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뒷담화
골목길 뒷담화
  • 이성미
  • 승인 2011.06.14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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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도심과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를 가진 골목길,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벽화가 그려져 예쁘게 변신한 골목길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오가는 골목길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 출사지로 인기가 많은 감천2~3동 전경.


골목길 그 이면에는…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부산의 대표적인 골목길을 꼽으라 하면 대부분 여길 꼽을 걸요?" '부산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사하구 감천2·3동, 이곳을 취재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한 학생이 벽화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김지훈(부경대 3) 학생은 "사진동호회의 다른 분들이 찍은 사진을 보니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출사를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 감천동 벽화마을 입구.

감천동 정상에 올라 경치를 보며 김지훈 학생은 "감천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졌고 전체적인 조망 역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며 "이러한 매력을 지닌 곳이기 때문에 출사 장소로 인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은 때론 위험한 장소로 돌변한다. 기자가 가본 감천2동의 아름다운 골목길에서도 위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쁜 골목길 구경을 마치고 내려가다가 기자는 김지훈 학생에게 "남들이 가보지 못한 감천동의 외진 곳도 둘러보고 가자"며 그와 함께 감천동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누비며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지금까지 본 감천동과 다른 골목길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 감천동 벽화마을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고물 더미.

골목 한 가운데 떡 하니 쌓여있는 고물더미가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하수구에 문제가 있는지 냄새가 지독한 곳도 나타났다. 고물 더미 앞에서 만난 박순자 할머니(73)는 "지금은 날씨가 덥지 않아서 괜찮은데 비오고 더워지면 고물 더미에 벌레가 끼고 냄새도 심하다"며 "그렇지만 노인네들이 반찬값 벌려고 쌓아둔 고물더미들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은 잘 꾸며놓은 저쪽 놔두고 왜 이리 들어왔어? 길 이자뿟나?"며 기자의 손을 잡고 벽화가 있는 쪽으로 안내하려고 했다. 기자임을 밝히고 골목 구석구석 보려고 왔다고 하니 할머니는 "뭐 볼게 있다고, 예쁜 학생들은 예쁜 것만 보고 가지"라며 "저짝에 빈집이랑 그런 거 많으니까 글로 가봐"라고 말했다.



▲ 붕괴가 우려되는 빈 집.

골목을 누비다 보니 붕괴가 우려되는 빈 집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빈집들은 가출청소년 혹은 노숙인들이 출입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해 주요 언론에서 다루기도 했다.

감천동의 빈집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사람이 오간 듯한 흔적도 있었으며 외진 곳에 위치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질러도 다른 사람이 듣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붕괴 우려도 있어 가출청소년이나 노숙인들이 출입하다 건물이 무너지는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건물 진입을 막는 어떠한 장치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거기는 뭣헐라고 들어가?"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당장 나오라며 호통을 쳤다. 기자임을 밝히고 취재차 들어갔다고 하자 표정을 풀며 "전번에도 학생들이 들어가서 담배피고 불 피우고 해서 쫓아냈다"며 "이 집을 처리하긴 해야 하는데 어쩔 방법이 없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다 훑은 뒤 토성동 쪽으로 내려가며 김지훈 학생에게 골목길에 대한 소감을 묻자 "속은 기분이다. 다들 예쁜 장소만 골라 찍어 블로그 등에 올렸기 때문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며 "잘 정비되어 있다는 이곳도 이 지경인데 다른 곳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 1년여 전 '김길태 사건'이 일어났던 덕포동 골목길.


골목길의 우범지대화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의 흡연장소에서부터 집단폭행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 소녀가 끔찍한 일을 당한 '김길태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까지 모두 골목에서 일어났다.

또한 지난달 30일 부산 연산동의 한 골목길에서는 오후 2시경, 귀가하는 10대 여학생을 흉기로 위협해 강제 성추행하려는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도 범인은 저항하는 학생의 팔꿈치에 급소를 맞고 통증을 이기지 못해 119에 연락, 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검거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골목길에 숨어 담배를 피고 있는 고등학생들.

지난달 17일에 부산 사직동 가구거리에서 퍽치기 미수사건을 목격했다는 김대경(영산대 2) 학생은 "새벽에 귀가하는데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취객의 뒤통수를 무언가로 가격하려는 장면을 목격하였다"며 "범인이 실수로 가격에 실패하자 그대로 도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골목길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출사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덕천초등학교 주변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던 기자는 담배를 피우고 있던 고등학생 두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두 학생들은 늦은 시간(새벽 1시) 주택가 골목 담벼락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가로등이 적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들이 그곳에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다.

고등학생이라는 두 학생은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자 매우 귀찮다는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학생은 "담배 피우는 게 딱히 대단한 일도 아닐 뿐더러 담배 피는 걸 어른들이 보면 귀찮게 해서 이렇게 숨어 핀다"며 "이 골목길은 주변 학교 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다른 학생은 "가로등도 어둡고 사람도 많이 안 다녀서 이쪽으로 모인다"며 "바로 앞이 유흥가라 담배 구하기도 쉽다"고 답했다.


▲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동래의 한 골목길.

이어 "어둡고 인적이 드무니 애들은 담배 피는 장소로 애용하고 간간히 취객들을 대상으로 한 퍽치기도 일어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하자, 듣고 있던 다른 학생이 "솔직히 담배 피러 여기 오는 거지 너무 으슥해서 오고 싶지 않다"며 "집이 이 주변인데 여동생에게는 꼭 큰 길로 둘러서 다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위험한 골목길, 확실한 치안 대책 있어야

부산시에서는 해운대구 반여동, 사하구 신평시장 일원 등 총 12개 정책이주지에 대해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골목길 범죄의 온상인 빈집과 공터 그리고 어두침침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 쉼터와 쌈지공원 조성 △쓰레기로 어지러운 공터 매입 후 주차장 조성 △노후 건물 매입 후 주민 복지시설 건립 등의 '정책이주지역환경개선사업'이 추진 중이다. 또한 감천동의 경우 '샛바람 신바람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정비되지 않은 골목과 계단을 정비, 환경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동래구 낙민동 재개발지구 주민 김대진(경성대 1) 학생은 "우리 동네도 좁은 골목길이 참 많은데 늦은 밤에는 무섭다. 골목마다 CCTV를 설치하면 가장 좋겠지만 예산 및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며 "경찰의 순찰 확대 및 동네 주민이 순찰을 도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심야에 취객을 노리는 범죄 같은 경우 가로등만 밝아도 충분한 억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말했다.

골목길이 무법천지의 상징으로 변하기 전 골목길 안전을 확보할 방안이 필요하다. △CCTV 설치 확대 △주민방범대 창설 △경찰의 순찰활동 강화 △가로등 설치 확대 및 현 가로등 전구 LED로 교체와 같은 소규모 방안에서 정책이주지역 재개발 사업 등의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김강민 기자
hakbokm@donga.ac.kr
동아대학보 1088호(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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