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작을 만나다│위기 속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화, 원작을 만나다│위기 속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신우경 기자
  • 승인 2020.05.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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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 책 「눈먼 자들의 도시」  〈출처=해냄출판사〉
▲ 책 「눈먼 자들의 도시」 〈출처=해냄출판사〉

최근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며 각국에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선진국조차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못한 채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이에 WHO는 펜데믹을 선언했다. 그리고 여기, 지금 우리의 상황과 상당히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있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8)는 감염되면 눈이 멀게 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도시에 퍼지면서 시작된다. 정부는 감염자를 시설에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안과의사의 아내(줄리안 무어 분)가 격리시설에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바이러스는 평범한 날 운전 중이던 한 회사원으로부터 시작된다. 회사원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눈이 멀자 그의 아내, 회사원을 진료한 안과의사, 그리고 결국엔 안과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치료 방법도, 백신도 없는 바이러스의 등장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해냄 출판사, 2002)는 출간 후 1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감염되면 실명에 이르는 바이러스를 주제로 시각의 부재 시 인간의 모습과 사회 붕괴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해 평단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원작에서는 감정묘사가 세밀한 대신 사건의 진행이 느리지만 영화는 사건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며 관객들이 영화에 집중하게 한다. 감염자의 시각에서 극이 진행될 때는 하얗고 뿌연 화면을, 비감염자의 시각에서는 선명한 화면을 연출해 시야를 대비시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아닌가" p.237

원작에서 시설에 격리된 감염자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식량과 여성을 교환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대사다. 안과의사(마크 러팔로 분)와 아내의 노력으로 그나마 유지되던 시설 내 질서와 최소한의 인간성이 총을 소지한 집단의 등장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다. 원작은 무력을 이용해 식량을 독점하고 성욕 해소를 위해 여성을 강간하는 모습을 끔찍할 정도로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처음 느꼈던 총기에 대한 무력감이 분노로 바뀌는 감정 변화를 자세하게 표현했다. 

감염자들이 이성을 잃고 질서와 인간성을 상실하는 장면은 원작과 영화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원작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원작의 경우 개개인의 심리상태 변화에 초점을 둬 해당 인물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됐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인물 심리 묘사를 거의 볼 수 없으며, 오로지 사건만을 나열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특히 안과의사의 아내가 총을 소지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가위로 찔러 죽이는 장면의 경우, 원작에서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자세히 묘사했다. 반면, 영화에서는 사람을 죽인 후 특별한 감정묘사 없이 다음 사건으로 바로 전개돼 관람객이 해당 인물에 깊이 공감할 수 없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p.461

원작에서 바이러스가 자연 치유되면서 안과의사 아내가 말한 대사다. 작품의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대사이기도 하다. 결국 바이러스는 사라진다. 인간의 노력으로 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사라졌다. 바이러스 등장 후 시력을 잃은 사회는 일반 사회와 달랐다.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행동했고 사회를 유지하던 법과 조직은 무너졌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알던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회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작가는 "눈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했고, 눈이 안 보인다고 달라지는 건 크게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시력이 있어도 욕망밖에 보지 않는 장님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끝마친다. 반면 영화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기보다는 바이러스가 사라진 뒤 다시 평범한 일상생활이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끝마친다.

"비록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완전히 짐승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한다." p.166

작품 속 끔찍한 사건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우리 사회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를 되짚어보면 영화가 마냥 허구의 이야기처럼 들리진 않는다. 지금 전 세계의 상황은 영화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며 사회에는 온갖 극단적 혐오표현이 난무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국가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줄을 이었고, 사람들은 기본적 생필품을 사기 위해 발버둥 쳤으며 일부 물품은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화처럼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붕괴되진 않았지만 전 세계적 위기상황에서 영화 속 장면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현 사태를 잘 극복하고 있지만, 살면서 이와 같은 위기상황을 또 한 번 직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때 과연 우리는 인간으로 죽어야 할까, 동물로 살아가야 할까.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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