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이 비난의 이유가 될까
성별이 비난의 이유가 될까
  • 김효정 기자
  • 승인 2021.06.01 16: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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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들은 언제나 큰 논란을 가져온다. 하지만 성별을 기반으로 한 갈등에서 비롯된 백래시·미러링 현상들은 대중의 관심을 넘어서 집착에 가까운 양상을 띠고 있다. 별다른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용어들이 혐오 표현으로 규정돼 해당 행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혐오 세력으로 낙인찍히고 있다.

미러링 :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하나로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따라 하게 되는 행동 또는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따라 해 상대가 잘못을 깨닫게 하는 방법

 

백래시 : 사회·정치적 변화로 영향력이나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반격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성별로 인해 혐오 받는 사회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에서 2018년 20-50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성별을 기반으로 하는 혐오 표현 문제가 심각하다'는 항목에 80.7%가 동의했다. 이 중에서도 '매우 심각하다'는 답변은 28.5%로 상당수가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자료에 따르면 19-34세 청년 6,570명을 조사한 결과 청년 여성의 74.6%(4,901명)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남성은 18.6%(1,222명)만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청년 남성은 절반을 넘는 51.7%(3,396명)에 달했지만 이에 동의하는 여성은 7.7%(505명)에 그쳤다.

이러한 성별을 둘러싼 대립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오늘의유머', '엠엘비파크'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선 여성 혐오 발언이 계속됐다. 이에 맞서 2015년 '메갈리아'란 커뮤니티가 독립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로 개설됐다. '메갈리아'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선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단체들이 생겨나며 위와 같은 여성 혐오 발언을 거세게 비난해왔다. 

이러한 맥락들은 청년 남성들의 반(反)페미니즘으로 번져갔다. 이들은 '메갈리아'가 미러링 대상이었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여러 코드를 공유한다며 '메갈리아'가 일베 여성화 버전으로 혐오 표현이 판치는 곳이라는 상을 구축했다.

2017년까진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소수나마 찾아볼 수 있었던 '메갈리아'와 정상적인 페미니즘을 구별해야 한다는 목소리, 즉 페미니즘 자체는 옹호해야 한단 입장이 현재는 사실상 사라졌다. 실제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벨 훅스, 문학동네, 2017)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성차별주의를 공고히 하는 주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문제라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립 양상은 사회로까지 번졌다. 이는 대학가도 마찬가지였다. 각 대학의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이 남성의 기본권을 짓밟고 여성이 우월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는 내용이 쏟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우리 대학 A 학생은 "혐오란 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며 "한쪽에서 혐오감을 표현하면 혐오를 당한 사람은 또다시 상대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고생한 우리 윗세대는 실제 차별을 받고 자란 세대이고 남성들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때의 논리를 지금에도 대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B 씨는 여전히 가부장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난 것처럼 집안의 제사를 지낼 때도 아버지들보단 어머니들이 훨씬 고생하는 것이 현실이고 여전히 가부장제는 남아 있다"며 "이런 상황에 놓인 여성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보다는 자신들만의 논리에 갇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 대학 C 학생은 현재 상황에 분노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사회로부터 남자들은 일종의 소비재로 여기도록, 여자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하도록 주입받았다"며 "남자들이 왜 항상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희생해야 하는 위치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중앙대 내부 커뮤니티에 올라온 '등록금 납입 시 녹지를 빼주세요'란 게시물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앙대 등록금 납부 금액 중 기타납입금엔 '중앙문화·녹지 편집비'란 항목으로 2,500원이 명시돼 있다. 기타  납입금은  납입 여부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지만, 문제가 된 부분은 '녹지'가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인 사실을 모르고 납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중앙대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편집장 김시원(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3) 씨는 "그동안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이라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로부터 학내에서 성 평등을 추구하는 단체들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많았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녹지에 대한 비난"이라며 "이런 공간에서 대학 문화와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을 젠더 갈등으로 치부해 버리는 일종의 프레임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월, 우리 대학 에타에는 페미니즘 소모임 '더치페미'를 홍보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소모임에 대한 간단한 홍보 글이었음에도 120개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댓글들은 '여성우월주의', '한남(한국 남자의 줄임말)' 등의 혐오 표현들로 채워졌다. 우리 대학 이호근(경제학 1) 학생은 현재 에타의 상황에 대해 "일부 의견에 반기를 들면 차별주의자, 혐오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이평 활동가는 "강남역 사건으로 인해 미투(Me Too) 운동이나 여성 운동이 일어났고 (일부) 남성들은 이런 사회적 운동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자 기존의 갖고 있던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단 불안감으로 인해 백래시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또 이를 똑같이 다시 반박하는 미러링 현상 또한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송유진(사회학) 교수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 문화나 관습에 의한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변하며 이런 기존 질서와 가치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여성들은 이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다 보니 남성들의 입장에선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싸움의 원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한국 사회 젠더 갈등 인식에 관한 탐색적 연구: 성별 조절 효과를 중심으로'(류연규·김영미, 2019)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젠더 갈등이 가시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 △개인주의와 평등 가치의 확산 △여성 경제 활동 증가 △가부장적 젠더 질서와 법·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여성 운동에 기인한다. 현재 젠더 갈등은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여성들의 목소리가 기존 가부장적 질서의 저항에 부딪히며 갈등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학 성현우(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1) 학생은 "일부 극단적 목소리를 해당 성별의 일반적인 중론으로 오인하는 현상도 원인"이라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우리 대학 D 학생은 "한때 남성들이 엄청난 이권을 누려왔기에 이제는 여성과 남성이 차별 없이 배우고 버는 시대가 온 것도 사실이다"며 "하지만 여기에 감정을 개입하며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상대방보다 차별을 당한다 생각해 서로 꼬투리만 잡고 성별 프레임 씌우기에만 급급한 것이 현재"라 전했다.

