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생활 답사기
나의 문화생활 답사기
  • 장소영
  • 승인 2010.05.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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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5월의 주말,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아쉬운 기분이 든다. 그러나 무작정 떠나기엔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여진다. 이제껏 다이어리에 적어뒀던 '꼭 가봐야 할 곳'과 인터넷에서 본 기사를 체크해보고 자료를 모았더니 갈만한 곳이 제법 많다. 다음 절차는 날씨 체크! 기상청에 전화(131)를 걸었더니 '오늘 부산은 하루 종일 맑음'. 기쁜 마음으로 밝은 색 셔츠에 산뜻하게 카디건을 하나 걸치고, 발에 착 달라붙는 컨버스화 끈을 동여맨 뒤 힘차게 현관문을 나섰다.

〈사진, 글 = 김지혜 이유원 기자〉

 

*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화골목 남(南)편 입구 - 문화골목 북(北)편 입구 - 문화골목 1층 카페 '다반' - 음악카페 '필하모니' 내부모습 - 시네마테크부산 1층 로비 -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특별전 포토존 - '모네에서 피카소까지'전시회장 입구 - '필하모니'에서 손님들을 위해 비치해 놓은 CD들.

 

 



수십 가지 매력이 공존하는 곳 - 경성대 앞 '문화골목'


발걸음은 가볍게, 가슴엔 설렘을 가득 안고 지하철을 탔다. 이윽고 경성대·부경대 지하철역에 도착! 3번 출구에서 나와 21세기센츄리시티 빌딩을 끼고 우회전, 패밀리 마트가 있는 사거리 골목에서 대연주차장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철판으로 된 멋스러운 간판이 나타난다. '골목 안에 공연도 보고 그림도 있고 술 마시면서 노래도 하네'.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2009), '제3회 부산건축대전' 대상에 빛나는 '문화골목'은 예전부터 꼭 한번은 가봐야겠다고 다이어리에 별표까지 쳐놓았던 곳이다. '골목대장 최윤식'이라는 문패가 나를 반겼다. 지금의 문화골목 앞에서 음악카페를 운영하던 건축가 최윤식 씨가 마주한 주택 네 채를 허물어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철판으로 멋들어지게 써 놓은 '문화골목' 간판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초록 잔디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마당을 건너 내부로 들어갔다.

가옥들은 다리로 연결돼 있는데 군데군데 연못과 나무, 꽃 등으로 장식된 골목길은 '비밀의 정원'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든다. 더욱이 도착한 시간이 오전이라서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는 한층 문화골목을 신비롭게 만들었고,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문화골목을 거닐고 있던 사람들과 잠시 얘기도 나눠봤다. "문화골목의 조용한 분위기에 매혹됐다"는 최락순(동명대) 학생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함을 중시한 카페 대신 철과 목재로만 돼서 다소 투박하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자주 와서 휴식을 취한다"고 전했다.

문화골목 1층 중앙에 위치한 카페/와인 바(bar) '다반'에서는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우리 대학교 천성민(문예창작학 04 졸) 동문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문화골목은 "늘 한결같은 고즈넉한 분위기"로 "도심 안에서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여유로움을 좀 더 만끽하려고 달달한 코코아 한 잔을 시켰다. 그리고 카페를 둘러보는데, 가는 곳곳마다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은은한 조명을 밝혀 엔틱(antique)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구석구석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가구도 있었다. 카페의 한쪽 자리에서는 영화 '친구'를 촬영하기도 했단다.

'다반'에서 얻은 문화골목 세부 설명 책자를 토대로 1층에 있는 갤러리 '석류원'부터 돌아봤다. 100년이 넘은 석류나무가 갤러리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구멍이 뚫려 있는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인상적이다. 군데군데 있는 풀과 은은한 조명, 벽돌 기둥을 보니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그림 배치에서는 '여백의 미'가 한층 뚜렷이 느껴졌다. 갤러리 '석류원'은 오후 12시 30분부터 문을 연다.

이외에도 1층에는 주점 '고방'과 오리엔탈 바(bar) '색계(LUST CAUTION)'가 있다. 이들 가게는 오후 8시가 되면 문을 여는데, 아이디어 만발의 인테리어로 손님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고 전해진다. 점입가경(漸入佳境) 문화골목이다.

