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벽화마을을 찾아가다
부산의 벽화마을을 찾아가다
  • 장소영
  • 승인 2010.12.1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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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동, 벽화와 무덤이 한 자리에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문현동은 몇 해 전에 주민과 학생을 포함한 시민 300여 명이 담벼락에 그림을 새겨 넣으면서 '벽화마을'로 탈바꿈했다. '200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지역이자 영화 『마더』의 촬영장소이기도 해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고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기자는 지하철 2호선 문전역에서 내려 무작정 문현동 벽화마을을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걸어 문현동에 도착, '벽화마을이 어디에요?'를 수십 번 되물은 끝에 한 아주머니에게 부성고등학교 뒤로 난 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 오르면 벽화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90도 가까이 되는 듯한 꺾고 꺾이는 경사로를 네 번쯤 오르자 부성고등학교가 보였다.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부성고등학교 뒷길을 따라 다시 한참을 걸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문현동 벽화마을은 문전역 4번 출구로 나와서 남구 10번 마을버스를 타고 전포고개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 올 수 있다. 기자가 갔던 코스는 거꾸로 된 코스다. 참고로 전포고개에서 벽화마을 구경을 시작한다면 마을 입구에 있는 그림지도를 참고하면 보고 싶은 벽화의 위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초행자는 길이 헷갈릴 수 있으므로 확실한 사전조사를 하고 방문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15분쯤 지났을까. 문현동 공영주차장이 보였다. 그곳에는 보라색 바탕에 빗방울 그림이 그려진 지붕을 얹은 건물이 있었다. 드디어 첫 번째 벽화를 발견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그림이 이어진 곳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벽화는 아이 셋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풍경이었다. 이와 함께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아이 셋, 장독대 뒤에 숨어 혀를 낼름 내밀고 있는 아이, 그네타고 있는 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아이가 사이좋게 놀고 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와 대조적인 풍경을 이루는 그림이다.

문현동 벽화마을은 황령산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에 있다. 황령산으로 가는 길에 늘 벽화마을을 지나쳐 간다는 황정임(51)씨는 "친구랑 등산을 왔는데 벽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기자기한 그림을 보기 위해 연인과 함께 벽화마을을 찾는 이들도 많았다. 서울에서 여행을 왔다는 공진규(25)씨는 "부산을 둘러보다가 여자친구가 벽화마을을 좋아할 것 같아 왔다"며 기자에게 카메라를 건네주고는 여자친구와 자신의 모습을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한 귀퉁이를 지나자, 공놀이를 하다 창문을 깨놓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는 아이가 그려진 벽화가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벽화 앞에서는 소년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따라하며 사진을 찍는다.

다음 벽화는 동화 『마리 이야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열두살 남자아이 '남우'가 고양이 '요'를 빨간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페달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남우가 사는 바닷가 마을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한 귀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현동 벽화마을을 둘러보며 느낀 가장 특이한 점은 마을 곳곳에 묘지가 남아있는 것이다. 사실 원래 이곳은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6·25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묘지 사이 빈터에 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이라고.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80여 기(基)의 무덤이 흩어져 있어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구에서 문현동을 찾아왔다는 김정근(32)씨는 "묘지와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이 묘하다"며 "처음에는 섬뜩했는데 오히려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했다. 정인우(27)씨는 "얼마나 급했으면 공동묘지에 마을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피란민들의 각박한 삶이 느껴진다"고 말을 이었다.

 

문현동, 두 번째 보물찾기를 시작하다  



 

보라색 콘크리트 지붕에서 시작해 전포고개까지 다다르면 직선코스의 벽화마을 감상은 끝이 난다. 그렇지만 아쉬워할 필요 없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듯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 두 번째 코스부터가 본격적인 '보물찾기'다.

빨래를 널어놓은 벽화, 민들레 홀씨 부는 아이 벽화, 해바라기 벽화 등 어떤 벽화도 달동네 문현동과 동떨어진 것이 없다. 골목길을 들어설 때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키 작은 잿빛 담장들 위로 생명력 강한 빨간 담쟁이덩굴이 타고 올라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발 아래를 내려다보자 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로 노란 들꽃이 보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문현동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것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곧게 폈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머리를 식힌다. 문현동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탁 트인 전망을 선물한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을 내려다보면 지친 일상을 떠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보수동 벽화, 한 편의 동화로 말해요

