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Go back) 7080
고백(Go back) 7080
  • 김승언
  • 승인 2011.09.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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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희-여러분(1979), 남진-님과 함께(1972), 송창식-사랑이야(1982)….
요즘 인기 있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곡들이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 '써니'는 물론 티아라, 원더걸스 같은 아이돌가수까지 복고를 콘셉트로 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7080세대의 문화는 향수에 젖은 중년층은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시절의 정취를 느껴보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7080 속으로 '고백(Go back)' 해보자.



"저희 몇 살처럼 보이세요? 오늘 우리는 새로 개봉한 영화 <뽕>을 보러가기로 했어요.
쉿!  저기 표 파는 사람이 우리가 학생이라는 걸 눈치 채면 쫓겨날지도 몰라요. 엄마 몰래 립스틱을 바르고 언니 원피스랑 구두도 훔쳐다 신었어요.
어때요, 좀 숙녀처럼 보이나요? 아 손톱에 매니큐어도 바르고 눈화장도 좀 진하게 할 걸 그랬어요.
아, 저기 'DJ수'가 지나가네요. 수~어디 가는 길이야?"


 

"나는야 세시봉 음악다방 인기DJ '수' .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저는 김세환과 송창식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에 통기타까지 잘 쳐서 우리 동네에서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하하. 오늘은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여학생들과 미팅을 하기로 했어요. 아, 저기 약속장소인 빵집이 보이네요. 약속시간에 늦는 건 매너가 아니니 미리 가 있어야겠죠?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안녕~!"

 

저 남학생은 오늘도 여학생을 데리고 왔군요. 여학생은 항상 바뀌는데 매일 주문하는 단팥빵 두 개와 우유 두 잔, 영웅담 얘기는 왜 항상 같은지…. 최루탄 연기 속에 쓰러져 있던 여자아이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자신은 두들겨 맞았다는 그 영웅담 내가 다 외울 지경입니다. 원, 바람둥이 같으니라구! 에구 이제야 계산하러 오네요. 다음엔 어떤 여학생을 데리고 올까요? 벌써 궁금하네요.

 

내가 갖고 있는 건 과자 하나 사먹을 수 있는 동전 딱 하나. 이걸로 오늘 하굣길 내내 입이 심심치 않도록 책임질 놈을 골라야 해요. 어젠 아팟치를 샀었는데 뒤에 있던 동식이 놈이 "와, 민수가 아팟치를 산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우리 반 아이들한테 다 뺏겼지 뭐에요. 오늘은 꽃가마를 먹어야겠어요. 헤헤. 집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구워달라고 할거에요! 어, 저기 동식이가 오네요. 빨리 도망가야겠어요!

 


낭만과 정이 넘치던 빵집


▲땡큐 아주머니 박금자 (65) 씨와 아들 김영찬 (39) 씨.



보수초등학교 뒤쪽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72년 개점해 올해로 꼬박 39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우제과점이 나온다. 출입문을 열자 인상 좋은 주인 박금자(65) 씨가 기자를 반긴다. 연신 "땡큐"를 외치는 박씨는 손님들에게 마음씨 좋은 '땡큐 아주머니'로 유명하다. 그녀로부터 70년대 학생들에게 최고의 데이트 장소였던 제과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교복을 입고 수줍어 하며 미팅을 했을 것이란 상상과는 달리 70, 80년대 고등학생들이 빵집에서 단체 미팅을 할 때는 교복보다 사복을 더 많이 애용했다는 것. 그녀는 "학생 때는 교복보다 사복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며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는 듯했다.

한편 아주머니는 남학생과 잘해보기 위해 가출까지 감행했던 한 여학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철없이 가출한 여학생을 처음에는 혼을 내서 돌려보내려 했지만 '나도 어릴 적에는 사랑이 전부였던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직접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주었다고.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출을 하고 빵집을 찾아오는 학생들이 가끔 있다"며 웃는 땡큐 아주머니의 얼굴에서는 인자함이 묻어났다.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장지 하나에도 추억이 깃들어 있다. 87년 부산의 모 제과점이 빵을 봉지포장 해서 개당으로 팔기 시작하면서 주변 제과점들이 너도나도 낱개포장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우제과점에서도 주변 분위기에 맞춰 결국 낱개포장을 하게 되었다고. "낱개포장을 하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비닐 속의 식은 빵은 자기 입맛에 맞는 빵만 딱 고르면 끝이니까 정을 느낄 수가 없지…." 땡큐 아주머니는 손님들이 종이봉투에 빵을 한가득 담아가 가족들과 둘러앉아 나눠먹던 모습이 그립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풋풋했지만, 아픔도 있었던 7080의 청춘


▲월드서적의 주인 배순한(67) 씨.


