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회고록, '2018 부산비엔날레'를 만나다
분열의 회고록, '2018 부산비엔날레'를 만나다
  • 강주희 기자
  • 승인 2018.11.12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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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은 전쟁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지는 것만큼이나 끔찍함을 느끼게 됐다."

 영국의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남긴 말이다. 전쟁이나 식민지화, 적대적 외교 관계 때문에 수많은 국가는 분단됐고, 같은 민족끼리 무리 지어 살아가던 지역들도 분열을 겪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 곳곳에는 분열된 영토에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영토가 분열·분할되는 과정은 일반 대중에게 어떠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어떤 새로운 조건을 부여하는가?' 이 질문은 지난 11일 막을 내린 '2018 부산비엔날레'(이하 부산비엔날레)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부산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미술제로 손꼽힌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라는 부제로 '분열된 영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아 '분열된 영토'에 의해 파생되는 문제점에 대해 다뤘다. 구체적으로 △국가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전쟁과 강제이주에 따른 외상 장애 △국가 주도의 통제로 인해 분할된 지역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숫자로 보는 분열

 70년, 하나의 땅덩어리가 둘로 분리된 기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눠진 현재 남북의 모습은 역사 속 긴 세월 동안 하나였단 말이 무색해 보인다. 하지만 올해 남과 북은 여느 때보다 잦은 교류로 변화의 기류를 보였다. 지난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과 관련해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문화교류 증대 △이산가족 문제해결 △비핵화 추진 등을 발표하며 남과 북의 평화 시대 도래를 언급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번 부산비엔날레 시기와 맞물려 분단과 관련된 125점의 작품은 더욱 주목받았다.

 부산비엔날레에서 화제가 된 특이한 전시작품이 있다. 바로 초코파이다. 바닥에 겹겹이 쌓여 올려진 초코파이는 소통과 평화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표현됐다. 이는 천민정 작가의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라는 관객참여형 작품이다. 관객들은 전시된 초코파이를 바로 먹을 수 있으며, 제과 회사인 오리온은 이번 전시를 위해 초코파이 약 10만 개를 후원했다. 북한에서 인기 있는 암거래 품목인 초코파이, 포장에 적힌 ' 情(정)'과 '새로운 시작'이 남북한 사이에 정이 퍼지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람객들은 초코파이를 먹으며 남북의 평화를 염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천민정 작가는 <안녕 미사일>, <행복한 북한 아이들>도 선보이며 현재 북한의 핵무기를 희화화하며 강렬하게 표현했다. 

 한국 전쟁 당시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매월 8천만 장의 정치적 선전용 전단이 살포됐다. 류연복과 김용태 작가의 <DMZ-메아리>는 이를 나타낸 작품이다. 문자 DMZ를 가로로 이등분하여 상단부와 하단부 각각에 남한 및 북한이 서로를 향해 보냈던 실제 선전물로 구성했다.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은 이데올로기 갈등의 상징인 DMZ 사이로 남북이 일방적으로 소리쳤던 당시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시장 바닥 한쪽에 세워진 무수한 모래덩어리는 비무장지대에 묻힌 지뢰를 묘사했다. 이는 권하윤 작가의 <489년>이라는 작품이다. 백만여 개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데 걸릴 시간이 바로 489년이다. 지난 9월 남북은 '평양공동선언'에서 비무장지대 문화재 및 유해발굴에 앞서 지뢰 제거 작업을 논의했으며 현재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임민욱 작가의 <만일의 약속>은 장장 453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를 재현한 설치미술이다. 작가는 분열된 영토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슬픔을 표현했다. 또한 공영방송 영상 조각들을 그러모아 보여줌으로써 분단 사회 내에서 미디어의 역할 및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천민정 -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천민정 -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류연복과 김용태 - 'DMZ-메아리'
류연복과 김용태 - 'DMZ-메아리'

 냉전 시대의 잔상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으며 아무 할 말이 없다는 말을 하는 중이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기 전, 거대한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국경지대에 설치된 선전용 대형 확성기의 모습을 본뜬 이 조형물은 냉전 당시 국경 너머 사람들을 동요시키기 위해 사용된 음향 시스템이다. 하지만 모르의 스피커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대신 영향력 있는 작가들의 말을 인용하여 '진실한 메시지'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참여작가 중 유일한 일본 작가인 유이치로 타무라의 <거미줄>은 작가가 수년간 수집한 '스카잔 점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관객이 본인의 취향에 따라 작품의 점퍼를 직접 입어볼 수 있다. 스카잔 점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들의 인기 있는 수집품이었다. 점퍼에는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의 지리적 형상이 새겨져 있어 냉전 시대에 미국이 동아시아에 끼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시사한다. 그 뒤 벽에는 "I've spent my time in hell"이라는 문장이 빛나고 있는데 이는 "나에게 전쟁은 지옥이었다"를 의미한다. 작가는 군인들 때문에 지옥과 같았다고 묘사되는 냉전 시기의 상황이 오늘날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김태희(21) 씨는 전시 관람 후 "비엔날레를 보고 분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분단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만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비록'이란 부사 뒤에는 긍정문이 오기 마련이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 분열된 영토와 마음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외그르 하이저 전시 큐레이터는 "이번 비엔날레는 정치적 분열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고 영혼을 갉아먹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고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밝혔다. 

 

천민정 - '안녕 미사일'
천민정 - '안녕 미사일'
오귀스탱 모르 - '나는 할 말이 없다'
오귀스탱 모르 - '나는 할 말이 없다'
유이치로 타무라 - '거미줄'
유이치로 타무라 - '거미줄'
임민욱 - '만일의 약속'
임민욱 - '만일의 약속'

 

강주희 기자
1714242@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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