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 적막만 남은 보수동 책방골목
무관심 속 적막만 남은 보수동 책방골목
  • 김효정 기자
  • 승인 2021.05.03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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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은 감성과 이야기가 있어요

 

독서 인구와 더불어 종이책 판매 감소가 눈앞으로 다가오며 보수동 헌책방 골목 가게들은 존폐 위기를 겪고 있다. 부산의 문화유산이자 북적대는 사람들로 활기찼던 보수동 서점에는 주인 찾지 못한 헌책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한국전쟁 이후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보수동 일대에 정착하며 책 장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때 형성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학생들의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고팔며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전국의 책들은 이곳으로 몰렸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렇게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국 유일의 헌책방 골목이자 부산의 자랑으로 자리매김했다. 35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영서점의 사장이자 보수동 책방골목 번영회의 회장인 허양군 씨는 "80-90년대 책방골목은 장사가 굉장히 잘됐었고 가게 사장님들도 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기엔 사람들이 큰 길가부터 밀려왔기에 장사가 안되는 가게가 없었다"며 "하도 책이 빠르게 팔리다 보니 손님들은 밤중에 와서 책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고 서로 책을 사려고 싸우기도 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보수동 책방골목 어귀에서 청산서점을 운영하는김순연 씨는 "70-80년대엔 학생들이 책을 구하기 위해 물 밀듯 가게로 들어왔었다"고 전했다. 충남서점을 운영 중인 남명섭 업주도 "옛날엔 3월만 되면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 한 번에 들어올 수 있는 손님 수를 정해서 가게를 구경할 수 있게끔 했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우리 대학교 정현우(경영학 2) 학생은 보수동 책방골목에 방문해 본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부산의 명소니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어서 찾았던 적이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선 딱딱한 학교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 서점에선 느낄 수 없는 정겨움과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보수동 책방골목에 위치했던 양서협동조합은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 양서협동조합은 부산 민주화 운동의 교육장으로 활동하며 보수동 책방골목에 협동서점을 열어 토론과 교육으로 민주화 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부산 양서협동조합 현정란 이사장은 "양서협동조합의 처음 시작은 독서 모임과 문화 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모이다 보니 민주화 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했었다. 부마항쟁의 시작이었던 부산대 교내 시위에 협동조합 구성원이 포함되며 민주 항쟁의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

그는 "부마항쟁 후 당국으로부터 감시와 간섭을 받게 됐지만, 조합원 교육 및 공개 강연을 통해 민주화 의식을 고취했고 소모임을 통해 지식인과 청년들을 모으는 역할을 했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양서협동조합이 생겨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빛나던 보수동 책방골목의 위기


하지만 과거 영광을 누리던 보수동 책방골목의 책방들은 위기를 맞았다. 70년대엔 70-8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문화의 골목으로 부산 대표 관광지로 이름을 떨쳤지만, 그 명성도 이젠 유명무실해졌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종이책에 대한 수요가 줄며 소규모 서점들은 물론 옛 서적 등을 판매하고 있는 책방골목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현재 남은 책방은 31곳뿐이다. 이마저도 같은 책방이 여러 지점을 가진 경우가 많아 실제 서점 주인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골목 중간쯤에서 3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온달서점 남명철 사장은 "현재 매출은 과거 잘나갈 때 비해 10%도 안 된다. 다른 가게들도 월세를 겨우 맞추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책방골목번영회 허양군 회장도 "시대적으로 책이 하향길이며 종이책은 더 그렇다"며 낙담했다. 그는 "책방 운영하시는 분 중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많아 가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골목에 새로운 가게를 차리며 현상이라도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골목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보니 새로 들어오는 서점도 없다.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책방골목이 사라지는 건 시간 문제"라 호소했다.

