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들여다 본 대학가
신조어로 들여다 본 대학가
  • 이성미
  • 승인 2010.11.03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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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은 올해로 564돌을 맞은 한글날이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우리 한글을 그릇되게 왜곡하지 말고 보존해야함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의 흐름상 다양한 어휘의 변용은 필수 불가결해졌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으로 새로운 어휘가 생기거나 기존의 어휘가 다른 어휘로 변용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언어.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을 반영하는 '대학가 신조어'는 대학생들의 생활 패턴 변화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요즘 대학가에 떠도는 신조어들을 가상 인물들을 통해 살펴보고 신조어들이 어떻게 요즘의 대학사회를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주의! 다소 생소하거나 억지스러운 신조어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


▲어학 공부에 열을 올리는 '토폐인'족

토폐인, 취업5종세트, 자소설… 취업현실 반영하는 신조어

대학생들에게는 언제나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취업이다. 누구는 대학이 취업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까지 말하는 요즘, 대학가에는 다양한 취업관련 신조어가 떠돌고 있다. 사실상 대학가의 신조어 대부분이 취업과 관련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일절'. 유관순이 연상되는 그 3·1절이 아니다. 31세 전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취업길이 막힌다는 의미로 오늘날 이같은 불상사를 대비하는 대학생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이렇듯 신규 구직자들의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졸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는 '대오족'(대학 5년생)은 캠퍼스 내에서 흔한 풍경이 됐다. 이들을 표현하는 신조어는 '대학 둥지족', '모라토리엄족', '올드보이' 등 다양하다. 지난달 본보(제1081호)에도 보도된 바 있는 졸업유예제 관련기사만 보더라도 취업을 위해, 혹은 취업을 하지 못해 졸업을 미루는 4학년들이 많아지고 있는 흐름 때문에 생긴 표현들이다.

혹시 일명 '열린취업5종세트'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턴,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등의 실무경험이 취업을 잘하는 지름길이라며 이 5종 세트는 대학생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열린취업5종세트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원을 하려면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는 필수다. 자소서가 필수로 작용하면서 자신의 이력을 부풀리거나 미화시켜 요즘 대학생들은 자소서가 아닌 '자소설'을 쓴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취업한 졸업 예정자를 뜻하는 '낙바생'과 전공과목 외에 토익이나 취업강좌 등의 강의를 찾아다니는 '강의 노마드족'(학점쇼핑족), 학업과 창업의 이중생활을 겸하는 '더블 라이프족'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경영대 한 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A학생은 현재 취업 준비를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기업체 인턴 모집이 한창이던 지난 학기에 A학생은 3곳에서 인턴 경험을 쌓았다. 그는 "주위에도 인턴만 몇 군데 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일단 뭐든 많이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닥치는 대로 다 해볼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취업 전 여러 인턴을 전전하며 다니는 학생들을 일컬어 '메뚜기 인턴'이라 부르고 있다. 유사한 의미로 똑같은 업무를 장소만 바꿔 인턴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행정인턴의 줄임말인 '행인'이라 일컫는다.

한편, 이제는 반복해 말하지 않아도 대학생들에게 필수코스인 어학능력 습득과 관련한 신조어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토익폐인을 일컫는 '토폐인'은 우리 대학 도서관 열람실만 찾아가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연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B학생은 자신의 하루 계획 중 수업과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토익공부 시간으로 메꿔 매일같이 토익공부를 하고 있다.

이밖에도 취업난과 관련한 신조어로는 몸값을 올리기 위해 편입학을 거듭하는 '에스컬레이터족', 대학 졸업을 미루는 'NG(No Graduation)'족, 졸업하고도 오랫동안 취업을 하지 못한 '장미(장기미취업 졸업생)족' 등이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과제에 몰두하고 있는 '코피스족'의 모습이다.

