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지친 대학, 절대평가 대안될까
경쟁에 지친 대학, 절대평가 대안될까
  • 박주현 기자
  • 승인 2019.09.02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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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 임효원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 임효원 기자

 

성적 확인 기간, 가 학생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성적을 조회했다. 점수는 96.8점. 충분히 A+를 기대할만한 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가 학생이 받은 건 한 등급 낮은 A였다. 

나 학생은 이전 학기부터 꼭 듣고 싶은 강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수업 성적 분포가 높아서 학점이 잘 안 나와"라는 선배의 조언에 해당 강의를 들어야 할지 고민이 많다.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위 사례는 굉장히 익숙할 것이다. 이는 학생들 간 경쟁을 전제로 하는 상대평가제의 부작용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학생을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상대평가가 학문을 익힌다는 본질에서 벗어나 학점을 잘 받는 방법에만 몰두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에 현재 수도권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절대평가 교체의 선두가 된 고려대는 2015년 2학기부터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인재의 육성'을 목표로 절대평가 활성화를 실시했다. 이어 2017년 2학기부터는 성적 평가규정을 '상대평가 원칙'에서 '절대평가 원칙'으로 완전히 바꿨다. 연세대는 '경쟁보다는 문제해결 중심으로의 교육 방향 전환'을 목적으로 올해 1학기부터 상대평가제 원칙을 폐지하고 절대평가 수업을 확대했다. 성균관대는 지난해부터 일부 교과목에 절대평가제를 시범 시행 중이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1학기부터 교수가 임의로 평가방식을 택하는 '학부 성적 교수자율평가제'를 도입했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그 차이는?

상대평가는 '규준 지향평가'라고도 불린다.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과 비율을 정규분포곡선으로  미리 정해놓은 다음, 그 비율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학생의 성취도를 서로 비교·평가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강의를 수강하는 모든 학생의 성취도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어 학생 간 개인차를 변별하기가 쉽다. 또한, 높은 등급을 받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학습에 대한 원활한 동기유발을 할 수 있다. 이에 상대평가가 널리 사용되지만 학생의 성취도를 집단 안에서 비교·판단하기 때문에 학생이 학습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더라도 집단 전체가 우수하다면 학업 성취도가 낮다고 분석될 우려가 있다. 이는 상대평가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는 '과도한 경쟁의식 유발'과 높은 연관성을 가진다. 

반면, '준거 지향평가'라고도 하는 절대평가는 미리 설정된 학습 목표가 있어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이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이 방법은 강의자가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기가 쉬워 △교육목표 △교육과정 △교수방법 등의 개선에 유리하다. 또한 경쟁과 암기를 강요하는 상대평가와 달리 절대평가는 △창의력 △문제해결력 △비판력 등 고등정신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절대평가 방식은 배점 기준의 설정이 굉장히 까다롭고, 강의자의 주관이 과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절대평가 강의를 수강한 송선경(이화여대 국어국문학 2) 씨는 "절대평가는 강의자마다 성적 기준이 달라, A 이상 학점을 극소수의 학생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며 수업마다 공통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움을 토로했다. 

절대평가, 과도한 학점 경쟁 줄일 수 있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상대평가제는 집단 내에서 개인의 우수성을 비교한다는 특징 때문에 과도한 학점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측에 따르면 "기존 상대평가제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내에서 서로 경쟁하다 보니 배우고 싶은 과목 대신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주로 선택한다"고 말했다. 반면, 절대평가에 대해서는 "학생이 원하는 강의를 선택할 수 있는 수강 선택권이 늘어나고 수업에 대한 성과도 좋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절대평가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고려대에서는 학생들이 실제로 절대평가의 효과를 느끼고 있었다. 정연진(고려대 건축학 1) 씨는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어 성적에 대한 강박감이 덜하다"며 "다른 학생들의 실력에 상관없이 자기 실력대로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절대평가제에 만족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주변 학생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라며 "단순히 성적을 더 잘 받을 수 있기 때문도 있지만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올 수 있기에 학업 의욕이 생긴다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1학기부터 1년간 시범운영했던 '교수자율평가제'를 계속 운영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교수자율평가제 도입으로 학생이 경쟁 구도를 벗어나 학문을 추구하는 대학 본연의 가치를 찾는 등 순기능이 많다"고 해당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송선경 씨도 "상대평가 수업과 비교해 절대평가나 두 가지 평가방식을 절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며 교수자율평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학점 인플레 굴레 속 절대평가

반면, 절대평가 도입이 '학점 인플레'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학점 인플레란 물가가 오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경제학 용어 '인플레이션'을 경제가 아닌 학점에 적용한 말이다. 예를 들어 강의자가 학생의 취업 시장 경쟁력 향상 이유로 학생에게 높은 학점을 주면, 학생간 변별력이 낮아져 학점을 향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나아가 학업성취 수준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교 교육혁신원장 조규판(교육학) 교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대학이 절대평가의 방식을 채택해 성적평가를 진행했지만, 대부분 과목에서 약 50% 이상의 학생이 A 학점을 받는 학점 인플레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이유로 일각에서는 현재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절대평가제 전환이 과거 학점 인플레 현상을 되풀이 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절대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의 입장은 다르다. 이화여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실시하고 있는 자율평가제도는 강의자가 원하는 평가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운영되는데, 강의자들이 절대평가 제도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도 시행 초기에는 절대평가에 따른 학점 인플레 반복이 걱정됐지만, 예상보다 학점 인플레 현상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우려와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성취중심 절대평가 교과목을 지정한 성균관대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절대평가제, 왜 모습 감췄나 

