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길, 안심되시나요?
안심길, 안심되시나요?
  • 우수현 기자
  • 승인 2018.11.12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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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가까운 시각, 한 여성이 인적 드문 골목에서 주변을 살피며 귀가한다.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없는 골목 오른쪽엔 어두컴컴한 모텔들이, 왼쪽에는 불 꺼진 낮은 주택 건물들이 소리 없이 서 있다. 하지만 LED 조명의 밝은 빛과 바로 밑에 함께 붙어있는 안심벨, 그리고 주택 벽면에 그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벽화가 여성의 불안함을 달래준다. 바로 '셉테드 안심길'이다. 

구포동 구명마을 안심길 지도가 안심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구포동 구명마을 안심길 지도가 안심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구포역과 구명역으로 안내해주는 안내판과 볼록거울
구포역과 구명역으로 안내해주는 안내판과 볼록거울

 당신의 귀갓길, 안심되십니까?

 최근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실제 대검찰청 '2017년 범죄분석'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6년도 살인범죄는 948건으로 인구 10만 명당 1.8건의 살인범죄가 발생했고, 성폭력범죄는 2만 9,357건으로 인구 10만 명당 56.8건 발생했다. 또한 폭행 및 상해범죄는 22만 8,710건으로 인구 10만 명당 442.4건 발생했다. 방범용 CCTV나 경찰·경비원 순찰을 확대하는 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지만, 범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시민들의 불안감만 늘어갔다. 이러한 전통적인 범죄예방 대책이 한계에 부딪힌 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환경 개선을 통한 범죄 예방 디자인 'CPTED(셉테드)'다.

 셉테드란 도심 취약 지역의 디자인을 개선해 범행기회를 차단하는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을 말한다. 공공 도시 생활공간의 설계에서부터 범죄 예방을 위해 다양한 안전시설 및 수단을 적용한 도시계획 및 건축설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셉테드를 이용한 안심길은 전국 곳곳에서 지난 4년간 꾸준히 적용돼왔다.

 셉테드는 벽화 이외에도 다양한 안전시설과 수단을 적용해 범죄를 예방한다. 공공장소 주변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을 없애 모두의 감시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거나 여러 디자인으로 공적인 장소임을 일깨워 경각심을 일으키고, 보행자의 동선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유도해 우범지대로 빠지지 않고 사전에 범죄를 차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 외에도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주변에 낮은 나무를 심어 시야를 확보 △CCTV와 가로등 설치 △지하주차장의 여성 전용 주차공간을 건물 출입문과 가깝게 배치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밖의 가스 배관을 사람이 오를 수 없게 미끄러운 재질로 제작 △골목에 가로등 설치 △지하철 등 공공장소 엘리베이터를 내부가 보이도록 투명유리로 설치 등이 있다.

 셉테드 디자인의 범죄예방효과는 '깨진 유리창 이론'과 관련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깨진 건물의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 주변에서 범죄가 늘어난다는 점에 착안해 잘 정돈되지 않은 환경이 범죄를 빈번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정리가 잘 된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셉테드 디자인에서 노란색을 많이 쓰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색이기 때문이다. 

 부산시 셉테드 행복마을, 제대로 운영되고 있나

 부산시는 2010년부터 셉테드를 이용해 범죄 취약 지역을 안전 지역으로 만드는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금정구 부곡동 가마실마을이 부산 제1호 행복마을이다. 북구 구포동 구명마을도 잘 알려진 행복마을 중 하나다. 구포동 구명마을의 안심길은 연두색으로 가득하다. 구명역과 구포역을 이어주는 안심길에는 곳곳에 안심벨이 설치돼있고 좁은 골목 양쪽으로는 연두색 선이 역을 안내하고 있다. 길이 꺾여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볼록거울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부산시에서 지정한 셉테드 행복마을은 △중구 보수동 산아래마을 △동래구 칠산동 복산마을 △영도구 영선동 영선마을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 △부산진구 양정동 양지골마을 △서구 아미동 아미골마을 △남구 감만동 감만이마을 △수영구 남천동 남치이마을 △해운대 우1동 지내마을 △사상구 학장동 붉은디마을 △금정구 부곡동 가마실마을 △사하구 장림동 본동마을 △연제구 거제동 황새알마을 △강서구 강동동 대사1구마을 △북구 구포동 구명마을 △기장군 죽성리 두호마을 등 총 16곳이다.