책방골목으로 유명한 보수동에도 벽화마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곧장 지하철을 타고 1호선 자갈치역으로 갔다. 국제시장을 지나 부평시장을 따라 20분 정도 걸었을까. 부산은행 반대편 길에 책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모양의 지표물이 '여기가 보수동'임을 나타내고 있었다.(이 경로 역시 기자의 잘못된 정보로 한참을 돌아간 코스다. 보수동으로 바로가기 위해서는 59번, 60번, 81번 버스를 타고 보수동 책방골목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책 모양의 지표물을 지나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발아래로 '여기부터 책방 골목'이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좌우로 늘어선 헌책방 골목을 뒤로하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그곳은 '벽화마을'이라 하기엔 소박한 규모였지만 분명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벽화에는 '카멜레온의 여행'이 알록달록하게 새겨져 있다. 이야기는 카멜레온이 고향을 떠나면서 겪는 다양한 일화들로 구성된다. 벽화는 카멜레온이 늙은 곰이 싫어 숲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카멜레온은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늙은 곰에게 돌아온다. 늙은 곰은 다시 돌아온 카멜레온을 꼭 안아준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벽화다.

단 한 가지, 방문객의 소행인 것으로 보이는 카멜레온 눈의 낙서는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홍일국(36)씨는 "보수동은 타지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낙서된 부분이 복구되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늙은 곰의 얼굴을 완성하기 위해 벽면을 가로지르는 전깃줄 위에도 페인트칠을 해놓은 꼼꼼함은 소소한 웃음을 선사해준다. 골목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카멜레온의 여행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유를 안겨준다. 책방골목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므로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다시 책방골목으로 돌아 내려왔다. 벽화골목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좌우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손 그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중간 중간 닫혀있는 상점들의 셔터 위에 그라피티(Giraffiti)도 그려져 있어 재밌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 시간이 멈춘 듯…


벽화만 보고 가기 아쉽다면 당연히 책방골목을 계속 둘러볼 것을 권한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서적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 요즘의 대형서점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책방골목에서는 책들을 좌판에 펼쳐놓거나 아무렇게나 높이 쌓아 두고 있다. 오래 묵은 느낌의 책들이 칸칸마다 빼곡이 들어차 있는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 느낌을 준다. 

이희라(23)씨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어 화집을 사러 자주 보수동을 찾는다" 며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화집들을 보수동에서는 가끔 구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여행을 왔다는 김정균(29)씨는 "보수동은 처음인데 다양한 책들이 많아 놀랐다"며 "벽화도 보고 왔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여운이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도 한 헌책방으로 들어가 사람이 많지 않은 통로 중간에 쭈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권의 책을 읽어 보았다. 마침내 시집 한 권을 고르고는 계산대로 가자 주인아주머니는 "어제 1박2일 쵤영팀이 왔었다"고 알려주며 촬영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참 동안 1박2일의 출연진인 이승기에 대한 묘사(?)를 들은 탓에 기자는 속으로 '어제 올걸'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책방을 나섰다.

책방골목을 가득 채우는 책 냄새를 맡으며, 한 편의 동화를 벽화로 접하면 절로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문현동 벽화마을과 보수동 벽화골목을 적극 추천한다. 쌀쌀한 날씨에 대비해 두툼하게 차려입고, 일단 이 두 곳을 둘러보기만 한다면 마음 속에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벽화마을과 책방골목을 둘러보고 허기가 진다면 부평시장에서 알뜰하게 허기를 달랠 수도 있다.


 

우2동 벽화마을, 재개발 지역이 관광지로 탈바꿈

문현동과 보수동 외에도 벽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우동 벽화마을' 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 바로 근처에 들어서고 주변에 호화로운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우2동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주민들은 주거환경 개선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생활쓰레기 무단투기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우2동 주민센터와 주민들이 발벗고 나서 벽화마을을 조성했다고 한다.

우동 벽화마을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립미술관역으로 가면 된다. 지하철에서 내려 6번 출구로 올라오면 기찻길이 보인다. 기찻길 아래에 있는 굴다리 위에는 '우2동(佑2洞)'이라는 글자가 물방울을 튀기며 새겨져 있다.

물방울 그림은 우동(佑洞)의 유래가 원래 수영만으로 흐르는 춘천(春川)의 오른쪽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우동(右洞)이었던 것이 도울 우(佑)로 바뀐 것을 생각할 때 마을 입구에 있기에 어울리는 벽화다.
우2동의 벽화들은 문현동과 보수동 벽화들과 비교해 색채가 선명하고 화려하다. 파란색 벽면 한켠에 흰색 물감으로 유럽풍 집을 그려놓은 그림은 이국적인 느낌이다. 또 벽화에 그려진 다양한 일러스트들에서는 전문가들의 솜씨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세련된 풍경이다.

해운대 백사장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해운대를 둘러보았다면, 이국적인 풍경이 있는 '우2동 벽화마을'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진민경 기자
hakbojmk@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84호 (201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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