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를 책으로 전합니다. '독립출판'
나의 '가치'를 책으로 전합니다. '독립출판'
  • 노병재 기자
  • 승인 2019.11.11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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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부산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 북토크 현장.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흔, 2018)의 저자 백세희 작가는 책을 내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책은 아무나 낼 수 없는, 특별히 뛰어난 글솜씨를 가진 '작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거창하지 않더라도 진솔하고 소소한 이야기와 글들이 큰 공감을 사고 있다. 책을 읽기만 하던 사람들이 '펜'을 쥐기 시작했다. 최근 출판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며 화제가 된 '독립출판' 이야기다.

 

2017 국민 독서실태 조사 출처=문화체육관광부
2017 국민 독서실태 조사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책 읽기 등한시하는 사람들,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는 언제나 글쓰기 및 독서와 함께 해왔다. 글을 잘 쓰고 책과 친해지는 것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경쟁력'으로 치부됐고, 이런 흐름 덕분에 글쓰기 관련 자기계발 서적이나 강연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안에서 필요에 의한 글쓰기나 독서는 점점 늘어가는 추세지만, 과연 현대인이 진정으로 책을 즐기고 있냐는 물음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교과서, 학습 참고서, 수험서, 잡지 등의 서적이 아닌 순수문학이나 수필 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7년 발행한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읽은 책이 몇 권인지 알 수 있는 연간 독서량은 직전 조사에서 집계됐던 9.1권에 비해 0.8권 감소한 8.3권으로 집계됐다. 이와 더불어 2013년에 조사된 'OECD 가입국의 연평균 독서율'을 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독서율은 74.4%로 OECD 가입국 평균인 76.5%에 못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읽기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성인과 학생이 공통으로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성인 32.2%, 학생 29.1%)를 꼽았다. 이어서 성인은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19.6%) △다른 여가활동(15.7%) 순으로, 학생은 △책 읽기가 어렵고 친숙하지 않아서(21.1%)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18.5%)으로 응답했다. 정재훈(경영학 2) 학생은 "학기 중에는 시험공부나 과제 등으로. 방학 중에는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 등으로 바쁘게 보내느라 독서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책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어 손이 잘 안 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독서가 외면받는 상황에 도서·출판업계는 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영세한 출판사들은 물론 영풍문고,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을 제외한 서점들이 속속 문을 닫는 현실이다. 부산의 경우 30년 역사를 가진 지역 대표 향토 서점 '동보서적'이 2010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점했고, 1955년 개업한 '문우당서점' 역시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가 규모를 대폭 줄여 명맥만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독립서점 '나락서점'
독립서점 '나락서점'

독립출판, 출판업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다

하지만 이렇게 암울한 출판업계의 현실에도 희망적인 변화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서점에 진열된 도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얼핏 보기에도 과거 책들과는 그 종류나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저자는 신춘문예,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도, 책의 소재와 관련된 분야에서 권위 있는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전문가나 유명인사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글을 써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이를 출판까지 할 수 있는 플랫폼과 기회가 증가하면서, 출판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책을 출간하는 '독립출판', '1인 출판'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독립출판은 전통적인 출판 경로인 기성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출판을 진행하고  이를 유통한다. 출판사의 경우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과 운영을 고려해야 하고, 작가의 역량이나 문학적 수준을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평범한 개인이 이러한 장벽을 뛰어넘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독립출판사는 이러한 과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과 취향 표현에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부산 지역 독립 계간지인 '하트人부산'의 김다은 편집장과 이를 출판하는 독립출판사 '쓰담'의 장혜원 대표는 "하트人부산을 발행하기 위해 출판사가 필요했는데, 기성 출판사와의 계약은 진입장벽이 높고 발행 취지에 맞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지 않고 1인 출판사를 만들게 됐다"라며 독립출판사 설립 계기를 말했다. 이들은 "적은 구성원이 제작은 물론 홍보와 마케팅, 유통관리 등 기존 출판사의 일까지 도맡다 보니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하트人부산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생각하며 열심히 꾸려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독자는 줄고 작가는 많아지는 시대가 왔다"며 "시행착오가 있기도 하지만 취향과 개성에 따른 소비가 늘고 있는 만큼 독립출판에 대한 지지는 계속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독립출판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문현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나락서점'의 운영자이자 최근 독립출판물을 직접 출간한 박미은 씨는 "최근 서점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과거에 비해 독립출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고, 관심도 높아진 것이 느껴진다"며 "이런 반응 덕분에 자연스럽게 독립서점의 운영과 출판이 생산성 있는 일로 느껴져 뿌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립출판이 성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가출판 플랫폼'의 역할이 컸다. 자가출판 플랫폼이란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획, 편집한 저작물을 유통하고 출판할 수 있도록 돕는 일련의 환경이나 수단을 말한다. 자가출판 플랫폼에는 201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비스를 선보인 교보문고 '퍼플'을 비롯해 2014년 문을 연 '부크크', 최근 시장에 진출한 '북팟' 등이 있다. 아직 출판업계에서 차지하는 전체 규모는 작지만, 자가 출판 시장은 해마다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부크크'의 경우 현재 제작 중인 도서 2만 532권, 승인 도서 1만 2,465권, 활동 중인 작가는 1만 2,329명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2019년 11월 8일 기준).

