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류의 차별과 편견에 반대하고, 그것을 배제하자는 뜻을 가진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주의는 1980년대 미국에서 출발했다. 기존에 차별받고 소외되던 사회적 약자에게 기회를 주고, 차별과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 현대 PC주의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PC주의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현대 영화계는 '구원받아야 하는 여성'이나, '존재감 없는 유색 인종' 등과 같은 인물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바꾸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덕분에 우리는 여성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더 포스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2017)나, 서사의 주인공이 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감독 조지 밀러, 2015)를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PC주의가 영화계를 발전시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도한 PC적 요소의 삽입이 영화 완성도의 저해로 이어지는 것이 요즘 영화계의 상황이다. 약자의 차별을 없애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개연성, 핍진성, 창작성 등이 소실되고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감독 팀 밀러, 2019)를 보라. 구원자의 성별과 인종만 바뀌었을 뿐, 기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서사적 흐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또한 새로운 구원자를 등장시키기 위해 기존 구원자를 죽임으로써, 이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서사와 그 의미를 완전히 부정한다.
이러한 잘못된 PC의 사용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감독 라이언 존슨, 2017)에서 더욱 부각된다. 새로운 주인공 '레이'는 단 1주일 검술연습을 했을 뿐인데, 최고의 전사인 '루크'를 이겨버리며, '포스'에 대한 아무런 연관성 없던 '레아 오가나'는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포스'를 사용한다. '포스'는 극 중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을 수 있는 힘이다. 둘 다 '새로운 여성상'이라는 PC주의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알겠으나, 작위적인 연출로 지난 '스타워즈' 시리즈들의 설정과 영화 개연성은 깡그리 무시돼 버린다.
물론, PC주의와 그를 사용하는 상업 영화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극복되어야 하며, 그런 예술도 꾸준히 등장해야 한다. 다만 PC주의를 전시할 뿐, 그것이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감독 스티븐 드나이트, 2018)이 그렇다. 다인종 캐릭터들을 로봇 조종사로 등장시켰지만, 알맞은 서사와 설정도 없는 병풍 취급을 당할 뿐이었다.
영화계 거장 '앨프레드 히치콕'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시나리오와 시나리오. 그리고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영화는 서사의 예술이다. PC주의가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 해도 영화의 완성도를 깎아내린다면, 그것은 분명한 실패이며 PC주의에 대한 반감을 낳을 뿐이다. 영화업계는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정웅 독자위원(문예창작학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