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3 2019, 우리 사직으로 가볼까
V3 2019, 우리 사직으로 가볼까
  • 김장윤 기자
  • 승인 2019.04.01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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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부산'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야구 도시 부산'을 줄인 말로 부산의 남다른 야구 사랑을 보여준다. 구도부산에 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부산의 거인, 롯데 자이언츠는 'One team Giants, V3 2019'(V3는 롯데 자이언츠의 세 번째 우승을 뜻함)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19 프로야구 정규시즌에 뛰어들었다. 올해도 홈팀 롯데를 향한 부산시민들의 응원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뜨겁다. 특히 롯데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구장'은 올해도 야구팬들로 인산인해다. 부산은 어쩌다가 야구에 빠지게 됐을까.

지난달 23일,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키움 히어로즈의 개막전이 열렸다.
지난달 23일,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키움 히어로즈의 개막전이 열렸다.
사진 = 우수현 기자

부산의 야구사랑, 언제부터 시작됐나

 1982년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팀 전환으로 시작된 부산의 야구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지난달 23일 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에서 2만 4,500명의 시민들이 사직구장을 찾았다. 부산의 야구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에 야구가 도입되기 시작한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국야구는 국내 최초의 팀인 '황성기독교청년회 야구단'(이하 YMCA 야구단)이 창설된 1905년을 시작으로 본다. 당시 YMCA 선교사였던 필립 질레트는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야구를 전수했다. 그 당시 야구는 서양 문물을 신기하게 생각한 조선인들이 공을 던지고 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에 야구를 도입한 건 일본인들이다. 당시 대륙 진출의 야욕을 가지고 있던 일본은 한반도 곳곳에 철도를 부설했는데, 역마다 야구팀을 창설했다. 일본의 대륙진출 거점이던 부산도 이때 야구가 처음 보급됐다.

 부산의 경우 일본인 팀 여러 개가 1900년대 이전부터 이미 활동 중이었으며, 일본인 팀이 경기하다 선수가 부족할 때 자신들이 고용한 조선인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함께 경기를 하기도 했다. YMCA 야구단이 우리나라 최초 야구팀이라 불리지만 부산은 그전부터 항만·철도의 발전과 함께 야구의 역사가 시작됐다. 실제로 YMCA 야구단 창설 이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 대한 신문 기사도 존재한다.

 그러던 부산야구는 1945년 광복 이후 황금기를 맞이한다. 각종 전국 대회에서 부산 출신 팀들이 연거푸 우승하기도 했으며, 1949년에는 전국 대회인 전국 중등학교 초청 야구 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부산의 야구사랑은 1982년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야구단으로 전환하면서 더욱 불타기 시작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1991년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시즌 100만 관중 입장을 달성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2009년에는 약 130만 명이 롯데의 경기를 보기위해 야구장을 찾아 단일시즌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부산 야구에 한 획을 그은 '동아대학교 야구'

 1948년에 창단한 우리 대학교 야구부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국대학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총 5회의 우승과 2회의 준우승 성적을 기록했다. 대통령배에서는 1983년과 1991년, 총 2번의 우승을 했다. 부산 야구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 야구부를 진흥시킨 야구의 거장들을 만나보자.

[동아대를 전국 정상으로 이끈 안영필] 
 우리 대학 야구부는 1960년대 들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0년 전국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61년 추계 연맹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를 이끈 사람이 바로 안영필 감독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그는 중학교 때부터 남달랐다. 안 감독은 동래중학교에서 3루수, 8번 타자로 활약했다. 이후 우리 대학 야구부 감독, 야구부장 등을 맡았고, 체육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우리 대학은 물론 한국 대학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그가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한 1961년, 우리 대학 야구부는 전국대회 우승 8회, 준우승 12회의 눈부신 성적을 달성하며 대학 야구 정상에 올랐다. 

 안 감독의 야구에 대한 기여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인재를 보는 눈도 남달랐다. 당시 실업 야구 철도청 야구단에서 뛰고 있던 임호균 선수를 우리 대학으로 영입했다. 이후 그는 정상급 투수로 성장해 1982년 서울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0점대에 가까운 방어율로 우리나라가 우승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롯데 자이언츠 초대 감독 박영길]
 박영길 감독은 야구 최고 명문 중 하나인 경남고에서 1루수로 활약했고 우리 대학 동문이다. 박 감독은 충무초에 재학 당시 교장에게 야구를 권유받았다. 당시 충무초의 교장은 불세출의 투수인 최동원 선수의 할아버지였다. 이후 박 감독은 한국전력에서 장순조, 배만호, 정연회, 박인규, 이철화 등 부산 출신 선수들과 팀을 이뤄 실업 야구에서 활약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실업리그 팀인 롯데 자이언트감독으로 부임해 팀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1982년,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 창단 감독을 맡았고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있었다. 그는 KNN 야구 해설가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스포츠 서울>의 객원 기자로도 일하는 등 야구와 관련한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 시리즈 우승 주역 강병철] 
 강병철 감독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야구부로 유명한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유격수로 활약해 1964년 청룡기 우승 트로피를 모교에 안겼다. 1965년, 크라운맥주에서 실업 선수 생활을 시작한 강 감독은 한일은행에 입단해 3루수로 이름을 날렸다. 우리 대학 야구부 감독을 맡았던 강 감독은 1982년에 롯데자이언츠 코치로 재직 후 이듬해 감독 자리에 올랐다. 그가 감독에 오른 뒤 롯데 자이언츠는 1984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정상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 얘기를 할 때 강병철 감독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김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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