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노동하는 인간, 소외받는 노동자
[기획]노동하는 인간, 소외받는 노동자
  • 서성희
  • 승인 2012.05.10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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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직업의 내용을 특징짓는 '노동'에도 귀천이 없을까? 올해로 90회째를 맞은 '근로자의 날'(5월1일)을 통해 노동의 참 의미와 열악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을 진단했다.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대학생들 대부분도 졸업하면 노동자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이 자신과는 무관한 단어라 여긴다. 자신은 노동자이지만 의식만큼은 노동자라 생각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치는 '현실적'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명함 한 장의 차이가 너무 크다." 『고전강의-공산당선언』, 강유원, 2006

보통 사람들에게 '직업'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아의 실현, 금전적 대가 혹은 보상, 살기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 등. 직업 만큼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샌가 우리 사회에서 '기능적' 의미보다는 '신분적' 의미로 자리매김한 직업을 특징짓는 주 내용은 바로 '노동의 종류'다. 육체적 노동을 투여하느냐 정신적 노동을 투여하느냐에 따라 직업 또한 위계질서처럼 나뉜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 속에서 육체적 혹은 정신적 노력을 '노동'이란 형식으로 투하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는다. 이처럼 직업과 노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노동시장을 통해 노동력을 거래하고 있다. 직종별로는 △생산직 △사무직 △관리직, 고용체계 별로는 △계약직 △임시직 △일용직 등의 형태로 노동력을 사고파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에 불어닥친 경기불황은 한껏 날이 선 형태로 노동자들의 고용체계를 겨누고 있다. 최근 자동차, 철강 등의 대규모 기계제 공장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이는 사측에서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여 생산비를 절감하겠다는 시도다. 결국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된 노동자들은 불투명한 사회보장에 기대 근근이 살아간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그들의 욕망은 투쟁으로 표출된다. 2009년 4월 8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시작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투쟁이 1,000일을 넘어섰고, 한진중공업에서도 해고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복직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곳에서 한 번의 해고는 곧바로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냥 사느냐 더 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곳에서 사람들은 투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개별 작업장 내에서도 노동자들의 인권이 점점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가 진행돼 국내 공장들이 노동력이 싼 타국으로 옮겨가고 있는 요즘,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형태로 노동시장에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체계와, 어떠한 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고용법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인간의 본성을 '공작인(工作人)'이라 칭했다. 즉 사람들은 물건을 구상하고 창조하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가 과연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도 해당될 수 있을까.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은 이미 상실됐고 노동 과정 중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소외되는 노동자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1년부터 차츰 증가해 현재는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까지 차지하게 됐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단지 '차별 받고 못사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안정된 일자리' 자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일하는 빈민'으로서 저임금 노동자가 양산되고, 이것이 다시 노동자들의 빈곤화를 부추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과 복리후생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이는 곧 근로의욕 약화, 사회발전동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하루 14시간 / 손발이 퉁퉁 붓도록 / 유명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 고급 오디오 조립을 해도 / 우리 몫은 없어, / 우리 손으로 만들고도 엄두도 못내 / 가리봉 시장으로 몰려와 / 하청공장에서 막 뽑아낸 싸구려 상품을 / 눈부시게 구경하며 / 이번 달엔 큰 맘 먹고 물색 원피스나 / 한 벌 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박노해, 『가리봉 시장』, <노동의 새벽>)

마르크스의 저서 『경제학-철학 수고』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소외'는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생산물로부터의 소외'가 있다. 자기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판매가격으로 인해 상품을 절대로 살 수 없는 데서 오는 소외다. 그리고 '생산과정으로 부터의 소외'는 자신이 만드는 부품이 완성품의 어느 곳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뜻한다. 즉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외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전체론적 의미'를 잃게 된다. 일하는 기계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고유의 '유적(類的) 본성'에서 소외된다. 인간은 본래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유적 존재'다. 그러나 현재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자아의 창조적 실현으로서의 노동이 아닌 단지 생존을 위해 노동하게 된다. 그 결과 노동은 자기 삶을 실현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지루하고 무의미한 과정이 돼 버린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노동자들과 임금이나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면서 동료 노동자들로부터도 소외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진단한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어나는 네 가지 소외다.


