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역사를 걷다, '다크 투어리즘'
흑백의 역사를 걷다, '다크 투어리즘'
  • 김태홍 기자
  • 승인 2020.03.16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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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과 표지판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과 표지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20세기 근현대사만 살펴봐도 국권침탈부터 분단과 전쟁, 독재 정권까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픔을 딛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오늘날, 휴식이나 레저를 위한 여행과 달리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를 방문해 공감하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아픔을 딛고 피어난 트렌드, 다크 투어리즘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막대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방문해 배움을 얻는 여행을 통칭하는 말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순례 관광, 애도 관광, 기억 관광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크 투어리스트 :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2018)에서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 방문해 다크 투어리즘을 실천하는 모습을 소개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는 어디가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제국주의 만행으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더불어 유대인 대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가장 유명한 다크 투어리즘 명소로 꼽힌다. 현재 박물관으로 변모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당시의 생체실험, 고문, 처형의 현장과 낡은 신발, 옷가지 등 희생자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대구 중앙로역 '기억공간' 출처=대구 중구청 인스타그램
▲대구 중앙로역 '기억공간' <출처=대구 중구청 인스타그램>

우리나라 곳곳의 '다크 플레이스'

지난해 7월 4일부로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불매운동이 거세지면서 국내 여행이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다크 투어리즘 또한 여행 테마를 설정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하며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한몫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는 △덕수궁 중명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DMZ 비무장지대 △제주 4·3 평화공원 등의 4곳을 주로 꼽는다. 특히, 제주시는 제주 4·3 평화공원기념관을 핵심자원으로 다크 투어를 콘텐츠화했다. 동부코스와 서부코스로 나눈 팸플릿을 제작해 여행객이 다크 투어리즘을 이해하고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이외에도 지역별로 다크 투어리즘을 상징하는 장소는 존재한다.

대구시는 2003년 2월 18일에 발생했던 대구지하철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중앙로역에 '기억공간'이라는 다크 플레이스를 조성했다. 주황색 추모벽 안에는 참사 피해자들이 열차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글,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당시의 참사를 기억하고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다크 플레이스다. 

 

다크 투어리즘, 남발하면 그 의미를 잃어

다크 투어리즘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자, 각 지역은 다크 투어리즘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정 지역을 다크 플레이스로 지정해 관광 콘텐츠로 개발하면 지역 홍보나 관광객 유치 혹은 지역 이미지 개선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국민해양안전관 설립이 대표적인 예다. 참사 이후 세월호 현장에 가까운 팽목항을 다크 투어리즘 장소로 조성하자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자 정부는 국민해양안전관을 설립할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민의 여론을 수렴해 순조롭게 진행된 국민해양안전관은 올해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역민과의 협의나 역사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지자체가 다크 플레이스 지정을 강행한다면 도리어 지역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대구시는 달성공원의 '순종 어가길' 착공을 추진하며 "일제 때 착취당하던 우리 상황을 기억하자는 취지"라고 전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및 지역 23개 시민단체는 "(순행은) 당시 조선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가 강요한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어 "굴욕적인 사건을 들춰내 역사를 미화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하며 철거를 요구했지만 대구시 당국의 어가길 착공은 강행됐고 결국 찾는 이 없는 도시 흉물로 전락했다. (우여곡절 거친 순종황제 어가길 방치, 도심 흉물로 전락…(매일신문, 2019.07.25-날짜 참고))

 

부산 다크 투어리즘의 현주소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산은 다양한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점에서 다크 투어를 하기에 최적의 도시다. 강제동원의 시작부터 해방까지 빠짐없이 기록한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과 부산의 근대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40계단, 우리 대학교 부민캠퍼스 인근에 있는 임시수도기념관 등이 대표적이다. 유동규(금융학 2) 학생은 "학교 근처에 임시수도기념관 등 여러 다크 투어리즘 명소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보진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크 투어리즘을 실천해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을 직접 눈으로 보고,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크 투어리즘 자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부산이지만 이를 위한 관광 인프라가 확실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승훈(국제무역학 4) 학생은 "서울이나 제주도는 다크 투어리스트를 위한 팸플릿이나 가이드가 항시 준비돼 있다. 하지만 부산은 아직 다크 투어리즘 홍보가 활성화되지는 않은 듯하다"며 "일제강점기 때의 생활 흔적이 잘 보존됐다고 알려진 우암동 소막마을이 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지만 특별한 설명이나 안내문이 없어 일반 달동네와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때문에 지난해 부산연구원의 BDI 정책포커스 '부산관광의 새로운 기획, 다크 투어리즘' 보고서는 부산 다크 투어리즘 자원의 전수조사와 시민이 자원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 마련을 필수 과제로 제시했다. 추가로 장소에 기반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련 로드맵 마련의 필요성도 함께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경옥 연구위원은 "부산이 가진 아픔을 관광 콘텐츠로 개발하면 관광객에게 부산을 진정성 있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부산시민의 자긍심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학예연구부 고수빈씨는 "다크 투어리즘의 의미는 어두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 기억하고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하는 것에 있다"며 "역사에 무관심해져 가는 시대 속에서 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하나의 방식이다"라고 다크 투어리즘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제시했다. 끝으로 "더 많은 사람이 다크 투어리즘에 동참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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