 공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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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주 기자
  • 승인 2018.10.10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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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편집국장
박현주 편집국장

선생님들의 감독이 느슨해진 고2 초 겨울이었다. PMP에 야동을 넣어와 야간자율학습시간(이하 야자)에 돌려보는 것이 우리 학년 내 일종의 유행이었는데, 그 스타트를 끊은 건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의 유출 영상이었다. 실시간 인기검색어와 뉴스, SNS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영상 또한 이리저리 공유되고 떠돌아다녔다. 사람들은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탓하며 영상을 품평했고, 피해자는 지금도 방송계에 재기하지 못했다. 당시 부반장으로서 야자시간을 감독해야했던 필자는 유출된 영상인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친구의 작은 일탈을 함께 하지 못하면 최소한 웃어넘기기라도 해야 '쿨'한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쉬는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PMP 옆으로 우르르 몰려가 함께 구경했다. 그들에게 그 영상은 단지 한낱 추억이자 재미에 불과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걸그룹 출신 연예인 A씨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인간의 치정싸움인 줄 알았던 사건 초반과 달리, 사실은 가해자가 앙심을 품고 A 씨의 영상을 유출시키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언론은 이를 피해자 이름을 따 'A 사건'이라 보도했고 가해자는 이니셜 혹은  'A의 남자친구'로 지칭될 뿐이었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영상을 찾거나 영상이 유출되지 않았음을 아쉬워하는 2차 가해가 올라왔다.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일, 인기 검색어에는 A와 'A 유출 영상' 대신 가해자의 이름과 '리벤지 포르노'가 등장했다. 연대의 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피해자의 이름을 대서특필하던 언론에 가해자의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아직도 야자시간 그들이 무릎담요에 숨겨 보던 화면 속 피해자 얼굴이 선명히 기억난다. 협박을 당하고도 논란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며 저자세로 일관했던 A의 얼굴이 그에 오버랩된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이번 사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겨울, 우리는 가해자거나 방관자였으며 공범이었다. 다가온 가을은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연대의 계절이 되길 간곡히 바란다. 방관자였던 나의 겨울을 반성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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