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학점 시장은 안전합니까
당신의 학점 시장은 안전합니까
  • 정찬희 기자
  • 승인 2021.10.05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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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 사랑해"
"당연히 절대평가 해야지"

이는 최근 대학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 방식이 도입된 후, 절대평가를 선호하는 여론이 커졌다. 그러나 실제로 절대평가를 도입한 후 A+나 A가 남발돼 학점 총점이 4점이 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지적이 등장했다. 바로 '학점 인플레이션(Inflation)'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절대평가 도입 당시 먼일로만 느껴졌던 학점 인플레이션 도래는 이제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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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한 학점 인플레이션, 그러나 처음은 아니다?

대학의 학생 평가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 특히, 상대평가에 대한 회의와 절대평가 도입에 대한 논의 방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교육심리학』(주희진, 조규판, 양수민, 학지사, 2019)에 따르면 절대평가는 준거지향평가(criterion-referenced evaluation)라고도 불리며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이 준거, 즉 학습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하였는지를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이는 평가의 목적이 개인차 변별에 의한 선별이 아니라 교육목표 또는 수업 목표에 어느 정도 달성하였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반면, 상대평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을 미리 정해놓고 비율을 평가의 기준으로 하여 성취도를 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방법이다. 교육목표 달성의 충실도를 기하기보다는 개인차 변별을 위한 난이도 조절이 더 중요시된다.


위의 설명대로 △취업 △선발 △분류 등의 목적이 없다면 교육 평가에 절대평가 방식이 적절해 보이지만 현대 절대평가는 다르다. 학점 등급 제한에 자유로워 수강생이 고학점에 다수 밀집되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인플레이션(inflation)'이란 화폐의 유통 남발로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경제학 용어다. 이를 학점과 결합해 고학점 분포가 증가해 학점의 평가 가치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학점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학점 인플레이션 문제가 가장 먼저 대두된 것은 2000년대다. 2000년대 당시 취업 시장은 학점 의존도가 높아 대학은 취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학교 간 경쟁이 과열됐고 이는 곧 교수 간 경쟁으로 번져갔다. 이는 1995년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 사상이 도입되며 등장한 '5.31 교육개혁'도  학점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김영삼 정부에서 시행한 5.31 교육개혁은 기존 교육 공급자 위주, 위계와 규제 중심에서 교육 소비자 위주, 자율과 책무성 중심으로 교육 방침이 개편됐지만, 결국 1997년 외환위기로 위축된 취업 시장과 학교 간 경쟁 과열로 이어졌다. 이에 당시 대학가에서 일부 학교를 중심으로 학점을 부풀려 취업에 우위를 점하는 '학점 뻥튀기'가 성행하며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만연했다.


이렇게 대학가에 성행하던 꼼수에 정부도 칼을 꺼내 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부실 대학을 퇴출한다는 명분으로 대학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평가대학 하위 15%는 정부재정지원에 제한을 받고 이 중 17개 학교는 학자금 대출이 제한됐다. 이때 평가지표에 취업률이 포함됐고 부가지표로 '성적분포의 적절성'을 분석해 재학생이 고학점에 몰리지 않도록 견제했다. 해당 항목은 2015년부터 적용되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에서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평가지표에서 제외됐지만, 2004년 서울대가 교양과목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대평가 방식이 대학가에 퍼져 자리 잡게 되고, 상대평가는 2019년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비대면 수업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실습과 조별 과제가 축소됐다. 이에 본래 교육 과정에서 벗어난 비대면 수업 형태에 상대평가를 적용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 대학교의 성적평가 방식은 '학업성적의 평가 제4조 제1항'에 따라 상대평가가 원칙이다(본지 1170호 1면 참고). 그러나 우리 대학에서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학사관리과 담당자에 따르면 "총학생회와 다수의 학생이 절대평가를 요구했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상대평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최대한 합리적인 성적 평가방식을 적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알리미'가 발표한 우리 대학의 '전공과목 성적분포'에 따르면, 2018년 1학기 기준 A+ 와 A 학점을 받은 학생이 전체 62,833명 중 20.5%(12,911명)와 11.8%(7,417명)였지만, 지난해의 경우 전체 62,500명 중 42.0%(26,273명)와 27.9%(17,427명) 로 A+ 학점은 21.5%p, A 학점은 16.1%p 높아진 수치를 보였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상대평가? 절대평가? 나는 …"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우리 대학 재학생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적 평가방식 선호도 조사' 설문에 따르면 84.2%(377명)가 '절대평가'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선호하는 이유로는 '고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강생이 많아서'가 35.5%(133명)로 가장 많았고 '대학 교육에서 줄세우기식 성적 평가방식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가 32.3%(121명)로 뒤를 이었다.