전문가들은 절대평가제가 대학가에서 자취를 감춘 건 2017년까지 교육부에서 실시했던 '대학구조개혁평가'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을 목표로 시행된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재정 지원 규모를 결정하는 평가다.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는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학교 정원의 강제 감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이를 '대학 살생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교육부는 학점 인플레 현상을 막고자 평가 항목에 △성적분포의 적절성 △엄정한 성적부여를 위한 제도 운영의 적절성을 포함했다. 재정 지원을 받아야 하는 학교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학점 인플레 우려가 있는 절대평가 교과목을 폐지하고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정했다. 실제로 한국외대는 2014년 2학기가 끝난 뒤 절대평가 과목을 전면 폐지하고 모든 교과목을 상대평가로 전환해 논란을 빚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지난해부터 대학의 평가 부담을 줄인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교육부가 공개한 2019 대학기본역량진단 편람에 따르면 '학생평가를 합리적이고 엄정하게 운영하는 정도'를 평가한다고 명시돼있다. '합리적'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비교적 평가 기준이 완화됐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교육부의 성적 평가 규제는 남아있는 실정이다. 

지방에 위치한 대학은 수도권 대학에 비해 정부 지원이 더 절실하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대학보다 대학평가에 민감한 지방대학은 절대평가제 도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학점 인플레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밝힌 성적 분포 자료에 따르면, A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이 높을수록 해당 대학은 학점 인플레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대학알리미
출처 = 대학알리미

서울대는 지난해 2학기 교양과목을 기준으로 A 이상 학점의 비율이 43.8%(1만 2,458명)를 차지했고, 이어 고려대는 49.1%(2만 8,118명)의 비율을 보였다. 학점 인플레 발생률이 수도권 주요 대학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하는 중앙대는 37.9%(1만 1,745명), 홍익대는 32.9%(7,721명)로 전국 평균 29.31%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부산 국립대학인 부산대는 36.2%(9,507명), 부경대는 33%(9,039명)로 수도권 대학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반면 부산외대는 27.4%(3,166명), 신라대는 25%(3,623명), 경성대는 24.7%(6,377명)로 부산 사립대학이 수도권 대학, 부산 국립대학과 비교해 낮은 비율을 나타냈다. 부산 사립대학의 평균은 28.59%로 전국 평균(29.31%)보다 낮았다. 

한편, 성적평가를 교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측은 "대학이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하나를 택해 원칙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교수에게 책임과 역량을 맡겨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교과목 특성에 맞는 성적평가를 택하기 위해서 교수의 재량에 따르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자율평가제도가 교수의 재량권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교수 재량 평가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우리 대학의 평가방식은? 

우리 대학의 경우, 현행하는 '학업 성적평가에 관한 규정' 제 4조에 상대평가가 원칙임을 명시했다. 성적등급의 비율은 전공 교과목 기준으로 △A+에서 A까지 30% 이하 △A+에서 B까지 70% 이하 △C+에서 F까지 30% 이상이다. 교양 교과목의 경우는 △A+에서 A까지 30% 이하 △A+에서 B까지 60% 이하 △C+에서 F까지 40% 이상을 기준으로 잡았다. 

절대평가가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과목은 △상대평가제를 시행하기 어려운 수강 인원 15명 미만 교과목 △이론 강의를 포함하지 않는 순수 실험, 실습, 실기 교과목 △영어강의 교과목에서 A등급의 비율이 50%를 초과할 수 없는 강의로 한정했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전국 174개 대학의 지난해 2학기 전공과목 성적 분포에 따르면 A 이상 학점 비율의 전국 평균은 33.27%다. 우리 대학은 32.9% (1만 9,286명)로 전국 평균과 유사했다. 교양과목 성적 분포는 전국 평균 29.31%로 나타났으며, 우리 대학은 약간 높은 29.9%(6,843명)였다. 

그러나 우리 대학이 처음부터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한 것은 아니다. 과거 절대평가제를 채택했던 우리 대학은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 불어온 상대평가제 도입 바람에 발맞춰 2008년 1학기부터 상대평가를 전면 도입했다. 당시 대학본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학생의 경쟁심을 이끌어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점 인플레를 막고자 상대평가제를 도입한다"고 설명했다(동안 홈페이지 참고).

대학사회가 절대평가제로 전환하는 분위기가 일자 우리 대학도 절대평가제 도입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신나영(국제무역학 2) 학생은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상대평가의 특성 때문에 낮은 등급을 받는다"고 상대평가제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교육학 3) 학생은 "상대평가가 높은 학점을 받으려 학생 간에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고 생각한다"며 "절대평가 도입은 학생이 학문에 집중하고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되도록 도울 것"이라고 절대평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절대평가의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규판 교수는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이러한 흐름을 따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지방대학이라는 우리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도권 대학보다 상대적으로 평가에 민감한 부분과 학점 인플레의 우려 등 우리 대학의 여러 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최선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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