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한 달 살기'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한 달 살기'
  • 노병재 기자
  • 승인 2019.12.09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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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감독 라이언 머피, 2010)의 주인공 리즈 길버트(줄리아 로버츠 분)는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점으로, <와일드>(감독 장 마크 발레, 2015)의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분)는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깨달음을 얻는 수단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여행을 통해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여행이 가지는 의미나 목적에 대해 되새기기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곳을 돌아보려 욕심을 부리다 지치는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이에 점차 여러 곳을 돌아보기 보다는 한곳에 머무르며 그 공간의 정취를 느끼려는 새로운 시도가 선호되고 있다. 새로운 여행 트렌드, '한 달 살기'의 이야기다.

 

▲2018 국민여행조사 '국내' 부분
▲2018 국민여행조사 '국내' 부분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여행의 대중화, 10명 중 9명은 여행 떠나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국민여행실태조사'에서는 전체 인구의 국내 여행 경험률(현 거주 지역을 벗어나 타 지역으로 여행한 경험의 비율)이 89.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중 9명은 여행을 떠난 셈이다. 해외의 경우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던 해외여행 출국자 수가 올해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의 해외 출국자 수 통계조사(지난 4월 기준)에 따르면 내국인 해외 출국자 수는 지난해 2,870만 명을 기록했고, 올해 3,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여행과 해외여행 경험이 모두 증가하며 여행이 전 국민 차원에서 즐기는 대중적인 여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렇듯 여행이 대중화된 주요 원인으로는 국민 소득 수준의 향상을 꼽을 수 있다. 'KOSIS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353만 원에서 3,678만 원까지 큰 폭으로 상승했다(2008-2018년 기준). 또한 저가 항공사의 등장으로 인한 항공료 부담의 감소 및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의 물가 차이 감소, OTA(Online Travel Agency, 온라인 여행사) 등 다양한 여행 플랫폼의 등장으로 효율적인 여행구상이 가능해진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흐름은 곧 여행의 장기화로 이어졌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도입으로 인해 연차 사용이 독려되는 등의 근로환경 개선과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보름 혹은 한 달씩 중장기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이 최근 3년간(2017-2019) 한국인의 항공권 구매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2주 이상 휴가를 즐기는 장기 여행객들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박 이상의 항공권 판매가 2018년에는 전년 대비 1.9배, 2019년에는 전년 대비 2.2배 증가하는 등 매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JTBC '효리네 민박'(2017) 포스터

현지인처럼 살아볼까? 한 달 살기!

여행 트렌드 또한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짧은 기간에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여행 스타일에서 벗어나, 넉넉한 기간을 두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현지인의 삶을 경험해보려는 이른바 '한 달 살기'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특히 한 달 살기는 2030세대에게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평가받는 등 선풍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대표적 SNS인 인스타그램에 '#한달살기'를 검색하면, 무려 9만 8,100개의 게시글이 포스팅 돼있다. 한 달 살기가 젊은 연령층에서 이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까닭은 직장인, 기성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젊은 연령층이 한 달 살기를 경험하기에 보다 적합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교 이새람(글로벌비즈니스학 2) 학생은 "대만,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를 여행으로 짧게 다녀보긴 했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은 없다"며 "취직을 하면 시간적인 여유가 나지 않을 것 같아, 그 전에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고 이러한 여행방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디어가 비추는 모습은 한 달 살기 열풍을 가속했다. 최근 방영된 SBS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2017)의 촬영분에는 최수종, 하희라 부부가 전남 장흥에서 한 달 살기에 도전해 화제가 됐다. 또한 JTBC <효리네 민박2>(2018)에서는 가수 이효리 씨가 보여주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과 여유로운 삶의 방식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열풍을 일으켰다. 

한 달 살기 열풍이 불어오자 관련된 여행시장이 형성되며 여행사들도 한 달 살기 관련 여행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들 여행사의 프로그램은 △현지 숙소 예약 외 현지 일정 계획 △원하는 투어 예약 대행 △주변 관광지 안내 △쇼핑몰, 마트, 렌터카 및 교통편 이용 △병원 및 관공서 정보 등 폭넓은 종합 여행 서비스와 더불어 안전을 위한 24시간 비상 연락망을 운영해 편리하고 안심되는 한 달 살기를 보장한다.

국가 차원의 장기 여행 권장도 눈여겨 볼만 하다. 관광공사는 지난 6월 국내에서 일주일 살아보기 계획을 세워 제출하면 심사를 통해 숙박비를 지원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일주일 살아보기 여행 시즌2'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장기 체류형 국내여행 문화 향상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를 통해 경주·영월·충주·보성·남해 5개 도시가 국내의 대표적인 한 달 살기 여행지로 꼽힌 바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한 달 살기, 관련 피해 조심해야

한편, 한 달 살기 열풍에 따른 관련 산업과 여행시장이 조성되면서 이와 관련된 부작용과 피해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제주의 한 타운 하우스 2개 동을 임대한 뒤 관광객 29명에게 겹치기 임대계약을 하는 수법으로 6,000만 원을 받아 챙긴 A씨가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또한 한국소비자원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가 지난해 10월 제주 한 달 살기 장기숙박 업체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50개 업체 중 30개(60.0%)가 관련 법률에 따른 별도의 신고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피해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한국소비자원에서는 △계약 전 숙박업체가 정상적으로 신고 후에 영업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 △계약 후 홈페이지 등에 표시된 정보를 출력하여 분쟁 발생에 대비할 것 △취소 시 환급조건 등 규정을 꼼꼼히 확인 후 계약할 것을 강조하며 이용자에게 피해 사례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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