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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0.05.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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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위기를 겪어 온 요즈음, 국가도 국민도 포스트코로나 단계의 성숙을 향해 발을 내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잔인한 인권 말살과 차별, 혐오와 편 가르기가 여전하고, 그 패턴이 우리 안에 숨결처럼 스며있다는 사실이 고개를 숙이게 한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은 인구의 반을 웃도는 남성이 인구의 반을 밑도는 여성(KOSIS, 2019)을 '사람'이 아닌 '성(性) 유희 도구'로 삼는 행위를 묵인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허핑턴포스트, 2020.3.28 참고). 게임과 매체 속 소녀들이 헐벗은 채 등장해야 하고,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고,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이 반복되고, 연령을 가리지 않는 데이트 폭력과 피해 여성의 극단적 선택, 몰래 카메라 촬영·유포, 남녀 '디지털 성노예화'를 포함한 '범죄행위들'에 10대부터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계층을 넘어 여러 사람들이 '그저 호기심으로' 연루돼 있다는 보도들, 그리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그 행위의 내용들은, 이 사회가-성(性)을 차치하고라도-기본적인 인권에 대해 경악할 만큼 무지하고 둔감하며 관련 범죄에 관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약자를 쥐고 흔들며 인간성을 짓밟는 잔혹한 힘의 과시와 방관이 폭력 범죄인지 기호(嗜好)인지 구분 못하는 이들의 의식세계는, 우리 사회에 성 분할적(gender divided) 가치와 혐오적 차별, 그에 대한 방관이 뿌리 깊게 만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동종(同種)을 욕구충족의 도구로만 보는 하등 동물적 파괴본능-이라기에도 참으로 민망한-수준에 머물러 있어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민주 시민 사회와는 멀다'는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타인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조롱하고,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 무시하고 속이고 괴롭히고 조종하며 삶을 비참한 지옥으로 만들고는 책임을 회피하는 그 치밀한 사기극을, 어디서 배우고 어떻게 유지해 왔을까?  

성폭력·성차별적 혐오와 사회적 배제, 그에 대한 인식 부재, 그 행위가 미치는 살인적 영향력에 대한 죄책감 없이 재차 가해지는 폭력 등을 보고 있자면, 세상의 반도 못 채우는 수많은 또 다른 소수들에 대해서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얼마나 더 심각하고 잔인한 폭력이 행해지고 있을까 싶어 몸이 떨린다. '출생률'이 아닌 '출산율'로 노동인구 증대의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면서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인권을 가진 주체로 존중하지 않는 것,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위기가 아니지'만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은 심각한 위기'라는 사회, '사람 존중 불감(不感) 사회'를 그대로 내 딸에게 아들에게 줘도 괜찮을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라고?

n번 방, 들킨 이들 떠들썩하게 처벌하고 촉법소년 연령대만 낮추면, 인터넷 수면 아래에서 n만큼 존재한다는 그 방들이 사라질까? '누구나 사람으로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로 바뀔까? 동급생들에 의해 벗겨진 몸 사진이 유포된 10대 아동의 죽고 싶은 날들도, 온 얼굴을 부서지게 맞아 실신해 입원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했던 소년의 공포와 절망감도, 당직을 전담하는 직원의 고달픔도, 육아휴직을 한 직원의 책상이 사라지는 일도, 직장 내 유리천장도, 결혼·출산·육아휴직이 이유였던 권고사직과 승진누락도, 부서 회의 중 커피 심부름도, 회사든 동아리든 목덜미와 무릎, 허리와 겨드랑이 틈새로 들어오는 '그저 예쁘고 귀여워서 오빠처럼 아빠처럼 가볍게 어루만지는 손'도 없어질까? 낯선 이를 집까지 따라 들어가는 일도, 알코올의 힘을 빌려, 때로는 완력·지위·협박을 이용해서 무력한 상태로 만들어 겁탈하는 일도 사라질까? 그것을 몰래 찍어 돌리고 낄낄거리는, 소름 끼치게 잔인한 그 비겁한 어둠의 웃음들이 멈출까? 그에 똑같이 성폭력을 빌미로 대응하는 복수범죄도 사라지게 될까?

조직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인간성을 파괴하는 썩은 물은 어디든 스며든다. 건강한 민주 시민의식이 제대로 움트고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스민 모순된 잣대와 차별적 혐오, 이를 부추기고 고개 돌리는 기형적 체계와 토양이 바뀌어야 한다. 요람부터 무덤까지(from birth to death), 모든 개개인의 존귀함을 알고 느끼고 체득하여,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와 사회 체계, 우리 모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무심한 방임을 생존 프레임으로 삼았던 관습, 틀이 어그러진 제도, 개개인의 인권의식이 잠들어 있어야만 했던 불공정한 시간들-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이후에도 좀비 같은 n들이 기생하는 세상을 아이들이 물려받게 될 것이 자명한데, 그 누구도 '합당한' 책임도 대책도 묻거나 계획 않는 듯 빈 말이 요란하다. 

대체 그 n… 누가 왜 키우고 있는 것일까?

 이승희(아동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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