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힐링이 필요해
[기획]힐링이 필요해
  • 서성희
  • 승인 2012.10.1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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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킬링(killing)' 사회다. 각박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만성피로와 우울증,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실태조사'를 보면 18세 이상 성인 중 '최근 1년간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은 약 519만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행복지수 26위,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경제는 발전하고 속도 경쟁은 점점 치열해진다. 눈뜰 새 없이 바쁜 현대인들은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만 한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청춘들은 청년실업의 벽을 넘어야 하고 정규직이라는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이런 무자비한 킬링 속에서 최근 '힐링' 바람이 불고 있다. 경쟁과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이 마음의 치유와 위안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 사회 전반에 불었던 '웰빙' 열풍이 이제는 힐링 열풍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늘날 힐링은 우리 생활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SBS TV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힐링 트렌드를 따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촬영장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고, 게스트와 사회자, 그리고 시청자까지 모두 치유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다. 지난 7월 방송된 안철수 편은 18.7%의 시청률을 올리는 등 현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서점가에서도 힐링 열풍은 마찬가지다. 교보문고와 인터파크 도서의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집계에는 다수의 힐링 관련 도서가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출간 7개월 만에 100만 부를 판매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는 것도 힐링 열풍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음반계에서도 힐링은 흥행 보증수표다. 지난달 20일 가수 나얼의 앨범 'Principle of My Soul'은 음원 공개 직후 멜론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 나얼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음악을 통한 영혼의 치유"라고 밝힌 바 있다. 공연 무대에도 이런 바람은 이어져 관객들의 치유와 위로를 목적으로 공연 이름에 '힐링'을 내걸고 있다.

힐링 열풍은 레저에까지 미쳤다. 한국여행관광공사는 트래킹, 휴양림 체험 등을 모아 '힐링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지난 6월 산림청은 2017년까지 전국 34곳에 '치유의 숲'을 확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힐링 캠프의 시초인 템플스테이를 찾는 발걸음은 연 2,558명이었던 10년 전에 비해 급증하여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방문객만 8만8,896명에 달했다.



▲나얼의 앨범 'Principle of My Soul'

10년 전 우리 사회에는 '웰빙' 열풍이 불었다. 웰빙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지향하는 삶의 유형이다. 좋은 것을 입고 먹으며 좋은 환경, 즉 깨끗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웰빙을 넘어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힐링(healing)'이 뜨고 있다. 웰빙이 신체의 건강함을 의미한다면, 힐링은 마음의 위안과 치유를 포함한 개념이다.

왜 '힐링'인가?

웰빙 바람은 '빠름'과 '성장'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사회에서 '건강, 휴식, 자연, 행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풍요롭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고자 했다. 그렇다면 웰빙으로 대한민국은 행복해졌을까? 우리 사회의 실태를 드러내주는 각종 수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해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상위 20%의 1인당 연간소득은 1999년 5,800만 원에서 2009년 9,000만 원으로 10년 새 55%나 늘어 대부분 억대 수입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하위 20%의 1인당 연간소득은 같은 기간 306만 원에서 199만 원으로 35%나 급감했다. 하위 소득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맺힌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소득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취업의 벽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청년들은 그 벽을 넘기 위해 스펙 쌓기에 바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취업률 통계에 따르면 전국 558개 대학 졸업생 약 49만 명(군입대자, 대학원생 제외) 가운데 취업자는 약 29만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0만여 명은 졸업과 동시에 청년백수로 전락한 것이다.

잔혹한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사람들이 건강에 주목하면서 바로 웰빙 열풍이 시작됐다. 이들은 건강한 신체를 되찾아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갈수록 양극화는 심화됐고 청년은 고달파졌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된 현대인들은 점점 지쳐갔고, 지친 마음을 치유 받고자 했다. 힐링 열풍은 그렇게 불게 됐다. 현실에서 얻은 상처를 치유 받고자 하는 열망이 현재의 힐링 열풍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힐링은 히어링(Hearing)에서부터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 헌팅은 수학 천재다. 하지만 괴팍한 성격 때문에 매번 말썽을 일으키는 사고뭉치이기도 하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MIT 교수 램보는 윌을 새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유명한 심리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게 한다. 심리학자들은 최면, 상담 등을 통해 윌을 제어하려 하지만 모두 괴팍한 그를 당해내지 못한다.

결국 윌 헌팅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심리학 교수 숀 맥과이어였다. 숀은 윌에게 최면과 같은 특별한 정신과 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는다. 그저 윌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윌을 치유한 사람은 지체 높은 학자들이 아니라 옆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아픈 과거에 함께 슬퍼했던 숀이었던 것이다.


▲영화 <굿 윌 헌팅>의 한 장면

오늘날에도 '윌 헌팅'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들은 현재 겪고 있는 아픔에 불행해 한다. 이를 해소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들의 아픔을 매만져주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힐링은 '답'에 있지 않다. 바로 아픔에 공감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에 있다. '힐링캠프'를 보라. 방송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람은 사회자가 아니라 게스트(guest)다. 게스트는 자신의 말에 경청하는 사회자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는다. 사회자는 게스트가 속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만 조성할 뿐이다.

산업화는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경쟁사회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다루는 경향을 일반화시켰다. 그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 상처를 치료하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또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겸손과 정숙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신을 자랑하고 홍보하며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시대다. 이런 시기에 정작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힐링을 더 갈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적인 영역이면서도, 서로 공유하고 열람할 수 있는 공적인 영역인 SNS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밝히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은 심리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힐링 서적이나 힐링 음악 등의 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공간적 제약으로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힐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여유 속에서 바쁜 일상 속에 묻어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테라피(therapy)'는 상처에 가해지는 구체적인 치료 행위를 의미하고, '힐링'은 이를 통해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을 뜻한다. 테라피의 경우 구체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고 치료행위를 한다면, 힐링은 치료방법을 제시해주기보다는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일시적이고 즉각적인 답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힐링은 치유 과정이며, 그 과정은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고 이를 노출하면서 이루어진다. 결국 답은 외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힐링은 바로 우리의 내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글 = 이슬기 기자
일러스트 제공 = 박미지(패션디자인학 3)

동아대학보 제1098호 2012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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