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이 집이 아니라면
내 집이 집이 아니라면
  • 박주현 선임기자
  • 승인 2021.09.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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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원룸에서 산다. 비좁고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저렴한 월세에 그럭저럭 살고 있다.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산 지 1년째 될 무렵, 우연히 원룸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열람했다. 서류에 찍힌 우리 집의 용도는 주택이 아닌 사무실이었다. "내가 지금 사무실에서 사는 건가?" 우리 층에는 나를 포함한 4가구가 살고 있지만, 서류상에서는 단 한 가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 거주하고 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위반 건축물로 지정된 불법 용도 변경 원룸 건축물대장
▲위반 건축물로 지정된 불법 용도 변경 원룸 건축물대장

 

본가를 떠나 많은 학생이 캠퍼스 주변 원룸에서 살아간다. 형편에 따라 좁은 방, 넓은 방 혹은 노후화된 원룸이나 신축 원룸에서 살고 있다. 우리 대학교 부민캠퍼스(이하 부민캠)·승학캠퍼스(이하 승학캠)·구덕캠퍼스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원룸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원룸이 주택은 아니다. 이른바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 있다. 이는 건축물대장상 주로 근린생활시설(소매점·미용실·의원·독서실·사무실 등)로 신고돼 있으나, 그 공간을 '방 쪼개기' 한 뒤 원룸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러한 원룸은 건축법에 따라 위반건축물이다. 정상적인 원룸이라면, 건축물대장에 표기된 용도가 공동주택·연립주택·다세대주택·주거용 오피스텔 등으로 신고돼 있어야 한다.


통계청 '주택의 종류 및 주거면적별 가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부산시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비거주용 건물에 사람이 살되, 그 거주 부분이 주택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은 1만 9,458가구로 이 중 불법 용도변경 원룸도 포함된다. 적지 않은 이들이 불법 용도변경 원룸에 살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행히도 불법 용도변경 원룸 역시 주택이 아님에도 주민등록의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증서가 작성된 날짜에 주택임대차계약서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법률상 인정되는 일자) 획득이 가능하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획득이 가능하기에 주택임대차보호법 3조 1항에 따라 임대차보호법 수혜를 받는것 역시 가능하다. 그러므로 임대인이 파산해 원룸이 경매에 넘어가도 임차인이 최우선변제권(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해 보증금을 변제받을 권리)을 획득하기에 부산시 경우 보증금 6,000만 원 이하인 임차인은 2,000만 원 이하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의 보호를 받는다더라도 불법 용도변경 원룸은 거주자에게 위험이 크다. 우선 불법 용도변경 원룸에 전세로 거주하기 위해 전세자금을 대출받으려 해도 명목상 주택이 아니므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예컨대 주택도시기금 '버팀목전세자금' 대출 상품 경우, 대출 대상을 주택이라고 못 박았다.  

 

옆집 소리에 밤마다 괴롭다

벽간 소음은 원룸 입주자를 괴롭히는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주택법 보호망에 벗어난 불법 용도변경 원룸 같은 경우, 주택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바람에 벽 두께가 얇아 소음에 더 취약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부실시공의 가능성 또한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 대학 A 학생은 승학캠 주변 불법 용도변경 원룸 거주 시절을 회상하며 치를 떨었다. 그는 "위층에서 테이프 클리너를 사용하는 소리도 들렸고, 옆집에서는 가래침 뱉는 소리나 코 푸는 소리도 들렸을 정도"라고 전했다.

 

'포용적 주거복지 제고를 위한 주거정책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0) 심층 면접 조사에 참여한 서울시 관악구 대학동(신림동 고시촌) 불법 용도변경 원룸 거주자 B 씨는 "제 방은 화장실이랑 가깝기 때문에 (옆집이) 물 내릴 때마다 들린다. 건물 자체가 좀 단단해 보이지만 뭔가 방음 부분은 좋지 않아 보인다. 옆방에서 통화하면 들을 수 있고, 마음대로 통화하기 눈치 보인다"라고 말했다.


우리 대학 이정재(건축공학) 교수는 "불법 용도변경 원룸을 시공할 때 대체로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서 부실시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콘크리트 벽 두께가 얇아 쿵쿵 소리가 나는 고체 전달음이 생길 수 있다. 또한, 공기 전달음이 생겨 옆집의 말소리나 휴대전화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약한 방화(防火)

아울러 이러한 규제에서 벗어나면 화재에 더욱 취약해진다. 주택법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14조 1항에 의하면, '공동주택 각 세대 간의 경계벽 및 공동주택과 주택 외의 시설 간의 경계벽은 내화구조(화재에 대해 가장 안전한 건축구조)로서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교수는 "경계벽이 내화구조가 아닐 수 있기에 불이 옆집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비영리 민간단체 민달팽이 유니온 김지선 운영위원은 "불법 용도변경 원룸은 가벽을 세우는 경우가 있다. 세대 간 경계벽을 콘크리트로 강력하게 세우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불이 옮겨붙지 않을 수 있는데, 웬만하면 다 스티로폼 가벽이기에 화재에 더 취약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기 안 되고, 습해

부민캠 정문 건너편 불법 용도변경 원룸 거주자인 우리 대학 박성진(법학전문대학원 4) 학생은 "방 환기가 잘되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습도가 높아 곰팡이가 많이 끼는 편"이라고 토로했다. A 학생 역시 불법 원룸에 살면서 환기 문제에 시달렸다. 그는 "습기 때문에 냄새가 나서 제습기가 없으면 안 됐다"라고 털어놨다. 


