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리와 춤사위로 부산 문화예술의 기틀을 다지다
옛 소리와 춤사위로 부산 문화예술의 기틀을 다지다
  • 장유진 기자
  • 승인 2020.10.13 0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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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분야를 알기 위해 공부할 때는 책의 초장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는 게 보편적이다. 첫 장이 다른 화려한 페이지보다 주목받을 수 없다 해도, 처음이 있기에 책이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전통문화예술이 그렇다. 전통예술이 있기에 지금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10월은 우리의 문화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문화의 달이다. 전통예술은 아직도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현재 부산 문화예술의 '첫 장' 부산의 국악과 전통춤 얘기를 소개한다.

임시수도 부산, 민족의 얼 지켜내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예로부터 국악은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소리로 여겨져 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음악과 무용을 관장하던 궁중 기관 '장악원'이 일제에 의해 해산돼 국악은 존폐위기를 겪었다. 국내 최고 음악 기관 장악원의 부재는 1951년 무렵에야 '국립국악원'의 등장으로 매워졌다. 

 

국립부산국악원의 조태원 학예연구사는 "1950년에 국립국악원 직제가 공포됐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개원에 차질이 생겼다. 이듬해가 돼서야 임시수도인 부산 용두산 중턱 목조 건물 2층에 첫 자리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 이후 국악원이 서울로 이전했으나, 시발지로서의 인연 덕에 2008년 10월 국립부산국악원이 문을 열었다"며 국악과 우리 지역의 끈끈함을 드러냈다. 국립부산국악원은 전통예술공연 전반과 영남 일대의 특성을 결합해 연구하며 국악과 춤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국악 문화학교,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의 프로그램 운영으로 일반인 대상 전통예술 교육기관의 역할도 도맡고 있다.

부산과 국악의 연결고리는 국악원 개원 비화로만 그치지 않는다. 제1회 한국문화예술대상 수상자이자 부산의 대표 판소리꾼 박성희 명창은 "개화기 때부터 경상도가 여성 명창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했다"며 "본격적인 부산과 국악 인연의 시작은 한국전쟁 이후 예술 분야를 포함한 모든 것이 임시수도 부산으로 집결했을 때였다"고 말했다. 조태원 학예연구사 역시 "국립국악원 개원 시기 전국의 수많은 국악인이 모이게 돼 부산 국악이 발전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부산의 소리 문화가 마냥 순탄한 행보만을 이어나간 것은 아니다. 박 명창은 "한때 부산은 판소리의 불모지라 불린 적도 있다. 전후, 부산이 나라의 중심이었을 때는 그나마 명맥을 잘 유지했으나, 다시 서울이 수도가 되고 국가가 문화융성보다는 경제 성장을 우선시 해 부산은 국악 불모지가 됐다"고 전했다.

영남 민요 재현작 <성(聲), 찰(察) Ⅱ 소리로, 소리를 보다> 공연 모습
<출처=국립부산국악원 SNS)

그러나 그는 "내가 1998년도 부산 최초 판소리 완창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부터 부산 국악이 다시 번창했다"고 밝혔다. 판소리 완창은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리에서 부르는 공연 방식으로, 특정 구간을 끊어 토막소리로 부르는 일반 판소리 공연과 차이가 있다. 완창은 수 시간 동안 곡의 흐름을 끊김 없이 보여줌과 동시에 작품의 가치를 부각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사례가 드물다. 박 명창은 "그 후 부산 국악인들의 왕성한 활동이 이어져 부산의 소리는 성공적으로 부흥했다"며 "더 많은 부산의 소리꾼을 배출할 수 있도록 후학 양성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국악공연에 대한 부산 관객들의 반응도 매우 긍정적인 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2019 문화 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전통예술 관람에 만족 (약간 만족·만족·매우 만족의 총합)을 표한 관객은 △세종 100%, △부산 98.2%, △울산 94.6%, △전남 92.2% △광주 89.5% △서울 86.6% △충남 84.1% △제주 61.0%로 부산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박 명창은 "국악방송 라디오에서 주최한 전국 순회 판소리 공연 기획자도 부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독 극찬했다"고 전했다.

 


개성 간직한 채 이어져 온 부산 전통춤


부산은 소리와의 연도 끈끈하지만, 고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전통문화예술은 따로 있다. 예로부터 영남은 춤 문화의 성지로 불렸고, 그 중심에는 부산이 있었다. △학의 동작을 민속무용으로 승화한 동래학춤 △조선 궁중에서 동래 관아의 교방으로 전해진 동래 고무 △부산지역 탈놀음 동래야류 △동래지역 한량들의 놀이판에서 나온 동래 한량 춤 △부산 일대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동래 지신밟기 등 굵직한 무형 유산들이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뽐낸다. 