▲재건축으로 폐업한 단골서점(좌), 과거 모습(우) <사진=박주현 기자>

우리 대학 김태구(경제학 3) 학생은 "요즘 들어 책방골목에 들리지 않고 있다. 대학교 강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게 많고 강의 자료 대부분이 PPT로 나오기 때문에 참고서를 구매할 일 자체가 줄었다"며 "막상 필요한 책이 있더라도 대형 서점을 방문하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김순연 씨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었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탓인지 요즘엔 발길이 끊어졌다"며 "대형 중고서점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굳이 헌책을 구하러 보수동까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시각은 존재했다. 지난해 6월 책방골목 시작점에 있는 건물이 매각돼 책방골목과 상관없는 18층 아파트가 들어서며 건물 내부에 있던 8곳의 책방이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가게를 옮겨야 했던 충남서점 남명섭 사장은 "걱정도 많았지만, 막상 영업이나 매출이 이전과 크게 다르진 않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전했다. 그는 "이곳에서 계속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갑작스럽게 책방 문을 닫는 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른 서점 업주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나잇대의 학문서점 김재형 사장은 "위기라 생각하면 위기일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서점들도 많고 나름대로 주말엔 찾아오는 손님도 꽤 많다"고 전했다. 그는 "책이란 건 저마다의 향수가 있기에 매력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 매력을 알고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사장님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방골목 부흥을 위한 노력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을 인식한 중구청은 다시금 보수동 책방골목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1회 진행되는 책마을문화축제 사업을 통해 작가 초청 프로그램 및 공연, 예술 투어를 진행해왔다. 또한, 지난 2월에는 보수동 책방골목 전담 공무원을 배치할 계획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1일부터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에서 근무 중이며 책방 지원, 전시 기획 등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책방골목의 서점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까지 운영됐던 정책들에 대해 김재형 씨는 "축제 운영이나 학교와의 연계 사업 등 일부 사업들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추진하는가 싶은 사업들도 있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그는 "정책을 시행해도 실제 가게를 운영하는 서점 업주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업은 미비하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자세히 속사정을 알려고 들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정란 이사장도 현재 상황에 대해 안타깝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는 "당시 보수동 책방골목은 가난했던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이 원하는 어떤 책이든 구할 수 있었던 완벽한 서점의 기능을 했었고 민주주의 역사의 의미가 있는 곳"이라 말했다. 그는 "지자체에서 보수동 문화골목책방 프로젝트 추진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보여주기식이라 생각한다"며 "실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허양군 씨 또한, "책방골목에 대한 유튜브 영상 제작이나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크게 되지 않고 있다"며 "정책 시행을 위한 운영이 아닌 제대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돼야 한다. 보수동 책방골목 서점 월세 지원이나 관광특구 지정 등 모든 가게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중구의회 강희은 의원은 "중구청에서도 책방골목을 살리기 위해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실질적인 책방 주인들의 요구 사항에선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행태는 결국 전시 행정의 결과"라며 "책방골목 활성화 태스크포스(TF) 구성도 이뤄졌었으나 흐지부지 해체됐다. 실효성 있는 TF 구성으로 책방골목의 현재와 미래를 밝힐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 대학 정규식(한국어문학) 교수는 "책방골목이 과거의 맥을 이어가되 사고파는 공간이 아닌 놀이와 휴식의 공간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시장 상인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정책적인 부분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 책방골목을 살릴 방안"이라며 의견을 밝혔다.

한편 최근 중구청은 책방골목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과 협약을 맺어 젊은 층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주여고 동아리 '예그리나'는 중구청에서 시행한 '보수동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에 선정돼 『보수동 책방골목 와보시집』(최대호 시인 외 동주여자고등학교, 효민디앤피, 2021)을 편찬했다. 또한, 학생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보수동 골목을 배경으로 한 6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하며 보수동 책방골목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왔다.

동주여고 2학년 임지나 학생은 "보수동 책방골목은 학교 주변에 있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책을 사러 갔던 기억이 있어 추억의 장소"라며 "공모사업에 지원하려고 마음먹은 뒤엔 제대로 조사하면서 이곳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이며 전국에 단 하나 남은 골목이란 것을 알게 되자 애정이 생겼고 지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주여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 학부모들까지 직접 필사해 시집을 만들었다"며 시집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더불어 "헌책은 곧 한정판"이라며 "헌책엔 감성과 이야기가 있으니 많이들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아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효정 기자
Juwon100@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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