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 개선이나 임금보다 갑질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휴게실 개선이나 임금보다 갑질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1.09.06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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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학교 안, 우리는 청소노동자입니다 2021.09.06

 

지난 23일, 기자는 알람도 없이 눈을 떴다. 하루 동안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일일 청소노동자가 됐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였지만, 초행길이기에 기자는 오전 7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A 씨는 현재 우리 대학교 청소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다.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출근 시간 전임에도 곳곳에 빗자루와 대걸레를 든 청소 미화원들이 눈에 띄었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A 씨 역시 이미 자신의 담당구역에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8시부터 시작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A 씨는 "단축 근무가 끝났기 때문에 7시부터 해요"라고 말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저 쓰레기통을 정리했다. "오늘 제가 일일 청소미화원이니까 뭐든 시키면 열심히 할게요"라는 기자의 포부 섞인 말에 A 씨는 "귀한 몸인데, 어떻게 시켜요"라며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A 씨를 따라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뭉쳐놓은 쓰레기봉투는 꽤 무거웠기 때문에 계단에서 손으로 조금씩 굴리며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방학이라 쓰레기가 그나마 없어서 이 정도지 학기 중에는 많으면 정말 무겁다"며 "무거운 봉투를 쉽게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며 기자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우리 대학의 경우 간혹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도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 무거운 종량제를 들고 건물 입구까지 버리러 가는 청소노동자들의 고충이 얼마나 더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묵직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건물 입구 옆쪽에 마련된 쓰레기수집장으로 갔다. 그러나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것도 버거웠다. 수집장에 있는 큰 통 안에 봉투를 넣어야 하는데, 보기에도 너무 높고 깊었다. A 씨 역시 통 안에 쓰레기봉투를 넣기 위해 어깨높이만큼 종량제 봉투를 들어 통 안으로 집어넣었다. 너무 높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A 씨는 "업체 소장이 바뀌고 나서 통이 더 높아졌다. 간혹 봉투를 넣다가 허리를 다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한 차례 쓰레기를 비우고 이번에는 대걸레를 들고 복도를 닦았다. 기자가 장갑을 끼고 대걸레를 가지고 복도를 닦자, A 씨는 "제법 잘 어울린다"며 기자를 칭찬했다. A 씨와 함께 복도를 닦다 보니 어느새 기자는 땀범벅이 돼 있었다. 밖에 비가 조금씩 내리던 날이라 그런지 건물 안은 한층 더 습하고 더웠다. 복도가 깨끗하다는 기자의 말에 A 씨는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엄청 더러웠다. 내가 락스하고 걸레로 막 닦아서 지금은 이렇게 깨끗한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언제는 한 학생이 나보고 학내 건물 중에서 여기가 제일 깨끗하다며 감사하다고 했는데, 그때 참 뿌듯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A 씨는 복도 청소를 마치고 이번에는 건물 밖에 있는 계단을 닦았다. 기자도 함께 닦으려고 했으나, 한사코 말리는 바람에 결국 계단에 있는 낙엽을 줍기로 했다. A 씨는 계단 청소를, 기자는 낙엽을 주우며 계단을 내려갔다. 숙여서 청소하다 보니 조금씩 무릎과 허리가 아파왔다. 그는 "그래도 일이 있으니까 좋다. 일이 너무 없어도 그렇다"며 열심히 계단을 닦았다. 오전 청소를 마치고 나니 9시쯤 됐다. A 씨는 커피를 타주겠다며 기자를 휴게실로 이끌었다. 휴게실로 내려가는 와중에도 A 씨의 눈은 바닥에 고정돼, 아까 보지 못한 작은 쓰레기를 줍기 바빴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말하지 못한 그들의 속사정

휴게실은 협소했다. 그런데도 밥솥, 냉장고, 선풍기, 가스레인지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작은 휴게실에서 A 씨가 타 준 커피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우리 대학 청소노동자로 10년 이상 근무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그는 이마저도 코로나19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감소해 업무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청소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자는 청소노동자의 처우와 관련해 A 씨에게 노동조합(이하 노조)에 관해 질문했다. 우리 대학 대부분의 청소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조심스레 물어봤다. A 씨는 "노조에 가입하면 업체의 갑질을 견뎌야 한다"며 "별것도 아닌 일로 꼬투리 잡아서 사람을 몰아붙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관두라고 재촉하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노조에 가입한 극소수의 인원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업체에서 전처럼 나가라고 부추기는 말을 덜 한다"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A 씨는 본인을 비롯해 다들 신라대 청소노동자들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래도 거기는 노조가 있기 때문에 함께 싸워서 이기지 않았나. 이젠 밥값도 교통비도 다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는 근무수당에 밥값과 교통비가 포함돼 있지 않다"며 토로했다. 실제로 A 씨가 보여준 월급명세서에는 약 150만 원의 근무수당만이 표시돼 있었다. 이어 그는 "밥값과 교통비는 주지 않더라도 식권이나 줬으면 좋겠다"며 작은 바람을 말했다. A 씨는 휴게실에서 본인이 산 밥솥으로 한 끼를 대충 해결한다고 했다.


협소한 휴게실이 불편하지 않냐는 기자의 물음에 A 씨는 "냄새는 좀 나도 문으로 바람이 통하니까 괜찮다. 다른 곳엔 반지하도 있고 환풍기도 없는 곳도 많다"고 했다. 학교나 업체에 건의를 해봤냐는 기자의 물음에 A 씨는 "혹시라도 자기한테 불이익이 올까 싶어 불편해도 입도 뻥긋 안 한다. 비가 오는 날엔 냄새가 많이 난다"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힘들지는 않느냐는 물음에 A 씨는 "일은 전혀 안 힘든데, 위에서 갑질하는 것 때문에 힘들다. 오죽하면 갑질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이에 그는 "갑질이 두려워 우리는 노조 가입도, 불편사항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 씨는 학교나 용역업체에 바라는 점으로 휴게실 개선이나 임금 문제보다도 갑질 문제를 꼬집었다.


A 씨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기자는 일일 청소노동자 체험을 끝마쳤다.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에 기자는 한층 더 무거워진 어깨를 느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늘 하루 아주 짧은 시간 청소노동자가 돼 A 씨의 삶을 같이했지만, 이제껏 그가 느꼈던 고충과 힘듦이 이 기사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기자는 바라본다.


박혜정 기자
2108519@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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