송유진 교수는 사회적 배경의 영향력을 꼬집었다. 그는 "젊은 층에 나타나는 남성 혐오나 여성 혐오는 사회적 배경도 큰 역할을 한다"며 "지나치게 경쟁적인 구조, 양극화, 경제 불안정 등으로 인해 취업 문제를 겪게 되고 적은 파이를 나눠 가지다 보니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우리 대학 젠더어펙트연구소 연구책임자인 권명아(한국어문학) 교수는 "젠더 갈등이란 말 자체가 옷만 갈아입은 젠더 차별, 성차별 프레임이며 보수적인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차별 선동뿐만 아니라 소수 집단의 권리나 사회 민주화를 만들어가는 운동의 지향점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공격이 사회적으로 팽배할 수 있도록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계속해서 등장하는 얘기가 취업난으로 인해 성별 간 대립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기업이 신규 채용을 하지 않는 것은 20대들의 문제가 아니다"며 "현재 특정 성별의 편에 서는 것 같이 선동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과거엔 청년 실업 할당제에 대해 반대해왔다. 청년 실업에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청년 고용 할당제를 가로막고 있는 당사자들이 마치 청년 편에 서는 것 같이 선동해 이런 갈등 문제를 조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대 남성들은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의 폐지를 오히려 동조하게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길 바라며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송유진 교수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구조를 완화할 본질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상황이 만들어진 배경에 주목해 여성 안전에 위협이 되는 사건들의 제거나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명아 교수는 "젠더 갈등 담론으로 담론장이 장악된 것은 지식인, 미디어, 정부,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며 "따라서 현재 상황이 20대 청년 문제가 아닌 고용을 하지 않는 기업의 책임 문제로 담론장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관점의 젠더 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한국여성정책연구원 마경희 외, 2020) 논문에선 기존 성 평등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다. 현재 '여성' 또는 '남성'을 특정하고 대상화해 지원하는 정책에서 '젠더 관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장기적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성 평등 정책의 패러다임을 점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정책 및 정치 과정에서 주변화된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한 보다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전 부산대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 하여주 씨는 성별로만 사회를 나눠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남녀로 양분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다"며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사회가 만들어 놓은 내가 아닌, 진짜 내가 누군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낭연(경성대 심리학) 교수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상호작용할 기회가 많이 만들어진다면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금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김효정 기자
Juwon100@donga.ac.kr

<참고문헌>
『백래시』(수전 팔루디, 아르테, 1991)
『한편 1호 세대』(박동수·이우창 외, 민음사, 2020)

 

관련기사 : │사각사각│ 혐오로 물든 시대, 그 속의 청년들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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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석 2021-06-10 12:24:34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시려고 한 기자님 노력이 독자에게도 보여서 여러 모로 배울 수 있는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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