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자연과 함께하는 갈맷길 여행
따뜻한 봄날, 자연과 함께하는 갈맷길 여행
  • 이성미
  • 승인 2011.04.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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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으로 바쁜 4월. 학생들은 눈앞에 펼쳐진 빽빽한 노트와 책을 붙잡고 졸음을 쫓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4월은 이미 봄 향기를 잃은 지 오래다. 부산의 봄 향기를 학보에 담기 위해 기자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명품코스를 건네 본다. 부산의 명소를 모아 가덕도에서 기장까지 잇는 명품 해안길 '갈맷길'로 떠나보자.

 

낙동강 허리의 휴식처

국철 및 도시철도인 구포역에서 내려 낙동강 둔치로 향하면 시원하고 넓은 공원이 보인다. 갈대밭과 함께 많은 주민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다. 공원의 면적은 우리학교 승학캠퍼스 운동장의 약 213배에 달한다. 마침 기자가 찾아간 날에는 한 봉사단체의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공원을 더 둘러보기 위해 자전거 대여소로 향했다. 이곳은 무료로 1시간 동안 1인당 2대의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걸어서 공원의 전부를 구경할 수 없을 뿐더러, 자전거를 타며 보는 경치가 아름다우니 자전거를 대여할 것을 권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니 잔디광장에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딸을 뒤에서 잡아주는 아빠, 엄마 손을 꼭 잡고 연못을 건너는 아이. 그 곳에는 생기 있고 사랑스러운 웃음들이 가득했다. 다시 페달을 밟고 야생화단지로 향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내부공사로 입구를 막아놓은 상태였다. 마침 그 옆에서 낚시중인 어르신을 발견했다. 최덕수(부산낚시연합회)씨는 "삼락강변공원은 못이 많아 낚시를 하러 오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전하며 "특히 4월에는 고기가 더 잘 잡히니 낚시 행사가 많다"고 말했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어르신은 느긋하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렇게 왁자지껄한 웃음, 사랑스러운 웃음, 온화한 미소가 절로 나오는 공원. 그래서 삼락(三樂)강변공원이 아닐까 싶다. 기자는 세 가지 웃음을 마음에 담고 한 손에는 솜사탕을 든 채 삼락강변공원을 나왔다.



색색의 물감을 얹은 마을
길 이름에 걸맞게 근대 부산의 모습이 배어있는 코스다. 먼저 감천동의 태극도마을로 향했다. 1950년대 태극도를 믿는 교도들이 모여 집단촌을 이루었는데 그것이 태극도마을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에 의해 800호 이상의 판잣집들이 들어섰다. 색색의 집들이 빽빽하게 경사로에 얹혀있고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로 도무지 어디부터 지나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좁은 골목마다 빨래더미가 바람에 날리고, 장독들이 늘어서 있다. 기자의 목소리를 손녀로 착각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만약 태극도마을을 편안하게 탐방하고 싶다면 계단 하나를 내려갈 때도 신중하길 바란다. 제대로 보지 못한 장소를 지나쳐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태극도마을의 매력은 다채로운 색감의 벽과 지붕, 곳곳의 아름다운 미술작품들이다. 이 점 때문에 태극도마을은 미디어에 많이 소개되는데, 특히 사진과 관련된 사이트에 많이 올라와 있다. 2009년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단체가 '마을미술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마을주민, 부산의 예술가들과 함께 마을을 꾸미기 시작했다. 뒤이어 2010년 3월에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과 개성적인 작품들로 뛰어난 경관을 만들었다. 김영준(남구 대연4동)씨는 "색색의 집과 골목길이나 마을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서 "기회가 된다면 야경도 찍고 싶다"고 답했다.


한창 마을을 구경하다 배가 고팠던 기자는 마을 입구의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초라한 음식점이었지만, 할머니가 만든 칼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기자는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갑희(사하구 감천동) 할머니는 "옛날에는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전기나 수도가 없을 시절이라 매일 우물에 가서 물 퍼오고 살았다"고 전했다. 이어 "원래는 집만 빼곡하게 있었는데 이제는 소방도로도 생기고 큰 길도 내서 훨씬 편안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래도 불편하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옛날에 비하면 지금 너무 편리하다고 답했다. 가슴 따뜻한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보수동책방골목으로 향했다.



책이 살아있는 골목
부산 국제시장 입구 건너편에 책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이 보수동책방골목. 오래 전부터 부산의 명소로 꼽히고 있어 부산 사람들은 물론 타 지역 사람들과 해외관광객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헌 책을 파는 책방이 하나둘 생기며 책방골목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해마다 9월에 보수동책방골목축제를 열어 볼거리를 제공하며, 2010년 12월,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을 개설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관광객과 상인들이 책방골목에 문화공간이 생기길 바래왔으며 중구청의 지원으로 개설되었다.

문화관은 북 카페는 물론, 책의 역사관과 문화체험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관련 자료는 책방골목문화관 인터넷카페를 이용하도록 하자.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책, 골목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수동은 언제나 활기차 보인다.