 

<영남춤 진경화> 가운데 부산 동래 한량춤 공연 모습
<출처=국립부산국악원 SNS>

영남춤학회 논문 편집위원장을 역임 중인 부산여대 김해성(아동스포츠재활무용학) 교수는 "동래는 조선 통신사들을 위한 가교로써 사신들을 접대하려 교방(기생을 중심으로 가무를 관장하던 조선 시대 기관)을 뒀기에 교방춤이 자연히 발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탈춤 야류 즉, 들 놀음도 활발했다"며 "교방춤 같은 예술 춤과 야류 등 지역색 강한 향토 춤이 함께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0호 동래 고무 보유자 김온경 명인은 부산 전통춤만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해 "부산지역 춤은 예쁘다기보다 멋이 있다. 토속성 있는 춤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나 호남지역의 춤은 선이 곱고 섬세한 특징이 있다면 우리 고장의 춤은 자연스러운 결을 선호하는 정서"라고 강조했다.

김 명인은 부산 전통춤의 명성이 "기존 전통춤 명인들로부터 전승된 오랜 맥을 이어온 덕"이라며 "광복 이후 계승된 우리 전통춤은 제대로 남겨지지 않아 당대에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동래지역은 활발한 권번(개화기 기생조합)을 중심으로 전문 예인들과 풍류 꾼이 춤의 대를 물려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탄탄한 전승 체계 기반이 있었기에 다양한 전통춤이 부산에서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역사에 대해 김해성 교수는 "1950년대 초 전국에서 피난 온 많은 무용가가 부산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또한, 이매방과 김진홍 등 한국 무용 거장들이 당시 우리 지역에서 활동했기에 부산이 전통춤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라고 얘기했다.


뿌리가 튼튼해야 열매가 잘 맺어 


문체부에 의하면 2017년 장르별 관객 수가 각각 △연극 1,858만 6,176명 △무용 108만 1,221명 △양악 502만 8,969명 △복합 325만 8,600명에 달한 데 비해 국악(한국 음악 및 한국 무용, 전통연희 등 포함)은 106만 9,329명에 그쳤다. 이는 한해 전체 관람객 2,902만 4,285명 중 고작 3.7%에 그치는 수준이다. 우리 전통 음악과 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들이 연일 노력을 쏟고 있으나, 전통예술에 대한 대중의 수요는 다른 분야에 비해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특히 낮은 연령대의 전통예술공연에 대한 인지도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 '2018 문화예술행사 직접 관람 의향 조사'에서 '전통예술 공연을 직접 관람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연령대 비율은 각각 △10대 6.6% △20대 5.0% △30대 6.6% △40대 10.5% △50대 13.6% △60대 21.3% △70세 이상 24.1%로 젊은 층인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응답자가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20대의 응답률은 가장 낮다.

우리 대학교 풍물놀이 동아리 '이음맥' 회장 최소민(경영학 2) 학생은 "전통 음악과 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자부심이 부족한 것 같다"며 "어떤 이는 풍물놀이가 '시끄러운 것', 탈춤은 '정신없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에브리타임에도 풍물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학우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대학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풍물놀이 동아리의 활동에 대해 '시끄럽다', '굿하나'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결국 우리 문화다"며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고 당부했다.

전통예술이 지금보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과 심리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또 다른 우리 대학 풍물놀이 동아리 '한울림'의 상쇠(지휘자)를 맡는 김소은(산업디자인학 2) 학생은 "많은 이들이 국악을 지루하다고 생각한다"며 "국악이 대중성을 얻기 위해서는 친숙한 분야와 뒤섞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성희 명창 역시 "대중들이 국악의 심오한 면만 바라보지 않고 쉽게 생각하면 어느새 대중은 우리의 소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전통예술 발전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조태원 학예연구사는 "지형의 고립으로 발달한 한반도 내에서의 지역별 특색에 집중해야 한다"며 "한국 문화 다양성의 근본은 지역 문화의 보존"임을 강조했다. 김해성 교수는 "전통춤 문화는 그동안 수도권에 초점을 맞춰 연구됐다"며 "춤 예술에서의 지역 소외 현상을 극복하고, 지역 이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 지역 국악에 대해 부산대 이정호(한국음악학) 교수는 "각 지역 내에서만 고장의 국악을 이어나갈 것이 아니라, 전통 음악 기반의 창작국악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은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인프라 조성이 잘 돼있어 다양한 국악 문화를 퍼트리고 있다"며 "부산에서도 창작국악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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