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규칙' 좋아하는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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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주 기자
  • 승인 2018.11.12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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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편집국장
박현주 편집국장

1517년 10월 독일의 시골마을 교회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이라는 대자보가 붙는다. 젊은 수도사 마틴 루터가 쓴 이 글은 교회의 권위가 지배하던 당시 사람들의 사상에 돌을 던진다. 바로 종교개혁이다.

 대자보 문화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으로 역할해왔다. 특히 대학사회에서 말이다.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도 대학가에서 시작됐다. 미투운동의 전개를 견인한 것 또한 대자보의 몫이 크다. 그러나 시간표 앱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에는 '승인 도장 없어서 찢어버렸다'며 대자보 훼손을 고백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학내에서 게시물 부착 승인도장을 받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 소속, 학번, 이름과 연락처까지 작성해야한다. 아웃팅을 두려워하거나 주류 혹은 권력자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쉬이 이 과정을 밟을 수 있을까? 학생들이 직접 학생회실에 찾아가지 못하고 익명을 통해 학생회의 회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얼굴은 권력이다. 정확히 말하면 존재가 권력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로 부정당하기 쉬운 소수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물론 학교의 미화를 위해 게시물을 관리해야 하는 학생회와 관리과의 방침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대자보를 멋대로 훼손한 사람들이 '규칙'을 들먹이며 정당화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차라리 솔직히 고백하라. 승인도장이 없다거나 게시판이 깨끗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다른 의견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각 게시판에는 동아리 홍보물을 비롯해 심지어 상업 포스터까지 도장이 없는 채로 붙어있지만 아무도 이를 훼손하지 않는다. 학생회관에는 해묵은 동아리 홍보벽보가 아직도 붙어있다.

 필자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에 돌을 던질 대자보를 원한다. 반대가, 질의가, 비판이 그리고 의견이 잠식당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대자보 하나 없이 깔끔한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의견을 개진한 대자보를 멋대로 수거하는 일은 생각의 수거이자 소통과 공론장의 수거다. 

 '규칙' 좋아하는 당신께 알려드린다. 형법 366조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 문서 등을 손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내 생각과 다르다거나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대자보를 찢어왔다면, 일단 거기 그 손 떼보시라. 당신의 손은 방금 공론장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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