부산 냄새 그윽한 시장
곧이어 기자는 부산의 오래된 명소인 자갈치시장으로 향했다. 자갈치시장을 들어서자 상인이 대뜸 회를 먹으라고 붙잡아 당황하기도 했다. 활기 넘치는 상인들과 함께 싱싱한 생선들이 가득한 자갈치시장은 항상 생기가 넘친다. 회를 좋아하는 기자는 자갈치시장을 걷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자갈치시장의 상인인 김정수(부산 광안리)씨는 "지금 이곳의 모든 풍경들이 자갈치시장의 진면목이다. 정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자에게 수고가 많다며 회를 권했다.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자갈치 사람들은 활기를 전하고 정을 나누는 듯 했다. 상인들의 "와서 먹고 가이소~"라는 말이 귀에 맺힌 채 자갈치 시장을 떠났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전국 최고 수산물 시장인 부산공동어시장 경매를 보기 위해 5시 새벽 첫차에 몸을 실었다. 첫차를 뒤로하고 남포동에서 다시 30번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더 들어가자 부산공동어시장이 나왔다.

부산공동어시장이라고 적힌 큰 글자 밑으로 위판장과 푸른 바다가 보였다. 경매장 안은 이미 하적작업을 마친 생선과 오늘 나온 생선 품질을 가늠해 보기에 바쁜 상인들로 분주했다. 고등어부터 조기, 갈치, 오징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냉동생선을 차례로 지나가는데, 곧 경매가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입구 쪽으로부터 한 무리의 트럭이 줄을 지어 경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경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급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자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쓴 사람들이 누군가와 분주하게 수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검은색 점퍼를 입은 경매사가 입찰인들이 보낸 수신호를 보고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경매를 구경하고 이제 백등대로 가기 위해 길을 나왔다. 조금 걸었는데 공동어시장 별관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배가 고파 식당을 찾고 있었던 기자는 식당이나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별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별관은 방금 경매에서 받아온 생선들을 파는 중간시장이었다. 상인들은 경매에서 사온 생선들을 리어카 채로 바닥에 부었고 다시 나무로 만든 상자 크기에 따라 분류했다. 한켠에서는 상인들과 생선을 구입하러 나온 사람들 간에 흥정이 이어졌다. 기자가 평생 볼 생선을 다 구경하고 이제 정말로 백등대를 향해 길을 따라 나섰다.

옛 추억을 간직한 등대
5분 정도 걸었을까 주위 간판들에서 '등대'가 들어간 상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등대가 가까워졌구나'를 직감하고 눈앞에 보이는 코너에서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분 정도 들어가자 수산물 공장들 사이로 백등대가 보였다. 백등대까지는 방파제를 따라 5~600m 미터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벌써 백등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분들 중 한분에게 부산포에 대한 추억을 어렵지 않게 물어볼 수 있었다. 전정태(중구 충무동) 씨는 "지금 시멘트 방파제로 되어 있는 길이 70년대에는 자갈이었다"며 "자갈밭을 따라 포장마차 촌이 있었는데 방파제를 만들면서 포장마차 촌도 없어지고 더 큰 등대가 다시 세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나니까 추억이 깃들었던 옛날 건물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백등대에 다가가자 흰 바탕에 검은색 매직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온갖 낙서가 되어 있었다. 백등대는 중년층에게는 옛 추억의 장소로 젊은 층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백등대를 뒤로하고 다음 코스인 남항대교로 향했다. 산책로로 올라가자 왼편으로 남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바다와 함께 방금 지나쳐 왔던 백등대와 공동어시장, 그 뒤로는 자갈치시장과 부산타워가 보였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경치를 구경하며 20여 분을 걷자 남항대교 반대편 끝에 닿아 있었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자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하고 있는 주민이 한 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자 처음에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듯 하더니 대학신문 기자임을 밝히자 고생한다며 잘해 주셨다. 남항대교에서 만난 박동재(영도구 영선동) 씨는 "남항대교 밑에는 여름이 되면 낚시 하는 사람들과 더위를 피해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라며 기자가 다음은 영도대교로 간다고 하자 "한국전쟁 때 피난 왔던 사람 중에 가수 현인 씨가 있는데 그분 동상이 영도대교로 가는 길에 있으니 찾아가 보라"고 했다.

방파제를 따라 뚝길을 10분 정도 걸으니 눈 앞에 홍등대가 보였다. 홍등대로 가는 길옆으로 어민들이 분주하게 갈치와 다른 생선들을 말리고 있었다. 잠시 물어보니 해풍에 하루정도 말려야 고기가 더 맛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홍등대는 푸른색 바다와 대비가 되면서 어떤 각도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예술 작품 같았다. 또한 홍등대는 밤이 되면 예쁜 조명과 함께 분위기 있는 데이트 코스로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영도다리에서 만나요"
홍등대에서 20분 쯤 걸어 영도대교에 도착했다. 온전한 영도다리의 모습을 기대했던 기자의 바람과는 달리 영도다리는 며칠 전 시작한 복원공사로 다리의 상판이 뜯겨져 나간 뒤였다. 가수 현인 동상 역시 공사 때문에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리 아래쪽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쪽에서 낚시 준비를 하고 있는 어르신이 보였다. 인사를 하고 영도다리에 대한 추억을 물어봤다.

올해 72세로 대구에서 내려와 40년을 부산에서 살아왔다는 최대화(남구 문현동) 씨는 "한국전쟁 때 타지사람들은 개폐교로 그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했던 영도다리에서 만남을 기약하며 피난을 떠났다"며 "영도다리는 한국전쟁의 상흔을 가장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라고 했다. 어르신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한국전쟁 중 가족을 만나기 위해 영도대교를 찾았을 피난민들을 생각하며 복원공사 중인 영도대교를 건넜다.


 김규태 이성미 기자
동아대학보 1086호(201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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