대우제과점을 나와 골목을 이리저리 걷다보니 어느새 보수동 책방골목에 도착했다. 70~8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책방 '월드서적'. 높게 쌓인 책 옆으로 오랫동안 책방을 운영해 온 인자한 표정의 만물박사 배순한(67) 씨가 보인다. 연인들의 빠질 수 없는 데이트 코스, 시위대의 눈물을 쏙 빼놓던 최루탄 냄새. 배씨는 7080 청춘들의 흔적 하나하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사건들로 웃고 울었다는 그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는 기자에게 지그시 의자에 몸을 기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배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문학이나 시집을 찾기보다 만화책을 많이 본다. 하지만 70~80년대만 해도 연인들끼리 시집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며 순박했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서점이 안정적이었던 것도 잠깐. 그에게 70~80년대 광복로와 국제시장 일대는 연일 지속되는 시위와 최루탄 연기로 기억된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사건이 터진 후 우리 대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교에 6개월간의 휴교령이 떨어졌다. 장발단속, 복장단속은 약과고 통금에 불심검문까지 단속이 심하다보니 근처의 책방이나 카톨릭센터, 동광선결교회는 학생들의 단골 피신처였다.

배씨도 "내 아들 같은 학생들이 안쓰러워 자주 숨겨주었다"고. 입고했던 신학기 서적들이 휴교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긴 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에 대항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던 당시 대학생들의 모습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 시절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학생들의 고충을 보듬어주었던 월드서적에서의 인터뷰는 옛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와 담소를 나누듯 편안한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


추억이 방울방울, 음악다방


▲뮤직박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찬성 (45) 씨.


방송매체를 통해서만 보고 들어왔던 70~80년대의 분위기를 몸소 느끼고 싶다면, 서면의 중심가에 위치한 '옥다방'을 찾아보자.
7080 당시의 음악다방을 재현했다는 '옥다방'은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벽 중앙에 진열되어 있는 빛바랜 LP판과 DJ가 있는 뮤직박스가 인상적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유리박스에서 LP판을 만지고 있던 이찬성(45) 사장은 영화에서나 보던 음악다방 DJ처럼 빼곡히 사연이 적힌 쪽지를 받아 신청곡을 틀어주고 있었다.

신청곡을 보내는 사람들은 '다방'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다수의 젊은 세대들.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고전적인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씨는 "젊은 손님이 대부분이라 최신 노래가 주를 이루지만 주말 저녁에는 4,50대 어머니들의 모임이 잦아 7080시절의 노래도 종종 나온다"며 "특히 최근에는 젊은 층이 7080노래를 신청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 다양한 연령대가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다방의 한 직원은 "간혹 연세가 있는 분들이 옥다방을 진짜 옛날식 다방으로 착각하여 전화로 배달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다방'이라는 단어로 기존 세대에게는 지난 추억을, 신세대에게는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하고 있는 '옥다방'의 이찬성 사장은 "기성세대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한 번쯤은 그 시절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신세대들 역시 가끔은 7080의 문화를 느껴보며 부모님 세대를 이해해 보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그땐 그랬지…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DJ를 따라 다방을 요리 조리 옮기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 오빠도 아저씨가 다 되었겠지만서도 그땐 그 오[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어찌나 멋있어 보였는지 몰라.
 - 부산 서구 곽영아(48)

그땐 롤러장이 한창 유행이었어. 예쁜 여자애가 있길래 그애 손수건을 뺏어서 도망갔는데 하필 좀 '노는' 아이였어. 롤러스케이트는 또 얼마나 잘 타던지. 그날 자존심 완전 구겼다.
 - 부산 금정구 박정병(51)

더운 여름날 '냉난방 완비'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대한극장에 <우뢰매>를 보러 갔었더랬지. 요즘에야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기대하겠지만, 이게 웬걸, 선풍기 한 대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더라니깐. 어찌나 시끄럽던지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왔던 기억이 있네.                                                             
 - 울산 북구 박종규(52)

여름이 오면 꿀꿀이 할아버지가 리어카에서 팔던 냉꿀차가 달달~허이 진짜 '꿀'맛이었는데 말이지.                                                          
 - 부산 북구 우미선(53)



일러스트= 김승언 기자
글=박경현 박민아 한규현 이경원 이영실 기자 

동아대학보 제1089호 ( 2011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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