알부자족, BMW족… 생활 패턴의 변화를 반영하는 신조어

'88만원 세대'니 '등록금 1,000만원 세대'니 하는 신조어들은 모두 오늘날 대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씁쓸한 신조어들이다. 또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생활패턴 역시 다양하게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신조어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문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4학년 C학생은 대표적인 '나홀로족'이다. 이는 바쁜 취업준비와 아르바이트로 동기나 선후배와의 관계를 지속해나가기 어려운 학생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특히 졸업을 앞두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자신만의 스케줄에 맞춰 취업준비, 아르바이트, 공부 등을 혼자 해결하는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D학생은 주로 혼자 끼니를 떼우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오거나 커피전문점을 즐겨 찾는다. 한 때 비싼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여성들이 '된장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에게는 과제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 혼자 시간을 즐기기에는 딱이다. 이처럼 커피전문점에서 공부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코피스(coffee+office)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반면 공과대학 3학년인 E학생은 이런 '나홀로족'들이 부럽기만 하다. 그 역시 바쁜 대학생활로 나홀로족이 된 것은 맞지만 그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의 나홀로족이다.

제대 후 언제까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어 등록금을 직접 벌기로 한 그는 '알부자족'이다. 알부자의 사전적 의미는 겉보다는 실속이 있는 부자라는 뜻이지만, 오늘날 알부자족은 각종 아르바이트로 부족한 학자금을 대는 학생들을 나타내는 반어법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고 1.5배의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니는 '점오배족'도 F학생에게 해당하는 신조어다.

예전부터 지방학생들의 서울원정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생겨난 단어도 있다. 바로 'KTX풀족'으로 각종 설명회나 면접, 대외활동, 문화생활 등 다양한 이유에서 상경하는 대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단어다. 이들은 함께 서울을 왕복할 동행인을 찾아 서로 경험도 공유하고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학가의 신조어들이 무조건 안타까운 현실만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위트가 넘쳐나는 신조어도 눈에 띈다. 일명 'BMW족'이라 불리는 이 신조어를 처음 듣는 이들은 자칫 부르주아적 요소가 담긴 신조어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생이 해당하는 BMW족은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의 준말로 대학생뿐만 아니라 높은 물가와 교통체증 등으로 우리 사회 전체에도 적용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이퇴백', '꽃가루', '스마트폰 과부' …대학생의 성향을 반영하는 신조어

사회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향이 반영된다. 또한 시대의 급변 역시 우리 세대의 특성을 다양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청년실업으로 생겨난 신조어인 '이태백' 즉,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신조어는 이제 '이퇴백'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20대에 스스로 퇴직을 선택해 백수가 된다는 의미로 자기만족을 중요시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단어다.

각종 공모전이나 과제들로 팀프로젝트의 빈도가 높아짐에 따라 생겨난 신조어도 있다. 팀프로젝트에서 팀 전체의 성과를 평가받는 점을 악용하는 학생을 뜻하는 말로 다른 팀원에게 묻어간다고 해서 '꽃가루' 혹은 무임승차자를 뜻하는 '프리라이더'라고 불리는 이들은 기존의 '얌체족'이라는 단어와도 유사하다. 예술대의 G학생은 "팀에 1명씩은 꼭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점수나 혜택은 꼬박꼬박 챙겨간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빠르게'를 외쳐대는 우리 사회에서 '찰나족' 또한 대학생들의 특성을 드러내는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킹이 가능하고 신속한 것을 좇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찰나족은 즉흥적이고 스피드를 즐기는 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확산됨에 따라 관련 신조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 과부'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본래는 남편이 밤새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부인이 독수공방한다며 생긴 의미였다고 한다.

또한 요즘에는 트위터를 많이 활용하면서 실시간 소통이 확산됨에 따라 'RT'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는 다른 사람이 트위터에서 팔로어(follower)들에게 다시 전하는 '리트윗'을 줄인 말이다.

'우행시'처럼

대학가는 대한민국에서 20대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에는 기성세대나 사회 일반에 형성돼 있는 문화와 차별화되는 '20대', '대학생'만의 문화가 생겨난다. '신조어'와 '줄임말'로 살펴본 오늘날 대학생들의 문화가 주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현실, 불확실한 미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취업난, 생활고 등은 모든 시대를 아울러 20대를 괴롭힐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청년의 반은 실업자, 나머지 반은 신용불량자라는 뜻의 신조어인 '청년실신'이 당연시 돼버렸을까. 물론 무분별한 준말과 어법에 맞지 않는 신조어들은 우리말을 해친다는 측면에서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막을 수 없다면 앞으로는 좀 더 긍정적이고 행복한 '신조어'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본다.  '우행시'처럼.


 김아라 기자
 hakboar@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81호(2010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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