 그러나 범죄예방을 위한 셉테드가 범죄예방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범죄율을 높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NN <뉴스아이>(2018)에서 셉테드를 적용한 지역의 5대 범죄 발생 건수를 확인해 본 결과, 셉테드가 철거되는 등 확인이 어려운 8개 동을 제외한 30개 동 가운데 지속해서 범죄율이 감소하고 있는 곳은 단 10곳에 불과했다. 오히려 건수가 늘거나 일시적으로 감소한 뒤 다시 유지되는 지역도 있었다. 강서구 강동동 대사1구 행복마을을 개촌한 지난 2014년의 5대 범죄 발생 건수는 1만 명 당 92.5건이었으나 다음 해인 2015년에는 103.6건으로 증가했다. 남구 우암동 또한 셉테드 조성 다음 해 범죄가 오히려 증가했다.

 범죄율이 증가했던 대사1구마을을 방문해보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곳이 많았다. 행복마을마다 안심 카페가 설치돼있는데, 대사1구마을의 안심 카페는 사람이 오래 드나들지 않은 흔적이 가득했다. 

 카페 창문과 간판 곳곳은 물론이고 문을 열기 위한 도어락과 문고리에도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안심길 벽화에 붙어있던 몇몇 스티커가 떨어져 지저분해진 곳도 있었고 벽돌이 부식돼 벽화 주변이 검게 물든 곳도 있었다. 페인팅이 벗겨진 곳도 눈에 띄게 많았으며, 예쁜 벽화 근처 폐가 앞에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해 더욱 음침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에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은 부산 전역에 있는 행복마을과 안심길 전체를 대상으로 합동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일부 행복마을 환경이 훼손되면서 범죄 예방의 효과가 감소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진행된 합동 점검에서 금정구 부곡동에 위치한 가마실마을은 셉테드 시설물의 노후화로 바닥 깨짐, 벽화퇴색 등이 확인돼 예산을 확보해 벽화를 재도색하고 디자인 바닥 포장을 실시해 시설물 보수 조치를 완료했다. 

대사1구마을의 페인트가 벗겨진 벽화
대사1구마을의 페인트가 벗겨진 벽화
대사1구마을의 검게 물든 벽화
대사1구마을의 검게 물든 벽화

 

 셉테드 디자인이 범죄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지는 신라대 이도선(경찰학)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셉테드를 적용한 지역의 5대 범죄 발생 건수가 늘거나 일시적으로 감소하다 다시 유지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현상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1. 부산에서 적용한 셉테드 사업은 셉테드 사업 기간이 짧았고, 예산이 부족해 보다 효율적인 적용과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위한 지자체와 경찰의 협력과 지원이 부족했다. 또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협력 그리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 요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Q2. 셉테드가 범죄를 감소하게 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A2. 셉테드를 적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범죄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셉테드가 지향하는 가치는 범죄예방 및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범죄예방은 범죄자로부터 범죄를 실행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인데, 은폐되고 고립된 공간에 자연적 감시 기회를 향상하고 위험해 보이는 곳을 최소화해 범행 의지를 감소시킨다. 또한 셉테드는 지역 주민들에게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Q3. 셉테드가 발전해 나가야 할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3. 셉테드를 특정 기관이 단독으로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 분야의 전문가 그룹과 경찰, 지자체, 지역주민 등 지역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도시계획, 건축, 범죄, 심리, 조경, 조명, 색채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지역사회의 경찰 및 지자체, 지역주민이 함께 협력하여 최적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Q4.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A4. 범죄는 아주 다양한 요인에 의해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사회의 빈곤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의의 가치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관심이 더욱 강화돼야 하며 재범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교정 및 보호관찰 영역의 조직과 인력의 보완으로 전문성과 실효적 방안을 계속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때 우리 사회는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수현 기자
1700185@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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