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작을 만나다│ 내가 재단한 현실과 진실의 어긋남
│영화, 원작을 만나다│ 내가 재단한 현실과 진실의 어긋남
  • 장유진 기자
  • 승인 2020.09.15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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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가. 사람은 이성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잘못된 척도를 마련한다. 평생 후회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판단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믿음이 틀렸을 수 있다'는 태도다.

영화 <어톤먼트> 포스터

영화 <어톤먼트> (감독 조 라이트, 2007)는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가 제멋대로 한 상상을 진실로 여겨 친언니와 그의 연인을 사지로 내모는 비극이다. 작품은 자신이 언제나 옳다는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어떤 바보 같은 소녀의 이야기


1935년 영국, 부유한 가문의 막내딸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 분)는 자신의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 분)와 가정부의 아들 로비(제임스 매커보이 분) 사이에 이성적 기류를 알아차린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어린 브라이오니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녀는 자신이 본 단편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상상과 추측을 펼쳐 로비의 도덕성을 의심한다. 어느 날 브라이오니는 저택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그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건의 현장에서 범인의 실루엣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음에도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영화의 원작 소설 『속죄』(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2003)는 치밀한 심리묘사와 신선한 반전 서사로 전 세계 언론과 문단으로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고전이 탄생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작가 이언 매큐언은 이런 평가들로 '영국 작가협회 상', 'W.H. 스미스 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무수한 영예를 안았다.

소설의 탁월한 묘사는 인물의 입체성을 보여줄 때 가장 빛을 발했다. 영화는 배우 시얼샤 로넌의 정교한 표정 연기를 통해 불안한 내면을 감추려는 소녀의 어색함을 부각한 것과는 달리 원작은 그의 복잡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소설 속 브라이오니는 망상을 기반으로 한 강간 사건 증언 이후 떳떳한 자기애에서 나오는 기쁨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제 말을 믿어주지 않으리란 불안에 눈물로 베개를 적시기도 한다. 주체하지 못할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는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묘사하는 부분은 독자가 분노와 안타까움의 양가감정을 가지는 대목이다.

브라이오니의 거짓말로 결국 체포된 로비는 수감을 면제받는 대신 제2차 세계대전에 출정한다. 소녀의 거짓말로 그가 내던져진 전쟁터는 최후의 인간성마저 달아난 곳이었다. 행군 중 우연히 맞닥뜨린 풀밭에는 여자아이들의 주검이 누워있고, 자국군으로부터 낙오된 군인들은 물 한 모금조차 마실 수 없어 허덕인다.

소설은 전쟁의 잔혹함을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2부 전체를 할애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중 주요 부분만을 각색하고, 사실성은 극화하여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프랑스 됭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연합군 병사들의 사실적인 모습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그곳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해당 시퀀스는 계속되는 패배 속 퇴로마저 차단되자 미쳐버린 병사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이들은 자신을 구조해줄 배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폐허가 된 놀이 공원에서 음주가무를 즐긴다. 술에 취해 관람차와 회전목마에 매달려 노는 그들을 보고 로비는 절망한다. 그리고 이 악몽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는 '아니야'라고 외치며 괴로워한다.


"당신에게는 죄가 없어요" 

책 『속죄』 표지


 원작의 '아니야'는 영화에서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소설에서 로비는 행군 도중 무차별적 폭격으로 주검이 된 사내아이를 발견한다. 이후 그는 군인으로서 아이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환청에 시달린다. '당신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애썼어. 당신에게는 죄가 없어요'라며 로비의 귀에 맴도는 소리는 죽은 소년의 어머니가 자신을 만난다면 해줄 것 같은 말이자, 그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리고 로비는 그런 환청이 들릴 때마다 '아니야'를 외친다. 그는 자신의 상상을 부정하며 죄책감에 고통받는다. 이는 망상을 진실로 믿는 브라이오니와 비교가 된다. 작가 이언 매큐언은 죄의식과 책임감이 있는 로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림으로써, 대조 효과를 통해 죄책감이 없는 브라이오니의 비틀린 도덕성을 부각한다.


전쟁을 닮은 '오만함'이라는 폭력

 

소설 속죄의 역자 한정아 씨는 이 작품의 주제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소설의 배경인 전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소설은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신의 눈과 판단만을 믿는 오만함이라는 폭력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많은 이들이 피땀을 흘려가며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이어나가고 있는 지금, 누군가는 코로나19가 자유를 억압하려는 '음모'라고 맹신하며 연일 시위에 나선다. 어떤 이들은 '국가가 바이러스의 확산 원인을 종교에 뒤집어씌우려 한다'며 분개하기도 한다. 착각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신이 믿는 생각 역시 오만일 수 있다. 사회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질수록,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는 작품의 교훈은 더 거대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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