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2주년 축사│동아대학보는 언제나 청춘이다
│창간 72주년 축사│동아대학보는 언제나 청춘이다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승인 2020.06.1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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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회학 '93 졸)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영상인터뷰는 하지 않아 얼른 끊으려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87년 6월항쟁 때 부산 가톨릭센터 농성장에 계셨죠?"라고 말했다. 그날의 기억들이 색 바랜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때 나는 대학 초년생이었고 동아대학보사 수습기자였다. 취재라는 핑계를 대며 그곳 농성장에 길지 않게 머물러 있었다.  

그들이 나를 찾았던 이유는 방송에서 화제가 된  '씨돌(자신이 지은 이름)', '용현(본명)', '요한(세례명)'이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한 의인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1987년 명동성당 시위대가 해산된 이후, 부산의 가톨릭센터는 6.29 선언이 있을 때까지 마지막 저항의 보루처럼 버티고 있었다. 이 장소에 요한 씨가 있었고, 인권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해 방문해 요한 씨와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방송국은 내게 요한 씨를 본 적이 있는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요한 씨가 만나는 장면을 취재하면서 찍은 사진이나 자료가 있는지를 계속 물었다. 

나는 점거농성 초기에 잠시 있었기에 요한 씨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무언가 자료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학보사 기자면서도 그런 기록을 제대로 못 남긴 나를 책망할 따름이다. 이 짧은 대화로 30년도 더 지난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기자가 취재와 시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훈시를 동시에 들어야 했다. 내가 한동안 연락이 안 됐기 때문에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학생기자이고 사실을 기록하고 알려야 했음을 떠올렸다. 나는 가톨릭센터에서 10분 단위로 기록한 시위상황을 원고지에 빼곡히 적었다. 그리고 당시 학보사 주간 교수님이셨던 김민남 명예교수님께 전해드렸다. 민주화운동으로 해직기자와 해직교수의 아픈 경험이 있으셨던 교수님은 악필로 가득한 원고지를 읽으신 후, "어른인 내가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꾸중 대신 교수님이 미안하다고 표현하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교수가 되고 보니, 그 표현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과 허위, 정의와 부정의가 뒤섞인 시대에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대학보〉라는 큰 그릇이 있어 지지와 위로를 받고, 때로는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었기에 이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다. 당시 승학캠퍼스 학생회관의 동아대학보사 편집실은 늘 담배연기로 가득했고, 자구 하나하나를 놓고 선후배 간의, 그리고 교수님과 학생기자들 간의 긴 말씨름이 이어졌다. 명분이 중요한 시대였기에 우리는 바로 손에 잡히지 않지만, 잡아야 할 것 같은 가치를 놓고 토론의 토론을 해야 했다. 학보사 선배들은 붉은 사인펜으로 늘어지고 맥락없는 내 문장을 가감없이 쳐 냈다. 지워진 문구만큼 상처도 있었지만, 나무가 곧게 자라기 위해 가지치기를 해 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기자라는 직업은 오랜 경험지식을 기반으로 한 전문직군에 속하지만, 학생기자들이 이를 충족하기에는 현실에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동아대학보〉는 다른 어떤 기성 언론사보다 저널리즘의 일반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국내 유수의 언론사들과 여러 교류를 해본 나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동아대학보〉는 늘 검증된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사실적 진술의 연결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고 그 정신을 후배들에게 되물려주고 있었다. 이상용 선배님이나 차용범 선배님과 같이 현실 언론에서 존경받는 저널리스트들이  후배들의 등불이 돼 준 것이 그러했고, '정의'를 우선하는 동아대학의 역사가 그러했다. 

세월이 흘렀고 내가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지도 20년이 다 돼간다. 한때는 신문사 주간을 맡아 학생들과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주간교수를 맡는다는 것은 고충스런 일이다. 학보사 주간의 역할은  동아대 학보사에 보낸 학생기자생활의 뒤집어진 데자뷔 같았다.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언제나 과감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수집하는 것은 취약하다. 그러나 이것도 청춘들이 할 수 있는 패기이고 특권이다. 불완전함은 변화를 만드는 기제이기도 하다. 

나는 꼰대스럽게 나이 드는 것을 걱정한다. 저성장 시대에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둔 학생들에게 미안함이 크고, 우리가 믿는 정의가 의심되는 일이 일어나서 미안하기도 하다. 또한 학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배들에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 미안하기도 하다. 김민남 명예교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미안하다"는 말이 기성세대가 해야 할 정답이다. 

우리에게는 72년의 긴 역사를 가진 동아대학보사라는 큰 그릇이 있다. 이 그릇은 언제나 새로운 물로 채워진다. 그래서 동아대학보사는 언제나 청춘이다. 이전 자리를 비워준 선배들은 늘 새로운 청춘을 지지할 것이다. 그렇게 새 물을 받는 것이 72년을 넘겼다. 오랫동안 우리의 DNA 속에  쌓여 있고, 이것은  긴 사슬처럼 우리들을 엮어줄 것이다.

언제나 청춘인 동아대학보사의 DNA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미안함은 선배의 몫으로 남기고, 후배 기자들은 청춘의 열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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