철로 된 투박하지만 섬세함이 느껴지는 계단을 타고 2층에 다다르니 제일 먼저 음악카페 '노가다(老歌夢)'가 있다. 2만장의 LP판이 빼곡이 꽂혀 있는 만큼, 오래된 노래가 많아서 이름이 '노가다'란다. 그 옆에는 '용천지랄 소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이제라도 발견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자주 편안히 찾아가 그림이나 연극도 감상하고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바쁜 일상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보니 오늘부로 최윤식 골목대장님이 나를 골목대원으로 임명한 느낌이다. 더 오래도록 앉아서 동행인과 이야기도 하고, 여유로움을 좀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뒤이어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남아있어 몇 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남긴 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클래식과 함께한 우아한 식탁 - 부산문화회관 앞 '필하모니'

문화골목에 매료돼 이곳저곳 발걸음을 재촉했더니, 어느덧 배에서 '꼬르륵'하고 소리가 난다. 가까운 곳에 클래식과 음식이 한데 모인 곳이 있다는 정보를 일찌감치 입수해 찾아가는 지도를 인쇄해왔다. 15분 정도 지도를 따라 걸으니 대연동 부산문화회관이 보이고 바로 앞 '필하모니'라는 가지런한 글씨체의 간판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KBS 클래식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조근조근한 진행자의 목소리와 감미로운 선율에 잠시 귀가 호사로웠다. 메뉴판에서 오븐스파게티를 주문하고 찬찬히 가게를 둘러봤다. 여느 가게와 달리 천장이 높고, 고집스레 놓인 수백 장의 클래식 CD와 레코드판이 눈에 띈다. 필하모니 조영석 대표가 옆에 다가와 그와 함께 도란도란 담소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가게 안의 CD와 레코드판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셀 수 있는 '몇 장'은 중요하지 않다며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중요하단다. 가게 안의 클래식 음반들은 40년 동안 그가 들은 것 중에 가장 좋은 음악만 모아놓은 것이다.

필하모니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조 대표는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음악 들으러 자주 가던 곳이 '필하모니'였다.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가게 이름을 '필하모니'로 지었다"며 미소 지었다. 그 뿐만 아니라 1990년 외국서적 골목의 양복점에서 화재가 났는데, 그 인근에 위치하던 필하모니에 불이 옮겨붙어 그렇게 조영석 대표의 보금자리는 하룻밤 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그 때 아파트 한 채 값이던 스피커 2대가 불에 다 타버렸다"며 껄껄 웃었다. 20년의 시간으로 그 날의 상심을 털어버렸나 보다.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에 다가가는 방법을 묻자 "먼저 학교 교정의 꽃이나 나무를 보고 느끼는 마음으로 클래식을 접해야 한다"며 "처음엔 영화에 삽입된 O.S.T를 먼저 듣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클래식은 어렵고 쉬운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와 닿는 게 자기 음악"이라고 하면서 통속적으로 해석돼 있는 클래식에 거부감을 표했다.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스피커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나온다. 바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나오는 그 음악이다. 영화를 3번이나 봤지만 이 음악이 이런 웅장함을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다시 느꼈다. 조영석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이 음악은 내게 와 닿았으니 바로 내 클래식인 셈'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클래식 얘기를 하니 어느새 주문한 오븐스파게티가 나왔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다. 직접 만든 소스와 100% 자연산 치즈를 사용하기 때문일지도.

찾아가는 길은 남구 대연동 문화회관 앞. 영업시간은 낮 12∼오전 12시(자정). 메뉴는 해물버섯라이스, 오븐스파게티, 콤비네이션 피자가 있고, 가격대는 1~2만 원 선이다. 가끔 저녁에 실내 음악회를 한다니 가게에 일정을 물어 참고하면 좋다. 관련문의 ☎051-628-2592.

 


서양미술사가 한곳에 - 부산시립미술관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특별전


지하철을 타고 시립미술관역에 내렸다. 5번 출구로 향하자 시립미술관으로 가는 길목마다 친절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길 헤맬 일이 없다. 미술관 정문으로 들어오니 모네의 <앙티브의 아침>, 르누아르의 <르그르 양의 초상>, 마티스의 <무어 병풍>, 피카소의 <여인과 아이들> 그림이 한 건물 당 각각 현수막으로 걸려 있다.

전시관 입구에서 그림감상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오디오 가이드(3천 원), 전시소도록(1만 원), 전시대도록(3만 원)이 판매될 뿐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을 위한 무료 팸플릿도 배부되고 있었다.

전시장은 미술이 거쳐 온 시대흐름에 따라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있다. 먼저 '사실주의와 현대적 삶의 풍경'이라는 주제의 1섹션을 둘러보았다. 에두아르 마네의 <키어사지호와 앨라배마호의 해전>에서 배에 붙은 화염과 어두운 색채가 인상 깊다. 알고 보니 미국 남북전쟁 당시 프랑스 해안에서 벌어졌던 중요한 해전을 다룬 작품이라 한다.

