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오늘도 사각(死角)과 여러 각도(角塗)를
조명하며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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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상대평가 방식의 물음을 꼽자면,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속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거울의 대답에 왕비는 외모를 가꾸기보다 사과에 독을 발랐다. 물음의 특성을 고려해 판단하건대 잔혹하지만 현명했다. 동화 속 거울은 평가자인 동시에 비추는 공간에 한한 전지(全知)의 상징이다. 왕비가 거울의 평가에 개입할 수 없다면 거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더 아름다워지는 것'보다 '백설공주보다 아름다워지는 것'이 옳다. 그러나 희생은 피할 수 있었다. 만약 왕비의 물음이 "거울아 거울아 나는 아름답니?"였다면 누군가 목숨을 잃을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가 마녀로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대학가는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학점 인플레이션이란 독이 든 사과를 입안에 넣고 씹을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 평가방식의 변화 추세는 이미 대학가를 강타했다. 늘 "당신의 점수는 몇 점입니까?"라고 묻던 대학 입시조차도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으로 노선을 틀었다. 대입 시장에서도 '수시 종합전형'을 도입해 교과 성적보다는 학교생활과 태도, 비교과 활동 등 다양한 평가요소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대입평가와 달리 학교생활의 성실도와 성적을 학점으로 통합해 평가하는 대학교육에서 기존의 상대평가는 필멸(必滅)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대는 바뀌고 세상도 변화한다. 코로나19는 분명한 악재지만, 학교는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했고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교육 시대로 등 떠밀렸다. 그럼에도 열린 학습의 구성원이 변화에 인색하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설령 특정 성적 평가방식이 누군가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더라도 그것은 대학 교육자에 한한 평가에 불과하다. 일생의 계획을 한 사람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은 딱한 사정일 테다.
점수는 당신에게 그 무엇도 약속하지 않는다. 약속과 보상은 온전히 노력의 산물이며, 행동으로 목표를 성취한 자에게 평가방식은 대수가 아니다. 백설공주도 마녀에게 쫓기지 않았다면 독사과를 삼킬 일은 없었을 테다. 방법이 없다면 꼭꼭 씹어 삼키고, 그게 무섭다면 뱉으면 될 일이다. 마녀의 손에 들린 것이 날붙이가 아닌 독사과인 덕에 해독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은가. 누가 알까, 학점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번뜩이는 해결책이 백마를 타고 나타날지.
정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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