#1.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을 했어요. 일당은 5만 원이었어요." 부산 동구에 거주하는 김창남(36) 씨는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하던 일이 결국 직업이 된 거죠." 그의 작업장은 해운대에 있는 한 평당 1,000만 원을 호가한다는 최고급 아파트 건설현장이다. "일하는 동안 생각했어요. 내가 등짐을 지어 벽돌을 옮기고 자재를 옮긴 이 아파트를 과연 내 이름으로 계약해 살 수 있긴 할까?"

#2. 1936년 미국에서 개봉한 '모던타임즈'의 주인공 찰리 채플린. 하루 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을 하던 그는 모든 것을 조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고 만다.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미칠 수밖에 없었던 찰리. 우리는 그를 통해 당시 노동자의 열악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나아졌을까?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해 콘센트 공장에서 반년 간을 일했다는 인문과학대학 A학생. "공장에서 제가 했던 일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10초에 4개씩 떨어지는 플라스틱을 콘센트 안에 접착하는 일이었어요" 결국 A학생은 일에서 느끼는 보람은 커녕 소량의 임금과 시력저하를 안은 채 공장을 나오게 됐다고 한다. "아직도 콘센트를 보면 그때가 생각나요. 사실 말이 콘센트 공장이지 전 부품 접착만 계속 해서 이게 콘센트가 되는 건지도 몰랐어요. 제가 접착했던 부품들이 아마 콘센트 안 어딘가에는 있겠죠?"

#3. "저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어요.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해보지 않고선 모르실 거예요." 주말마다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는 김숙정(관광경영학 4) 학생. "솔직히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에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그녀는 제조업의 육체적 노동에서 서비스 산업의 감정노동으로 노동의 종류만 바뀌었지 강도가 결코 덜하진 않다고 토로한다. "이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거나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아요. 임금을 받아서 용돈에 보태 쓴다면 그걸로 그냥 만족해요. 함께 일하는 사람이랑도 별로 친하지 않아요. 일이 바빠서 한가롭게 수다 떨 시간도 없거든요."

'성공한' 나라의 '행복한' 국민을 위하여

한국 국민들은 가장 오래 일한다.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칠 확률이 제일 높다.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 중에 실제로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이 제일 낮다. 일하는 사람 중에 비정규직인 사람의 비율은 제일 높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아주 낮고 일하는 여성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소득은 남자보다 훨씬 적다. 고용주와 노동자들이 서로를 믿지 않는다. …(중략)… 노인이나 중증장애인과 같이 노동능력이 없는 국민들을 위한 소득지원도 매우 빈약하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이 어느 나라보다 낮다 -「사회지표를 활용한 국가경쟁력 개념연구」-2006년 7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우리나라는 지난 5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성공한 나라의 성공한 국민들 가운데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경제활동 인구는 2011년 현재 약 2,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자영업자 600만여 명, 자본가 50만여 명을 제외한 1,700만 명 정도는 '노동자'로서 생활한다. 대한민국 인구 구성 비율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그들의 인권을 배제하고서 나라의 행복을 가늠할 수 있을까. 우리 대학교 강신준(경제학) 교수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는 민주화가 멀었다"며 "노동자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 경제 민주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 단추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조합은 더욱 강력한 형태로 조직돼야 하고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자 정당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필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면 소외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보다 나은 '진보'가 아닐까. 타인을 위한 노동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자아의 실현으로 나아 갈 수 있는 것. 그러한 것들이 현실이 되는 것은 먼 미래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장혜정 기자
hakbohj@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5호 2012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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