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불안한 당신, 저항하라!
[기획]불안한 당신, 저항하라!
  • 서성희
  • 승인 2012.06.08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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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주세요 왜 우리들이 이래야 하는지 정말. (중략) 말해주세요 언제까지나 이래야 하는지. 정말 4년이라는 시간들을 위해서 지내왔던 지난 12년, 하지만 남은 건 오직 하얀색 졸업장과 꽃다발이 전부였죠. 반년이 지나갈 때마다 비싼 간판을 따내기 위해 부자 나라에 돈을 내야했죠.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 채 말예요. 언제쯤이면 이런 세상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건가요. 제가 아이를 낳아 기를 때도 대학을 위해 이래야만 하는지 말예요. - '대통령 아저씨께', 장연주

'우골탑(牛骨塔)' 이라는 단어가 있다. 궁핍하던 그 시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던 대학을 일컫는 단어다. 당시의 부모들은 농사일을 하며 자식을 뒷바라지 했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아직은 건재했고 대학 졸업장이 신분상승의 보증수표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 시절 대학 졸업자들은 자신의 능력만 뒷받침 된다면 사다리를 오르고 또 올라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기였다. 부모들은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만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을 수 있는 방편이라 생각했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소의 뼛가루와 맞바꾼 졸업장이었다.

그러던 우골탑이 현대에 와서 새롭게 진화했다. 바로 '등골탑'이다. 등록금이 연 1,000만 원을 호가하는 현상에 빗대, 부모의 등골이 휘다 못해 부서지고 가루가 돼 탑이 됐다는 조롱 섞인 신조어다. 대학은 더 이상 신분 상승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더더욱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웃도는 사회에서 고졸 꼬리표는 더욱 비관적인 결과만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무한경쟁, 승자독식 사회에서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하는 자동 탈락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렵사리 들어온 대학에서 '이상적인 졸업' 또한 쉽지 않다. 졸업 후 곧바로 일자리를 갖는 대학생이 드물기 때문이다. 과거와는 달리 졸업장만으로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대학생들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특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분투한다. 어딜 가든 자격증 두세 개는 기본이고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잘해야 대접 받는다. 너도 어학연수를 가니, 나도 가야만 할 것 같다. 불안해진다. 졸업은 계속 늦어질 수밖에 없다.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갈수록, 입 하나 덜어 드리지 못하는 현실에 부모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괜히 등골탑이 아니다.

대학은 이제 학문의 연장이라기보다 취직을 위한 필수 코스가 돼버렸다. '학위 장사'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은 이를 충분히 방증한다. 더욱이 비싼 등록금과, 졸업을 위한 여타 제반비용들은 아직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생들을 점차 궁지로 내몰고 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아직 명확하지도 않을뿐더러, 끝을 모르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마음에 심리적으로도 불안하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불완전한' 모습으로 내몰았는가.

 

인터뷰

# "저는 누굴 원망해야 하는 거죠?"

대학 졸업을 한 해 앞둔 김혜인(경영학 4·가명) 학생. 삼남매 중 맏이로 자라서인지 어려서부터 또래들에 비해 독립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고. 그녀는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부모님께 등록금과 용돈을 받아썼다. 그러나 멈출 줄 모르는 등록금 인상과, 몇 해 전 대학생이 된 여동생으로 인해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인지 남들이 흔히 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아르바이트도 했다. 단기간에 100만 원을 벌 수 있다던 포스터에 혹해 약도에 그려진 한 사무실을 찾아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곳은 복조리를 판매하는 사업체였고, 그녀는 단기간에 목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실제로 방문판매를 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였어요. 아르바이트로 일 년 휴학, 다음해 다시 복학, 다시 휴학해서 아르바이트와 같은 생활을 반복한 거예요."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으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졸업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이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취업 시장에서 여자 나이의 마지노선이 27살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놀러 다닌 것도 아니고 남들 다 가진 졸업장 따기 위해 열심히 등록금을 벌었는데 결과가 이러니 저는 누굴 원망해야 하는 거죠?" 그동안의 아르바이트로 인해 흔한 자격증 하나도 따놓지 못해 점점 더 불안하다는 그녀. "우월감과 열등감은 서로 한통속이란 말이 있어요. 그 말의 의미를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들의 스펙을 보고 열등감을 느끼고, 남보다 더 나은 스펙을 갖춰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는 그녀. 똑같은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쩐지 자신만 계속 도태되는 것 같아 갈수록 이질감만 더해 간다고 말했다. "시골에 가서 소나 키우고 살까 봐요. 근데 소 값은 또 어떻게 대죠?"

 

인터뷰

# "타로카드는 저만의 비빌 언덕이죠."

평소 재미로 타로카드점을 즐겨 보는 김바다(전자공학 3·가명) 학생. 남자가 웬 타로냐며 주변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재미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게 꽤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주로 여자친구와 관련한 애정운을 보았다면 현재는 직장운을 본다는 것. "솔직히 이게 진짜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뭔가 비빌 언덕이라고 하나요?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아요." 평소 공부와 관련해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 불안이 해소되길 바라며 카드를 뒤집고 점괘가 좋으면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는 김바다 학생. 점괘가 나쁘게 나오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진짜 신경 많이 쓰여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결과가 좋게 바뀔 수 있을지 나름의 해결방안도 들을 수 있어요. 한마디로 '대안이 있는 안 좋은 결과'란 거죠. 그나마 다행 아닌가요?" 그가 이렇게 타로를 보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앞두고, 못가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보러 간다고. "주변에 취직 잘 되라고 부모님께서 부적도 사서 붙여주고 굿을 하는 친구도 있던데 그런 것 보단 더 나은 것 같아요. 이건 오천 원이면 되잖아요."

억압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고독하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다. '아니다', 박노해
 

역사 속 대학생들은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사회변혁의 주체가 돼 왔다. 7,80년대의 대학생들은 유신체제와 군부독재에 대항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것이다. 중앙일보가 편찬한 『아! 대한민국』에 따르면 '386세대'라 불리는 그 시절 대학생들은 강한 동질성과 저항정신으로 똘똘 뭉쳐 대중을 조직화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저항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고뇌의 진원지가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진 것이다. 반값등록금 투쟁,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투쟁은 사뭇 전투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투쟁이 계속 되면 될수록 안정적인 직업으로의 쏠림현상은 더욱 격심해진다. 정년이 보장되고 복지후생이 윤택한 공무원과 공기업은 나날이 응시생이 늘어가 지난해 일반직 공무원 7·9급 경쟁률은 103.1대 1에 달하기까지 했다. 다수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소수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은 점점 더 발붙일 곳을 잃고 있다.

가슴이 아픈 것은 그것을 자기의 세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이고, 골치가 아픈 것은 자기 세계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들어오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것이다.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中, 신영복, 2010
 

대졸자 중 취업자의 비중이 날로 줄어들고, 그나마도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는 요즘. 대학생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싫다. 도피하고만 싶고 자기의 세계로 들여보내고 싶지 않아 골치가 아프다.

그러나 현실을 헤쳐 나가기는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가슴 아프다.

항간에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좌절케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학생을 둘러싼 '불편한' 현실들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위로받게 만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다독임을 받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20대의 반값등록금, 30대의 청년실업, 40대의 전세대란 등 앞으로 건너가야 할 산이 부지기수로 남았다.

이제는 좌절해 위로만 받을 때가 아니다. 역사학자 홉스봄은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므로 우리는 결코 무기를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현실을 직시했으면 방안을 강구해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너의 세상, 나의 세상이 아닌 '우리'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언제쯤 가능할까?

글 = 장혜정 기자
동아대학보 제1096호 2012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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