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병맛을 알아?
니들이 병맛을 알아?
  • 김승언
  • 승인 2011.09.10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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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콜라 다 먹은 다음에 콜라'병맛'?
당신이 처음 '병맛'이라는 단어를 접했다면 정말 콜라병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병신같은 맛'의 뜻을 지닌 최근 웹상에서의 신조어다. 인기 있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웹툰에 병맛 바람이 불고 있다. 이름하여 '병맛 만화'다. 그 열풍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잠깐! 옆에 나오는 만화(이말년 씨리즈)로 병'맛'을 시식해보시길….

 


'병맛'이란 추상적인 의미이나 대체로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한다. 인터넷상에 다른 이의 형편없는 게시물에 대한 조롱조의 표현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웹툰과 만나면서 하나의 문화로 탈바꿈했다. 조롱의 의미인 '병맛'이라는 단어가 콘텐츠화 되어 묘한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병맛엔 그들이 대세

조석, 하일권, 이말년, 셋 중 한 명의 이름이라도 들어봤다면 병맛 콘텐츠를 접했을 확률이 높다. 그들이 바로 병맛웹툰의 대표주자 3인이기 때문이다.
조석이 연재 중인 <마음의 소리>에는 작가를 상징하는 '조석' 캐릭터(아래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3등신 한계를 뛰어넘는 등장인물의 추한 외모는 조석의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이다. 그의 만화는 '찌질함, 루저, 황당, 반전'을 통해 병맛의 매력을 담고 있다. 현재 <마음의 소리>는 최고 8천 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리며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등 매회 높은 조회수를 유지하고 있다. 이 만화는 일상적인 상황도 당황스럽게 만들어 독자를 '찌질한 반전'으로 끌어들인다.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은 기존에 손꼽히는 '에피소드형' 병맛만화와는 다르게 '연재형' 병맛만화다. <목욕의 신>의 주인공은 전문대 출신의 23세 백수 허세라는 인물이다. 밀린 학자금 대출 빚 때문에 대부업체에 쫓기는 신세가 된 허세는 사채업자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목욕탕에 들어간다. 그 곳에서 허세의 '때밀이(목욕관리사)' 자질을 발견한 목욕탕 회장은 빚 탕감, 야간수당, 4대 보험까지 보장해 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허세를 고용한다. <목욕의 신>은 현재 대학생들의 '취업난' 문제를 비춰주는 동시에 타인의 시선을 극히 의식하는 20대의 불필요한 사고를 꼬집어 조롱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와 '대기업 목욕탕'이라는 상상하기 쉽지 않
은 소재가 독자를 웃게 하지만, 때론 씁쓸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말년 작가의 <이말년 시리즈>는 '병맛만화'를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게 만든 결정적 주인공이다.








그의 신조는 '말년같이 살자'인데 이는 군대 말년같이 쉬엄쉬엄, 없는 듯, 편한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인생철학은 만화에서 틈틈이 엿볼 수 있다. 시작은 창대하지만 그 끝은 미약한, '될 대로 되어라'식의 결말은 쿨함을 넘어서 차갑기까지 하다. 붓으로 대충 휘갈긴 듯한 그의 그림체는 마치 들판에 핀 잡초와 같은 야생의 미를 발산한다.

대놓고 제멋대로인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부조리와 우연이 판치는 병맛의 세계는 결국 우리의 현실세계와 다르지 않다. 외길 걷는 개인의 노력이 한순간에 어떤 무언가의 힘에 의해 물거품이 되는 설정은 그의 만화에서 리얼리티의 정점을 찍고 있는 부분이다. 그의 만화는 병맛을 통해 호방한 웃음보다 '허허, 거참' 하는 씁쓸함이 남게 되는데 이는 현실을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병맛을 살려주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이말년 씨리즈>의 '슈퍼인생게임'이다. 이 에피소드는 학교생활에 게임을 접목시켜 웃음을 유발한다. 일명 일진은 전투력으로 경험치를 쌓고, 모범생은 성적으로 레벨을 상승시킨다. 반면 주인공은 '정갈한 두발' 아이템을 사용해 경험치를 얻지만 동시에 '호구'라는 칭호를 획득한다. 이 에피소드는 '현실 자체가 레벨이 존재하는 슈퍼인생게임이라는 걸'이라는 말을 남기며 끝이 난다. 이는 계층화된 우리사회를 비틀어 꼬집고 있는 것이다.



20대와 병맛의 공통분모

현재 20대는 학점경쟁과 취업전쟁으로 어딜 가나 '쟁(爭)'을 피할 수 없다. 이로 인한 경쟁스트레스는 20대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결국 완벽하지 못한 자신과 이상과의 괴리를 느낀 그들은 스스로를 패배자라 칭하는 자기 비하의 '루저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명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최근 스스로 병맛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며 패배자 정서가 일반화되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루저(패배자) 정서의 일반화와 함께 작가들이 병맛만화를 유통시킴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콘텐츠로 성장한 것이다. 병맛만화의 독자들은 작가가 숨겨놓은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연대의식을 느끼는 한편 그 속의 웃음코드에 열광한다. 초라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자신을 그 작품에 투영시키는 것이다.

'일탈'은 인간의 본능으로서 누구나 틀을 벗어나는 자유를 꿈꾼다. 이러한 본능이 병맛만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충족됐다. 현실세계에서 '루저(패배자)'인 주인공들이 만화 속 병맛 세계에서는 기성 질서로부터의 일탈에 성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이렇게 본능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병맛만화가 탄생했고 그것은 곧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병맛만화의 등장시기도 적절했다. 그것은 완벽한 것만을 추구하는 웰메이드 형식에 익숙했던 독자들에게 신선 그 자체였다. 보다 완벽한 그림과 스토리를 추구하는 문화 흐름 속에서 사회규범에 어긋나지는 않으나 변화를 원하는 심리가 병맛만화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허술한 완성품이 주는 재미와 카타르시스가 20대가 공감하는 병맛만화의 매력이다.

'SNS세대'로 칭해지는 20대에게 병맛만화는 기술적으로도 트렌드화 하기에 적합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20대들은 웹툰을 본 후 바로 댓글을 달고 SNS를 통해 실시간 반응을 확인한다. 그러한 '작가와의 소통'과 '또다른 독자와의 소통'이 병맛만화가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병맛만화는 병맛일 뿐', 병맛만화의 작가들이 외치는 말이다. 웹툰을 보는 동안에는 진지하지 말고 그저 만화 자체를 즐기라는 이야기다. 그들이 전해주는 만화가 한편으로는 웃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개그코드에 공감하고 웃는 것이야말로 병맛만화를 즐기는 진정한 생활가이드가 아닐까.
 


 글= 최문희,이성미,여다정,백장미 기자
 일러스트= 김승언 기자
 만화컷 제공= 이말년 작가

동아대학보 제1089호(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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