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고전을 읽는 이유
[기고] 다시 고전을 읽는 이유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0.03.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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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환(한국어문학과) 교수
이국환(한국어문학과) 교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을 모른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등 뒤에 있으며, 경험하고 돌아볼 때,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럼에도 인생을 아는 법이 있으니, 그것이 독서다. 살아간다는 건, 내 발길이 닿은 적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나에게 처음이나 이미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갔고, 그 기록을 모아둔 것이 책이다. 특히 인류의 다양한 가치가 내재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인생을 미리 경험하는 것과 같다. 지난 시간을 햇빛에 비추면 역사가 되고, 별빛에 비추면 문학이 된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고전, 그중에서도 문학을 가까이 둬야 하는 이유다.

마크 트웨인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 했다. 작가의 냉소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제 그의 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고전이 됐다. 요즘 고전을 다시 읽으며, 마크 트웨인의 말을 수긍한다. 읽었다 착각할 뿐 읽지 않은 책이 대부분이며, 어릴 때 접했던 줄거리 중심의 요약본을 읽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내게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나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이 그러했다. 

소포클레스와 셰익스피어 비극 전집부터 시작했다. 생의 의미는 비극에 있으며 뛰어난 희극 작품들도 웃음을 주제로 하는 것 같으나, 작품의 묘미는 페이소스, 애수에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거쳐, 이 글을 쓰기 직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완독했다. 『멋진 신세계』를 읽다 보면 셰익스피어 비극을 들추게 되고,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발췌독하며, 조지 오웰의 『1984』가 다시 읽을 목록에 추가된다. 그뿐인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국내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킨 유발 하라리의 책도 자연스레 뒤적이게 된다. 독서란 감자 캐기와 같아 이렇게 이랑 따라 줄줄이 읽게 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이 제목은 셰익스피어 비극 『템페스트』 5막 1장에 등장하는 반어적 표현이다. 멋진 신세계는 알파부터 엡실론까지 다섯 개의 계급으로 이뤄져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에서 그러하듯 계급의 주요 표식은 냄새이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부여되고, 특유의 냄새가 주입되며,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하층계급은 쉽게 냄새로 구분된다. 이 세계에서 하층계급이 불만 없이 사회에 복무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의 반복 교육 때문이다. 델타나 엡실론 같은 하층계급에는 아기 때부터 책과 꽃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준다. 만약 아기들이 책과 꽃에 손을 대면 굉음과 함께 전류를 흘려 증오하도록 만든다. 책을 읽고, 꽃을 좋아하는 하층계급은 이곳의 안정과 평화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층계급도 다르지 않다. 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방문해 주인공 존이 셰익스피어 작품은 읽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학교 관계자는 당연하다는 듯, 학생들은 오직 참고서류만 읽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기분전환이 필요하면 '촉감영화관'에 가면 된다고 말한다. 물론 영화를 본 이후에는 술 혹은 마약 같은 '소마'를 마시면 된다. 올더스 헉슬리의 통찰은 놀라워, 다시 읽은 『멋진 신세계』는 지금 우리 사회와 인간을 비추는 탐조등 같아 매력적이다. 빨리 개강해서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고 싶을 만큼.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며,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견고하게 자신의 한 생애를 이끌어나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의 핵심에 고전 읽기와 같은 독서가 있다. 다만, 아무리 위대한 고전이라 해도, 나와 인연을 맺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인연이란 낯선 대상이 친숙해지는 과정이다. 고전과의 인연을 강제할 수 없으나 억지로 끌려간 소개팅 자리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나듯, 내 의사와 무관하게 배정받은 학급에서 평생 친구를 만나듯, 그렇게 고전과 낯선 만남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학생들이 고전과 인연을 맺는 날이 오길, 개강과 함께 기다린다.

이국환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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