건축법 하위법 국토교통부령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11조 1항에 따르면, '신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주택 또는 건축물은 시간당 0.5회 이상의 환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연환기설비 또는 기계환기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정재 교수는 "실내 고습한 공기와 외부 신선한 공기를 교체하는 것이 환기"라며 "불법 용도변경 원룸은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므로 환기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리 대학 부민캠퍼스 인근 불법 용도변경 원룸
▲우리 대학 부민캠퍼스 인근 불법 용도변경 원룸
<사진=박주현 기자>

 

불법 원룸임을 모르는 세입자

문제는 A 학생은 거주했던 원룸이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라는 점을 모른 채 입주했다. 그가 거주했던 층은 제2종 근린생활시설 용도로 지정됐으며, 111.72㎡(약 33.8평) 공간을 4개 원룸으로 나눠 임대되고 있다. A 학생은 "위반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절대로 입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박성진 학생 또한 거주 건축물이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가 거주하는 건물은 2층부터 5층까지 근린생활시설(사무실 및 의원)로 적용돼 있으나, 그 공간을 층마다 4개나 5개로 쪼개 원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던 불법 용도변경 원룸 거주자 4명 모두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포용적 주거복지 제고를 위한 주거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위반건축물에 사는 청년 세입자 대다수가 위반건축물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약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체로 집을 구하는 단계에서 공인중개사가 불법 용도변경 건축물에 관해 고지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공인중개사법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률 시행령' 21조 1항을 살펴보면 중개대상물의 용도 등 중개대상물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중개업자가 확인·설명해야 하는 사항으로 설정돼있다. 김지선 운영위원은 "중개인이 계약자에게 건물의 하자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중개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며 "등기부 등본과 건축물대장은 계약자가 추가로 요청하는게 아니라 당연히 중개인이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부민캠 인근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중개보조원은 근린생활시설로 적용된 원룸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상관없다. 원룸이 근린생활시설로 잡혀있는데, 신축에 방이 엄청 좋은 거랑 공동주택으로 원룸이 돼 있는데 구축이라면 이 중에 어떤 걸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학생이) 전자를 택할 것 아닌가"라고 답하며 불법 용도변경 원룸 하자에 관해 정확히 고지하지 않았다.

 

왜 불법 용도변경 원룸을 임대할까

김지선 운영위원은 "공간을 많이 쪼개서 원룸으로 공급하면 임차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0평(약 33㎡)을 월세 50만 원에 임대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세 집으로 나눈 3.5평(약 11.6㎡) 방을 30만 원씩 임대할 수도 있다"며 "또한 주택 용도 보다 상업 용도가 세금을 적게 낸다. 임대인이 훨씬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 탓에 일반 원룸보다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 전·월세가 더 저렴할 수 있다. 


더불어 주택법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27조 2항을 살펴보면 '원룸형 주택은 세대당 주차대수가 0.6대(세대당 전용면적 30㎡ 미만 0.5대) 이상이 되도록 주차장을 설치해야 한다'라고 정해뒀다. 그러나 그 외에 용도 건물은 이보다 규제가 느슨하다. 그렇기에 주택법 규정만큼 주차면적을 확보하지 않아도 돼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부민캠 정문 맞은편 골목(구덕로226번길)에 위치한 빌라들은 모두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다. 부산지방법원이 2001년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하고, 그 위치에 2008년 우리 대학 부민캠이 들어섰다. 그러면서 당시 상가들이 용도를 바꾸기 위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상가를 학생들 대상 원룸으로 임대한 것이다. 또한, 이 지역 일대는 일반상업지역 적용돼 있다. 강기성 공인중개사는 "주거지역에 비해 상업지역은 땅값이 비싸다. 그래서 주거지역처럼 주택으로 재건축하거나 리모델링하면 수익이 나오지 않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에서는 불법 용도변경 원룸이 건축법 위반이므로 건물주에 시정명령을 내린다. 서구청 위반건축물 단속 담당 주무관은 "위반건축물 담당자가 1명이므로 실태조사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원을 우선으로 단속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단속반원 동원 강제철거를 했으나 건축물 다른 부분에서 피해가 발생해 건물주의 손해배상 청구를 휘말리는 문제가 있었다. 최근에는 시정명령을 내려도 시정되지 않으면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시정명령에 따라 임대인이 원룸을 공실로 만들 가능성이 있어 입주자에게 퇴거 요청 등 피해가 생길 소지가 존재한다. 


사하구청 위반건축물 단속 담당 주무관은 "공실로 만들면 주택 용도라는 것을 특정할 수 없어 시정한 것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동의대 곽병철(부동산금융·자산경영학) 교수는 "이를테면 해당 건축물을 샀을 경우 1년에 이행강제금이 100만 원 나오고 임대료로 1,000만 원을 벌 수 있다면, 이득이기에 경매를 통한 입찰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세입자 스스로도 주의 필요

동의대 부동산대학원 강정규 원장은 "사회적 주거 약자인 세입자가 법의 보호를 받는 것도 있지만, 임대차 계약 이외에 불법 용도변경 원룸으로 인한 손해까진 보호해주지 않는다"며 "세입자들이 이러한 건축물을 계약했을 경우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필요가 있다"라고 당부했다. 원룸 임대 계약 시 혹은 본인의 원룸이 불법 용도변경 원룸인지 확인하려면, 비대면 민원서비스 '정부24' 또는 국토교통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 사이트에서 무료로 건축물대장을 열람할 수 있다. 

박주현 선임기자
1906866@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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