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모두 다 사랑하리
[기획]모두 다 사랑하리
  • 서성희
  • 승인 2012.09.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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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홀로 있으되,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정의했다. 우리는 좋든 싫든 필연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며 애정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이른바 애정이 '결핍'되는 현상이다. 사실 '애정결핍'이 정확히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세간에서는 그저 '사람을 그리워하는' 증상을 애정결핍이라 쉽게 이야기한다. 인터넷에 애정결핍 테스트가 넘쳐흐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정결핍은 무던하게 지나쳐도 되는 증상이 아니다. 이는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며 정도에 따라 극단적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애착의 대상이 필요하다

'스누피'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인기 만화 <피너츠(Peanuts)>에는 독특한 캐릭터 하나가 등장한다. '라이너스 반 펠트'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집착의 아이콘이다.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는 라이너스는 어딜 가나 담요를 끌고 다닌다. 혹여 담요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한다. 사실, 라이너스가 보이는 이런 행동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흔히 나타난다. 생후 6~12개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 중 '분리불안'이라는 것이 있다. 이때의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한다. 분리불안이 강해지면 아이는 엄마를 대신할 어떤 것을 찾아 나선다. 그 대상이 인형이 될 수도 있고 이불, 공갈젖꼭지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집착을 라이너스가 담요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 '블랭킷(담요) 증후군' 혹은 '라이너스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은 5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만 3세 무렵에 자연스레 사라진다.

라이너스는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됐다. 더 이상 담요는 필요 없지만 여전히 애착의 대상이 필요하다. 애착의 대상은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변했다. '관계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한다. 관계중독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애정결핍의 개념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친구들의 SNS 메시지를 한번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약속을 거절하지 못해 쌓인 일을 미루고서라도 달려간다. 혼자 있을 땐 허전함을 견딜 수 없어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쉼 없이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잖은 에너지가 요구된다.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타인에게 에너지를 쏟는 동안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일이 장기간 반복되면서 자신의 정체성까지 혼란스러워져 판단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늘 의심한다.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거절하면 나를 미워하진 않을까?', '잘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등의 생각으로 괴로워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나'는 없어지고 '너와 함께 있는 나'만 남게 된다.

이러한 관계중독이 심화되면 정신질환인 '의존성 인격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심각한 경우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우울증을 앓던 40대 주부가 두 아들과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던 주부가 아이들을 '본인의 소유물'이라 판단하고 함께 목숨을 끊은 것이다. 지난 7월에 발생한 '울산 자매 살인사건'의 용의자 또한 피해자에게 과도한 집착 증세를 보이다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건 모두 관계중독의 극단적 결과를 보여주는 예다.

이렇게 자신과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관계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생각보다 집단의 뜻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를 강조하는 문화가 더욱 '관계'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중독을 피하려면 일단 자신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지 점검해 봐야한다. 또 타인과의 관계가 자신의 삶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관심을 주세요

관심을 갈구하는 것 또한 애정결핍의 또 다른 증상이다. 시쳇말로 '관심병'이라 부르며 이런 관심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관심종자'라고도 부른다. 한 누리꾼은 관심병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중2병과 비슷한 표현으로 관심을 먹고 살고 관심을 받기 위해 무리수를 자주 두는 사람을 지칭함.'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이 병은 결핍된 애정을 다른 방향으로 채우려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은 관심병에 가장 근접한 개념이다. 딱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타인의 관심을 끌기위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자해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이들의 목표는 타인의 관심이다. 어린 시절 아팠을 때 주위 사람들이 쏟았던 사랑과 관심을 잊지 못해 사랑받고 싶을 때마다 꾀병을 부려 관심을 끌려 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늘 알리려 한다. 심각한 경우에는 기절, 실어증, 기억상실증 등과 같은 증상을 연기하면서까지 관심을 유도한다. 이는 가까운 인터넷 댓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게시물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댓글을 달거나 공격적인 댓글을 달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른바 '관심종자'들의 '어그로 댓글'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리는 '나 아프다' 식의 글이나 '허세글'을 올려 주변 사람들의 댓글을 유도하는 행동 또한 뮌하우젠 증후군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생물이 진화하듯 질병도 진화한다.

'뮌하우젠 신드롬 바이 프록시(Munchausen Syndrome by Proxy)'라 불리는 이 증후군은 뮌하우젠 증후군보다 더 무섭다. 'MBP'라 줄여 부르는 이 증후군은 '아픔'의 주체를 본인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인물, 혹은 애완동물로 설정한다.

우리 아기, 입이 심심한가 보구나. 엄마가 뭐 좀 줄까? 엄마가 종이성냥을 꺼내 조심스럽게 뚜껑을 젖히자 빨갛고 선명한 두 줄의 작은 성냥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가 늘 내게 주던 익숙한 것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나는 엄마를 위해 깔끔하게 한 갑을 다 먹어치웠다. - 『병든 아이』, 줄리 그레고리, 2007

책의 저자 줄리 그레고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아프기를 '강요'받았다. MBP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희생양이 되어 20여 년간 '병든 아이'로 길러졌던 것이다. 쉽게 말해 MBP는 남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타인을 괴롭히는 증세다. 대상을 고의로 아프게 만든 뒤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준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하고 격려하는 시선을 즐기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뮌하우젠 증후군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집단 내에서 동료들 사이를 이간질한 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사로 나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남녀사이에서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난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애인에게 동정과 관심을 얻으려 한다. 이와 같은 증상을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애정결핍이 의심되는 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학대와 무관심으로 비롯되는 애정결핍도 있지만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난 인간이 홀로 서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애정결핍을 택할 수도 있다. 애정결핍이 사랑 받는 정도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예다. 결국 애정결핍은 자신의 자존감과 연결된다. 과도한 자기 애착은 병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자기 비하 또한 병을 부른다. 애정결핍이란 자신을 채우지 못해 나타나는 자괴감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자. 당신의 애정결핍이 극단적 선택을 부르기 전에 마음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글 = 박성훈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 권화진 기자

동아대학보 제1097호 2012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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