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2010, 숫자로 보는 대한민국
  • 장소영
  • 승인 2010.05.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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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0년 03월 26일

 


10단위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28주년, 46주년 보다는 10주년, 50주년처럼 10단위가 되는 해는 더욱 특별한 해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새천년을 맞고 10년이 지난 2010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념일로 알아보고, 과거 속에서 현재를 돌이켜보자.

 


1. 100년 전 8월 22일, 나라를 잃다

매년 우리나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 '일본'. 종목에 상관없이 한·일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느 경기보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열성적으로 우리나라의 승리를 기원한다. 또 지난 삼일절에는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일본의 반한류 커뮤니티 서버를 다운시키는 등 일본과 대립관계가 형성되면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반응의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100년 전 8월 22일,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맺어진 강제 합병조약 때문이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으로부터 점차 자주적 통치권을 침해받던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강제 편입되었고 일제 강점기 즉, 경술국치가 시작되었다.

많은 의혹과 조약의 부당성이 제기됐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남았고 현재까지도 위안부, 독도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경술국치 100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각종 단체에서는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있고, 소설『덕혜옹주』의 판매가 급등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기도 했다. 또한 각종 매체에서는 올해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다양한 기획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어 일제 강점기 하의 안타까운 모습과 현재에 대해 재조명해볼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
덧붙이자면 올해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2. 60년 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 시작되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6.25전쟁이 현재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를 창출해낸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까지도 남과 북이 대립각을 세우며 연일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양상은 이산가족들에게 더욱 비극으로만 치닫고 있다. 60년이라는 세월은 이제 통일의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젊은 세대에게 설득하기에 너무 커다란 벽으로 자리잡았다.

올 한해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을 담아낸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6.25전쟁 60년을 맞아 MBC에서는 「로드 넘버 원」이라는 드라마를 기획하고 있고, 장훈 감독 역시 전쟁을 배경으로 한 「고지전」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영화 「벅샷」 역시 6.25 흥남대철수작전을 배경으로 신호범 의원의 일대기를 그려낸다. 「벅샷」 제작진은 50부작 대하드라마 「기적을 이룬 꿈」과 다큐멘터리 「꿈」도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권상우 주연의 영화「포화 속으로」, 2010 SBS 대기획에서도 6.25전쟁을 다루는 등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각종 매체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비록 미화되고 조금은 왜곡됐을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매체들을 통해 6.25에 대한 가치 재정립이 필요한 때이다.

 

 


3. 50년 전 4월 19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움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껍데기만 남고 가라'. 수능 필수기출문제 중 하나인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일부다. 그저 수험생들은 문제풀이 대상으로만 이 시를 대하고 있어 기계적으로 배경과 의의를 암기할 뿐이다. 그러나 이 시의 배경인 4.19혁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유'는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50년 전 이맘 때 쯤, '민주주의'와 '자유'는 '독재'와 '탄압'이라는 단어에 뒤덮여 빛을 볼 수 없었다.
3월 15일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기폭제가 되었다. 학생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거세지자 경찰은 무차별 발포하며 강경진압을 시도했고, 4월 1일 전국민의 거족적 규탄 시위를 촉발시킨 마산 김주열 학생 사건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일명 넥타이 부대 등 화이트칼라 계층까지 시위에 동참해 이승만 정권에 반발했다. 4.19혁명은 근·현대사 최초로 국민이 직접 자유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19민주혁명회 광주전라지부에서 주최하는 '4.19민주혁명 제50주년 추모 인터넷 글짓기'공모 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혁명의 정신을 되새겨 보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그때의 모습을 회상해보는 것도 좋다.

 

 

4. 40년 전 4월 22일, 국민적 근대화운동이 시작되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익히 들어본 이 노래는 70년대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새마을운동' 노래다. 박정희 대통령이 펼친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단순한 농촌개발 사업이 아니라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하게 됐다.

한때 개그프로그램에서 새마을운동 복장에 구수한 말투를 캐릭터로 인기를 끈 개그맨이 있는가 하면, 가수 피플크루가 '새마을운동'이라는 노래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처럼 새마을운동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됨에 따라 새마을 운동의 이미지는 점차 대중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경제가 성장되고 사회가 안정된 90년대부터는 '더불어 살아가는 운동'으로 이념의 폭을 넓혀갔다.

2010년 현재는 각 마을마다 새마을협의회가 구성되어 있고 이를 통해 마을 주민과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하고 있다.

 


5. 30년 전 5월 18일,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주의

몇 년 전 영화 「화려한 휴가」가 관객수 700만을 돌파하면서 관객들의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게 한 요소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무참히 짓밟힌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이었다.
이러한 5.18 민주화 운동이 발발하게 된 것은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군부 정치에 대한 반발심에서였다. 전두환 군사정부의 독재정치에 맞서 시위가 발발하던 30년 전 5월, 전두환 대통령은 시위가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해 전국에 군대를 배치시킨다. 광주에도 군대가 배치되었고, 광주시민들은 이에 격렬히 항의했지만 시위가 격앙될수록 군대는 학생과 일반 시민 등을 무참히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실패했지만, 이어서 일어난 6월 민주항쟁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올해 30년을 맞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에 민주성지 순례 걷기운동단체 '민주올레'는 올레길 걷기 행사를 통해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또한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기 위해 등재추진위를 발족한 상태다.

 

 

6. 10년 전 6월 15일, 남과 북 화해의 물꼬 트다

새천년이 시작된다는 설렘의 순간도 벌써 1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평양의 하늘 아래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미소를 짓는 모습은 그동안 적대감을 가졌던 남북간의 관계가 호전되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등의 남북교류 사업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남북공동선언은 이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는 등 남북간 교류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하지만 이후 일각에서는 남북간 교류에 대해 "결과적으로 북한의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물론 현재도 남북간 교류의 방법적인 면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신문에는 남북간의 미묘한 대립을 다룬 기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아라, 박기성 기자
동아대학보 제1077호 (2010.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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