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영화,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 장소영
  • 승인 2010.05.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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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9년 11월 16일


  
날씨가 추워지면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인간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14세기 중엽 유럽전역에서 유행해 전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라는 많은 사상자를 낸 흑사병에서부터 현재 심각한 수준에 이른 신종플루까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위협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인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끊임없이 대항해 왔지만, 이들 세균은 새로운 형태로 더 강력해져서 돌아와 우리를 공격 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상이변, 자연재해,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듯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다룬 영화들이 쏟아지면서 '바이러스 무비(Virus Movie)'라는 하나의 장르가 형성되고 있다.

 

눈멀지 않은 〈눈먼자들의 도시〉

<눈먼자들의 도시>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폐허가 된 도시를 누비고 있다.

 

 <눈먼자들의 도시> 감염자들이 공포에 질린 채 수용소를 헤매고 있다.


한순간에 눈이 멀어버린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 영화는 등장인물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자면 '하얀 우유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이 온통 새하얗게 보이는 증상을 일으키는 특이한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는 영화다.

정부는 바이러스의 원인을 알아내려 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한 채, 보균자들을 격리하고 질병의 확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감염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닌, 감염되지 않아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내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격리되는 남편을 혼자 보내지 못하고 자신도 감염자라고 속여 함께 수용소로 간다. 영화는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세상을 유일하게 시력을 잃지 않은 이 아내의 시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서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더욱 잔인하게 변해간다. 여기서 눈을 멀게 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이기심'이다. 감염자들을 무조건 격리시키고 감시하는 지도층, 바이러스가 옮을까봐 감염자들을 억압하고 총으로 무자비하게 죽이는 수용소 감시 군인, 총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배급받은 음식을 가로채 그 대가로 환자들의 귀중품을 약탈하고 여성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선천적인 맹인과 그의 일당들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바이러스와도 같은 이기심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결국 의사 아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리 절망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눈이 멀어버린 것이 아니라 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마지막 내레이션을 살짝 귀띔해주며 영화를 직접 보길 권하고 싶다.

이미 61회 칸느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영화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120분의 영상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자세한 이야기 전개와 치밀한 심리 묘사를 담고 있는 소설도 읽어 보시길.

 

 

비난의 주체는 누구인가 〈블레임〉

 <블레임> 감염되지 않기 위해 병원에 밀려드는 사람들

 

<블레임> 쉴새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에 의사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블레임>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들을 처리하고 있다.


올 2월, 일본에서 개봉한 〈블레임〉은 최근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신종플루로 야기된 전 세계의 혼란을 그대로 예언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어 개봉 후 화제가 됐다. 기존의 바이러스 영화에 비해 그 원인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감염 1일째 2천500만 명 감염, 감염 30일째 도시기능 정지, 감염 90일째 국가 폐쇄라는 암담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바이러스 블레임. 멈추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 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바이러스의 정체와 원인을 밝히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의사다. 바이러스가 퍼지자 환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는데, 자신이 최초의 감염환자를 진찰했음에도 바이러스를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그 죄책감은 더 심하다.

이런 주인공을 도와 바이러스의 원인을 연구하던 한 의사는 '바이러스와 인간은 비슷하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아마도 숙주(기생 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생물)를 죽이면 바이러스 자신이 죽는데도 불구하고 숙주를 죽이려고 하는 바이러스의 성격과,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러스 발생의 진원지는 양식업을 하기위해 사람들이 다량의 약품과 항생물질을 사용해 토양을 붉게 오염시킨 곳으로 이러한 양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는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실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스러운 도시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아내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평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좋아하던 여의사의 희생과 격리 병동으로 지정된 곳에 근무하는 의료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영화 속 가족들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현재 신종플루에 맞서고 있는 오늘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바이러스 확산 이야기를 다루고, 가까운 미래인 2011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보는 이의 심리적 긴장감을 더 높이는 영화다.


 

바이러스와의 처절한 사투 〈레지던트 이블3〉

 

 <레지던트 이블3> 바이러스 실험 후 복제인간시체를 버리고 있다.

 

스포일러 요소는 최대한 줄이고 영화를 소개하자면, 이 영화 역시 〈블레임〉과 같이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멸망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엄브렐러사의 T-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육을 탐하는 제3의 인종들을 피해 무장된 차량을 타고 또 다른 생존자를 찾는다.

영화는 인류 멸망 직전의 모습을 그리지만, 그 과정에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인류 스스로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양산해 낸 것이다. 바이러스를 자본의 욕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엄브렐러사의 T-바이러스가 초기에는 블루오션이 되었지만, 결국 인류를 위협하는 욕심에 불과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류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죽음이 필요했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희생 아래 살고 있다. 그러나 그 희생의 주체가 내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또 다른 생존자를 찾아 헤매다 셀 수 없이 많은 위기 상황과 맞닥뜨리고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을 위해 미끼가 된 동료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동료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은 필사적으로 살고자 했고, 인간의 삶을 갈구한다.

인류의 탄생 이후로 바이러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받고, 이에 대항하지만 다시 새로운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인간들의 미래상으로 그려진 이 영화는 우리가 앞으로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올 듯 안 나올 듯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좀비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관객들을 놀래킨다. 인간이 좀비로 변해가는 과정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는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가 주인공을 맡아 2010년 4편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 개봉한 〈디스트릭트 9〉부터 〈12 Monkeys〉,〈데스노트 L〉, 〈28주 후〉,〈둠스데이〉,〈인베이젼〉, 〈20세기 소년〉까지 많은 영화들이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된 인류의 모습과 함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소설, 만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2008년 원작만화를 드라마로 각색한 일본의 〈블러디 먼데이〉, 로빈쿡의 의학 추리 소설 〈바이러스〉등이 그 예이다.

'바이러스 무비'는 생물학적이거나 의학적으로 바이러스에 접근하지 않는다. 심리적인 접근을 통해 집단의 공포를 그리고, 이 공포에 맞서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이러스 영화는 방역당국의 초기 대응의 어려움과 치명적 질병이 얼마나 손쉽게 전염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이런 영화는 인류가 스스로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재앙, 바이러스의 습격. 최근 신종플루가 '심각'단계로 격상하면서 국민들의 공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인간의 공포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바이러스에 함께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공포심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신종플루의 백신이 될 수 없다. 신종플루에 대한 슬기로운 대처로 정신적인 백신을 만들 필요가 있다.

 


김민경 김아라 기자
동아대학보 제1074호 (2009.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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