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예술로 물든 선박 종합병원, 대평동
[그곳] 예술로 물든 선박 종합병원, 대평동
  • 강주희 기자
  • 승인 2019.03.04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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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깡깡이 마을 탐방기』

흘러간 시간만큼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곳. 기자가 깡깡이 마을 초입에 다다르자 저 멀리 아파트 한 채가 눈에 띈다. 아파트 건물 벽면 전체에 그려진 여성의 자화상.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제목과 함께 깡깡이 아지매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 얼굴에는 삶을 견뎌낸 만큼 자글거리는 주름살이 가득하다. 

 이곳은 19세기 후반, 우리나라 최초로 발동기를 장착한 배를 만든 '다나카 조선소'가 세워졌던 대한민국 근대 조선 산업의 발상지다. 1970~80년대에는 원양어업 붐을 타고 수리조선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이후로도 선박조선업과 수리조선업으로 명성을 떨쳐 "대평동에선 못 고치는 배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아직 전해 내려온다. 우스갯소리로 "새것보다 헌 것이 대접받는 유일한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 시절, 선박의 종합병원이었던 이곳에는 여전히 선박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선박을 수리하고 돌보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한 조선소 옆을 지나다 실제로 깡깡이 질을 하는 아지매들을 만났다. 옛날처럼 아사바(배 옆구리 부분의 녹을 떨어내기 위해 늘어뜨린 줄에 널빤지를 매고 그 위에서 작업하는 것)를 타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페인트칠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작은 체구로 5m가  넘는 선박에 힘껏 페인트를 묻히는 모습은 책 『깡깡이』 속 정은의 엄마를 연상케 했다. 그들의 모습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높은 곳에서 변변한 안전 장비도 없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하는 일이다 보니 그 당시 일을 하다가 낙상사고를 당하거나 난청, 이명, 관절염 같은 직업병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200명 정도이던 깡깡이 아지매가 기계의 발달로 현재는 10~2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금은 주 작업 도구가 깡깡 망치에서 그라인더로 바뀌어 작업 시간이 단축되고, 보호장비를 모두 착용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위험요소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현재도 대평동에는 선박 부품을 제작 및 수리하는 업체가 많다. 그래서인지 대평동 거주민은 대부분 조선 수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기술자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선박 수리로 시끌벅적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조용한 모습이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거리는 조용했고 젊은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또한, 대평동에는 4~5평 남짓 한 집인데 그 안에 여러 개의 가구가 붙어있는 주택들이 흔했다. 이는 영도가 6·25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 살기 시작한 지역이라 지금도 당시의 피난민 주택이 남아있는 것이다.

 마을 중심길인 '대평로'를 따라 걷다 보니 오래된 마을이 갖는 아날로그 감성이 배어났다. '카페'가 아닌 '다방'이라고 쓰인 간판, 길목에 늘어선 녹슨 고철 덩어리들이 그랬다. 신기하게도 골목 사이사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흥미로운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현재 깡깡이 마을은 '깡깡이예술마을 공공 예술프로젝트'로 마을 전체가 예술 동네로 탈바꿈 중이다. 공업지역인 마을은 주민들이 이용할 편의시설이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수리조선 공업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 바다로 둘러싸인 환경적 특성을 고려해 녹지조성 및 공공시설물 등을 확충해 독특한 마을 경관을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깡깡깡깡…,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어. 깡깡깡깡…"- 책 『깡깡이』 中 - 

 옛날만큼 조선소에서 더는 깡깡이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지 않는다. 울고 싶을 때는 울음소리처럼, 기쁠 때는 노랫소리처럼 들리던 깡깡이 소리. 다시 한번, 희망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지르는 함성처럼 들리는 날이 오길 바라는 이곳은 '깡깡이 마을'이다.

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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