반면, 상대평가를 선호하는 학생은 15.8%(71명)에 그쳤다. 이유로는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과 미미한 성적을 낸 학생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 71명 중 46.4%(33명)로 가장 높았고, '학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라고 답한 응답자가 30.9%(22명)로 뒤를 이었다. 더해 절대평가가 평가자의 자율에 크게 의존해 시험에는 관대하고 출석 및 과제에는 엄격해 평가지표가 무의미해진다는 의견과 변별력이 떨어져 성적장학금 수여가 어렵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절대평가를 선호한다고 답한 우리 대학 A 학생은 "코로나19로 등교가 제한돼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타인과 경쟁하는 것보다 자신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절대평가 방식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이어 "절대평가가 상대평가보다 변별력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이해하지만, 절대평가 내에서도 평가방식을 세분화한다면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학의 상대평가 및 절대평가 방식에 대한 학습자 인식 분석 - A 대학 사례를 중심으로'(이예경, 김세영, 임유진, 김보경, 대학교육개발센터협의회, 2021) 논문에 따르면 학습자가 학습 평가방식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논문에서 언급하는 A 학교는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하지만, 2019년부터 일부 전공을 중심으로 교수자가 자율적으로 평가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제도를 운영한다. 


앞선 논문에 따르면 77명을 대상으로 '해당 교과목의 절대평가 방식 도입이 적절했는가'를 5단계로 나눠 설문한 결과 '매우 적절하다'가 57.1%(44명), '어느 정도 적절하다'가 22.1%(17명)로 과반을 웃도는 결과를 보여줬다. 더해 위의 긍정적인 답변을 선택한 이유로는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기 때문에'라고 답해 성적 산출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이를 증명하듯 꾸준히 상대평가 방식을 고수하던 부산대도 학점 인플레이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대는 지난해 기존의 성적 산출 방식을 유지하되, 고학점의 비율을 늘리는 준상대평가제를 실시했다. 이에 이번 2학기에는 절대평가 전환 논의도 끊이지 않았다. 부산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재학생 대상 성적평가제도 선호도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수 463명 중 71.3%(327명)가 시행 중인 성적평가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부적절한 이유로는 31.7%(147명)가 타 대학과의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꼽았다. 


이에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태경(정보컴퓨터공학 3) 씨는 "일부 사립대의 절대평가 도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되 고학점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자 준상대평가를 논의 중"이라며 "이외에도 대학가에 도래한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또한, 학점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학점포기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학점포기제는 기준 이하의 성적을 받을 경우 해당 수업을 재수강할 수 있는 제도지만 재수강이 가능한 기준 학점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를 가진다. 현재 취득한 학점을 포기할 수 있는 대학은 △고려대 △경희대 △경북대 등이 있고 연세대도 지난 학기에 학점포기제를 실시했다. 


조용근(인하대 컴퓨터공학 1) 씨는 "학기 중 애매한 성적을 맞은 학생들이 교수님께 학점을 한 단계 낮춰 달라고 요구하고선 재수강을 신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이와 관련해 이젠 학교에서 단속하기 시작했지만, 학점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였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결국 문제는 취업

학점 인플레이션 발생으로 취업 시장에서의 학점 평가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평가 방식 변화에 따른 대학평점 변인 및 효과 분석'(이상우, 박기범, 2021) 논문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모 대학의 A+ 와 A 등급에 해당하는 평점 4.0 이상의 비율은 2018년 2학기에는 16.7%이며 2019년 1학기에는 18.3%, 2019년 2학기에는 19.8%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절대평가로 전환된 지난해 1학기에는 비율이 48.3%로 직전 학기와 비교해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전체 학생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이러한 학점 인플레이션은 우려했던 것처럼 학업성취도면에서 학생들의 변별력을 약화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결국 취업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김소정(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21졸) 동문은 일찌감치 취업에서 학점 신뢰도 하락을 감안하고 새로운 취업 전략을 수립 중이다. 그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뀌면서 학점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 채용 기업에서도 이를 인지해 학점 외의 다른 사항을 눈여겨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절대평가가 완전히 도입되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학우들의 노력이 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학교 측에서 개개인의 과목과 전공의 애착,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평가 항목을 수립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우리 대학 조규판(교육학) 교수는 "피평가자의 관점에서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상대평가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이어진다는 착각이 빚어지고 있다"며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시험 난이도와 평가 기준에 따라 고학점 수여자가 전무할 수도 있는 것이 절대평가"라며 "학점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순수한 절대평가의 방식 문제가 아닌, 그것을 악용한 고학점 남발이며 성적 평가방식은 학문적으로 절대평가가 적절하나 평가 난이도와 준거를 분명히 세워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점 인플레이션과 채용의 관계성에 대해 우리 대학 취업지원실 관계자는 "기업마다 평가 방식이 천차만별이지만, 요즘 채용은 대부분 수시로 이뤄지고 블라인드 방식 위주로 변화하다 보니 학점보다는 직무 경험이나 스펙을 중시하는 분위기"라며 "채용 트렌드를 고려했을 때 학점 변별력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찬희 기자
radiant@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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