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수리로 배우는 삶의 지혜, 수영팔도시장 '우산병원'
우산 수리로 배우는 삶의 지혜, 수영팔도시장 '우산병원'
  • 장유진 기자
  • 승인 2021.06.02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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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구 구락로 43번길 23
영업시간 : 10:00-22:00

사람이 아플 땐 병원에 가 의사를 만나듯, 사물도 고장이 나면 이를 수리해줄 사람을 만나야 명을 잇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특정 물건을 전문적으로 고쳐주는 가게들을 향해 '병원'이라는 명칭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기자는 '인형병원'이나 '구두병원'까진 익히 들어봤다. 하지만 '우산병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금장치 부분이 고장 나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우산 하나를 들고 직접 가게를 방문했다. 사장님에게 우산을 건네고 둘러본 내부 전경은 '병원'이라는 호칭에 걸맞았다. 수술 도구처럼 원형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각종 장비와 한의원 약재실을 연상시키는 우산 부품 정리함에서 전문성이 물씬 느껴졌다. 우산을 세밀하게 진찰한 후 금방 튼튼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자신을 '우산병원 원장'이라 소개하는 사장님께 더 자세한 대화를 청해봤다.

 

Q : '우산병원'은 흔하지 않은 개념인데, 이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처음부터 우산 수리를 전문으로 삼고 가게를 열었던 것은 아니고, 원래는 양장점을 운영했었다. 어느 날 양장점을 방문하신 손님의 우산이 고장 나 있길래, 고칠 수 있을 듯해 서비스 차원에서 손을 봐 드린 적이 있다. 당시에 손님께서 너무 만족하시길래 보람찬 마음으로 방문하는 고객들의 우산을 계속해서 무상으로 고쳐드렸는데, 나중 되니 우산 수리 문의가 너무 많아져 버렸다. 가게를 정상적으로 영업하기 위해 우산 수리를 유상으로 전환하되, 단골손님들과의 정을 지키기 위해 단돈 2,000원만 받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우산 고치는 일을 맡게 됐던 게 우산병원의 시작이다.


 

Q : 우산을 수리하러 온 손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우산을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전국 단위로도 열 곳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안다. 부산에서는 우리 가게가 유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이나 경상권은 물론이고, 서울이나 강원 원주에서도 여기까지 우산 수리 의뢰를 맡긴 적도 있다. 한번은 부산과 멀리 떨어진 지역의 고객이 우산병원의 소문을 접하고서는 우산을 소포로 보내 고쳐달라고 한 적이 있다. 최대한 우산을 꼼꼼히 수리한 후 고객님께 다시 보내드렸더니 처음엔 굉장히 만족하셨지만, 며칠 지나 같은 우산이 다시 고장 났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그 말을 듣자마자 손님께 한 번 더 소포로 우산을 보내 달라 말씀드렸고, 바로 다시 수리해 돌려드렸다. 가게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들에게 약속한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얻는 것이다. 믿음을 주기 위해 발 빠르게 대처하려 했던 당시의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Q : 우산병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산을 펼쳐보면 8개, 10개, 많게는 28개까지, 저마다 개수는 다르지만 여러 개의 우산살을 가지고 있다. 우산살들이 서로 힘을 모아 하나의 우산을 지탱하고 있듯이, 우리의 삶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든 '상생'의 가치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해오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내 가게 앞은 물론 인근 가게들의 빗물도 함께 쓸었고, 내 가게 앞 쓰레기를 비질하며 옆 가게들 앞도 비질했다. 자기 가게만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웬 오지랖이냐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인'(人) 자의 형상이 그렇듯 인간은 원래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 그 가치를 잊지 않고 운영해왔기에 지금까지도 시장 상인들과 서로를 도와가며 가게를 잘 운영해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 가게를 운영하며 힘들거나 고된 점은 없는지.

 

아무래도 손님을 대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지적을 들었을 때나, 상대가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 말해주지 않을 때면, 감정이 상하고 힘이 든다. 이미 최선을 다해 수리하고 있는 이에게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냐"며 추궁하는 분들도 계신다. 손님들에게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기에 상대방이 내게 이유 모를 부정적 감정을 쏟아낸다면 나 역시 심적으로 괴롭다. 말을 뱉거나 행동하기 전에 감정을 절제하고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Q :  반면 가게를 운영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길을 가다 보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우산들이 정말 많다. 남들은 그냥 '못 쓰는 거겠거니'하고 지나치지만, 사실 망가진 부분 이외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부품들이 너무 많다. 그런 폐우산들을 수거해와 다시 쓸 수 있는 부품들을 골라내고, 수리를 맡기러 온 분들의 우산을 고치는 데 사용해 또 하나의 우산이 버려지지 않도록 되살려낼 때 보람을 느낀다. 제대로 분리수거도 되지 않고 버려지는 폐우산 쓰레기양이 정말 많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내 손으로 재탄생 시켜 조금이나마 환경을 보호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때 매우 뿌듯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우산을 수리하고 있을 때면 사장님의 시선은 단 한시도 우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고장 난 부분이라고 소개했던 우산의 잠금장치 부분 이외에도, 살 하나하나를 살펴 가며 매듭이 헐거운 곳은 없는지 살폈다. 수리가 다 끝난 이후에는 '손 닿는 부분의 촉감이 편안하면 하루의 기분이 달라질 것'이라며 기자가 가져간 우산의 손잡이를 윤이 날 때까지 헝겊으로 닦아주시기까지 했다. 사장님의 꼼꼼함과 섬세함이 부산에서 하나뿐인 우산병원을 더욱 유일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튼튼하게 재탄생한 우산 아래에서 우산병원이 주는 든든함까지 느껴볼 수 있길 권해 본다.

 


 장유진 기자
 2041605@donga.ac.kr

<사진=장유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임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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