1섹션 한 켠엔 조각 전시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특이한 작품이 보였다. 네모난 돌에 남녀가 입 맞추고 있는 모습을 단순화시켜 표현한 코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다.  브랑쿠시는 극단적인 단순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미술에 대한 지식이 얄팍한 나로서는 그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도통 가늠할 수가 없으니 어찌할꼬.

2섹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이 유독 한 그림 앞에 몰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 포스터와 팸플릿의 메인을 장식하는 <르그르 양의 초상>이었다. 새침한 표정으로 꼭 맞잡은 두 손에서 아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느껴진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르그르 양의 결혼식에도 참석했었을 만큼 그 친분이 두터웠다고 전해진다.

'피카소와 아방가르드'를 주제로 하는 3섹션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를 표현한 작품을 감상하고, 4섹션에서는 미국의 모더니즘적 현대 미술을 엿볼 수 있었다.

4개 전시장을 다 둘러보고 나오니 아트샵이 있다. 명화엽서와 핸드폰 줄, 컵 받침대, 퍼즐, 스카프 등 종류가 다양하다. 차마 직접 소장할 수 없는 명화를 기념품으로나마 간직하고픈 욕심으로 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 계산대에 올려 보니 1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이때가 아니면 못사는 거다 싶어 뒷생각 하지 않고 카드를 긁어 버렸다.

 전시장을 나가기 전 우연히 스태프 한 명과 마주쳐 이야기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우리 대학교를 졸업한 동문이었다. 송인석(회화학과 졸) 씨는 "미술 전시회를 즐기려면 그림의 외면보다는 왜 유명한지 그 배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부에 마련된 팸플릿과 오디오가이드를 이용해 작품을 보다 폭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시회는 6월 2일까지 휴관 없이 매일(오전 10시~오후 7시) 열린다. 관람료는 일반·대학생 1만 2,000원, 중·고생 9,000원, 초등·유치원생 7,000원이다. 인터파크 인터넷 예매는 1,000원 할인된다.

 


365일 영화의 바다 속으로 - 시네마테크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출발, 지하철 동백역 맞은편 경동아파트를 끼고 대우마리나아파트와의 사이 도로로 600m 정도를 걸어 내려오면 요트경기장 중문이 나온다. 중문으로 입장해 좌측으로 약 50m 내려오니 요트경기장 옆으로 'PIFF' 로고가 건물 상단에 선명히 새겨진 '시네마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뒤로 펼쳐진,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한동안 응시한 뒤 시네마테크로 들어섰다. 제일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핸드프린팅이 있는 동판이 눈길을 끈다. 동판 옆으로는 상영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단관인 이곳 상영관에서는 매일 정해진 주제와 일정에 따라 영화가 상영된다.

부산에서 다양하고 희귀한 영화를 접하는 방법으로는 지난 96년도부터 개최돼 온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그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만, 영화제는 10일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만 열린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시네마테크가 해소해준다. 160석의 좌석을 갖춘 1층 영화 시사실에서는 예술영화가 지속적으로 상영된다.

건물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안영수 시네마테크부산 프로그램팀장은 시네마테크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창구"라고 설명했다. 같은 층에는 각종 기자재실과 보존 가치가 높은 아시아 영화의 필름 및 기타 촬영본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필름 보관실 및 검색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영상물을 언제든 빌려볼 수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부산분원 또한 시네마테크의 매력적인 장소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고전영화 VOD(1,400여 편), 한국 독립영화 VOD(1,200여 편), 시나리오 1만여 건, 스틸/포스터 이미지 15만 건, 기사/평론 3만 5천 건 등의 서비스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제공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이달 23일까지 상영작의 주제는 '동시대 유럽 거장전 Ⅱ'다. 2007년 6월 '동시대 유럽 거장전 Ⅰ'에 이어 두 번째로 이어지는 이번 영화전은 에릭 로메르의 '사계절 이야기', 알랭 레네의 '스모킹'과 '노 스모킹'(1993), 필립 가렐의 '더 이상 기타소리를 들을 수 없어'(1991) 등으로 유럽 영화와 이 시대를 바라보는 거장들의 뜨거운 시선과 감동을 느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요금은 일반 5,000원 /회원 3,500원. 영화표는 시작 2시간 전부터 현장 구매할 수 있고, 인터넷(cinema.piff.org)을 통해 회원가입 후 예매도 가능하다.

관련문의 ☎051-742-5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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