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vs기자]혼전동거, 약인가 독인가?
[기자vs기자]혼전동거, 약인가 독인가?
  • 서성희
  • 승인 2012.10.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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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유교의 영향 아래 있었던 우리 사회는 혼전 동거를 금기시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거 인구가 늘어나고, 그에 비례해 동거에 대한 편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러한 추세에 대해 '개인의 자유'라고 지지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법제도의 부재'를 이유로 혼전 동거에 반대하고 있다. 이번 '기자vs.기자'에서는 '혼전 동거'를 주제로 논쟁을 펼쳤다.

동거는 선택의 영역

복고 열풍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최근 종영했다. 마지막 회는 두 남녀 주인공이 동거, 임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결혼 과정을 보여줘서 많이 공감했다"며 행복한 결말에 대해 만족했다. 지난 2003년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가 동거를 미화한다며 비난받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혼전 동거를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 전통과 예식을 중시하던 과거 우리 사회는 동거를 금기시했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생활관이 널리 퍼지고 폐쇄적이던 성(怯)문화가 조금씩 개방되면서 동거는 '금기'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이는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온라인 설문조사 기업 '두잇서베이'가 남녀 네티즌 2,5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결혼 전 동거 경험 후 실제 결혼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기·미혼 응답자의 60%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또 지난해 한국대학신문이 전국 남녀 대학생 2,0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8%가 "결혼이나 사랑이 전제된다면 혼전 동거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변화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동거는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 이혼한 11만4,284쌍의 부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성격 차이'를 이혼 사유로 꼽았다. 혼전 동거는 사전에 서로에 대해 알 수 없었던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외에도 결혼 후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문화적 갈등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예방주사' 역할도 할 수 있다.

또 헌법의 제한을 받지 않아 개인은 기존의 결혼제도가 주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구속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동거는 그러한 결혼의 절대성을 띠지 않는다. 게다가 관성처럼 굳어버린 부부의 역할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동거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문제다. 하지만 성(怯)에 폐쇄적이었던 과거의 통념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동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보수적인 태도는 동거의 장점을 무시하고 단점만을 극대화함으로써 제대로 된 토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동거에 대한 일방적 편견을 걷어내는 순간 우리는 합리적으로 동거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미 기자
hakbojwm@donga.ac.kr


아직은 시기상조

지난 1월 전남 순천에서 동거 중이던 한 쌍의 남녀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 사이에는 한 살배기 아기가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양육비 마련을 위해 노력했지만 때마침 닥친 불경기와 한파 때문에 수입이 늘지 않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이의 어머니도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3월에는 전북 부안의 30대 동거 남녀도 생활고에 시달리다 함께 자살했다.

최근 동거에 대한 인식이 예전에 비해 관대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동거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동거 남녀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헌법은 동거를 가족의 형태로 인정하지 않아 동거 가정 내 사건사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보호해줄 수 없다.

동거가 일반화된 유럽에서는 법적 장치를 통해 동거 가정을 보호하고 있다. 프랑스는 동거 남녀를 결혼한 부부와 똑같이 지원한다. 이들은 자녀를 가질 수 있으며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보호받을 수도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동반자 등록법'을 제정해 결혼 부부와 똑같은 법적 의무와 권리를 부여한다. 또 스웨덴에서는 동거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동거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동거 남녀는 각종 사회보장은 물론 세제 혜택, 배우자 상속 등 재산 관련 보장을 받지 못한다. 특히 보금자리주택의 경우 적법한 혼인신고를 거친 가정에게만 청약 자격을 주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도 정식 가정을 우선으로 해 동거 남녀가 주택을 임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뿐만 아니라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도 부양가족에 대한 인적공제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동거 남녀가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생활비와 주거지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거 남녀 사이의 책임감이 비교적 약하다는 것도 문제다. 결혼한 남녀는 혼인신고를 통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도 부여받는다. 반면 동거는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다보니 성적으로도 무책임해질 수 있다. 동거는 두 사람의 합의하에 이루어지지만 법적으로는 책임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낙태나 갓난아기 유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한사회복지회 관계자는 "최근 가벼운 성문화로 미혼모들이 늘고 있고 아이를 입양시키려는 미혼모도 급증하고 있다"며 "이중에는 동거를 통해 임신을 한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그 실태를 밝힌 바 있다.

동거의 전제는 '사랑'이다. 하지만 이들을 안정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외면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안정된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혼전동거는 시기상조다.

이슬기 기자
hakbols@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8호 2012년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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