이는 기존 출판 시스템과 달리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제작하는 'POD(주문형 인쇄)' 방식으로, 홈페이지에 원고를 업로드하고 판형, 종이 재질, 디자인, 가격 등 규격을 정해 제작을 의뢰하는 형식이다. 플랫폼의 승인 작업을 거쳐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등록을 마치면 종이책과 전자책 형태로 모두 출간할 수 있다. 책이 팔리면 저자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인세로 받는다.

 

가치를 위한 소비, '크라우드펀딩'과 독립출판

 

텀블벅을 통해 펀딩이 진행되고 있는 화면 캡처
텀블벅을 통해 펀딩이 진행되고 있는 화면 캡처

이와 더불어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은 독립출판 활성화에 날개를 달았다. 최근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같이' 만들어나간다"는 기획의도의 MBC <같이 펀딩>(2019)이 방영되며 크게 이름을 알린 크라우드펀딩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기업, 단체를 위해 불특정 다수(Crowd)가 온라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일컫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해외에서 '킥스타터', '인디고고' 등의 온라인 플랫폼으로부터 시작됐다.

크라우드펀딩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이나 예술인, 스타트업 창업자 등이 후원받을 수 있는 창구로 주목받고 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무엇보다 메이커(펀딩 플랫폼에서 후원을 받고 싶은 제작자)와의 '상생'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에게 필요한 상품과 메이커가 제작할 수 있는 능력, 가치를 추구하는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합쳐 펀딩으로 끌어낼 수 있는 선순환을 중시한다. 대표적인 국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는 '와디즈'와 '텀블벅' 등이 있다.

이들 플랫폼은 독립출판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학창 시절 '왕따' 경험이 있는 성인들을 인터뷰한 유튜브 영상 <왕따였던 어른들> 프로젝트의 내용을 엮어 책을 출판한 『나의 가해자들에게』(씨리얼, 알에이치코리아, 2019)는 텀블벅 후원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150만 부 이상 판매된 『언어의 온도』(이기주, 말글터, 2016)의 시작도 텀블벅이었다. 지난해 텀블벅을 통해 출간된 책은 700여 권, 2019년 5월까지 출판 분야 성공 프로젝트는 누적 1,900건을 돌파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출판의 매력은 펀딩 플랫폼이 모든 창작자에게 열린 공평한 기회의 장이라는 점에 있다. 유명세, 자본이 부족해도 후원을 받고자 하는 '콘텐츠'가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플랫폼에 노출돼 책이 출간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다양한 환경을 통해 과거보다 출판이 쉬워진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생활에서 '브런치', '씀', '어라운드', '모씨' 등 글쓰기 플랫폼이나 앱을 이용해 내가 쓴 글을 노출하고, 글쓰기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건도 다양해졌다.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오성은, 봄아필, 2014), 『여행의 재료들』(오성은, 호밀밭, 2017) 등의 저서를 집필한 우리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오성은 강사는 "과거보다 독서, 글쓰기와 관련된 플랫폼이 다양해진 상황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책이라는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더 많아지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이 바람직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글이 쉽게 노출되는 만큼 활자가 무분별하게 범람하여 독자, 이용자로 하여금 피로감을 호소하게 만들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에 "개인적인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추천 알고리즘 시스템 등 독자의 선호도, 활용도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플랫폼이 살아남을 방법이 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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