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김부장, 영남대로를 가다 ② 밀양 영남루 ~ 팔조령
[연재]김부장, 영남대로를 가다 ② 밀양 영남루 ~ 팔조령
  • 서성희
  • 승인 2012.10.11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밀양 영남루의 모습.

한양 천 리 길을 가려면 적당한 때에 쉬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반 백성들은 아름드리나무가 주는 그늘과 넙데데한 바위가 만든 자리에 기대 쉬어간다. 하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고관대작들이 길가에 퍼질러 앉아 쉴 수는 없는 노릇. 밀양 '영남루'가 바로 그들을 위한 쉼터 중 하나다. 영남루는 논개의 충절로 유명한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3대 명루에 속한다.

7월 말의 볕은 축축한 빨래가 한 시간이면 마를 정도로 뜨겁다. 영남루에 오르니 밀양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영남루가 만들어 낸 그늘 덕분에 더위가 가신다. 지금은 모든 이들에게 개방돼 있지만 이런 정취를 고관대작들만 독점했다고 생각하니, 순간 분통이 터진다. 아마 무언가를 독차지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더위에 지친 몸을 영남루에 뉘었다. 천장에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 '강성여화(江城妊畵)' 등의 현판과 여러 시문들이 걸려 있었다. 영남루의 깊은 정취에 감탄한 소인묵객들이 남긴 것들이란다. 그 중 특히 영남제일루라는 현판의 글씨는 당차고 거센 힘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겨우 11살짜리 소년이 쓴 글씨란다. 기자의 삐뚤빼뚤한 글씨와는 천양지차다. 서너 시간을 영남루에 있으니 한양 천릿길을 한달음에 갈 수 있을 듯하다.

선조들의 발로 만든 영남대로는 1905년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밀양을 지나 청도로 가는 길에 위치한 상동터널은 경부선 철도의 일부로 영남대로 위에 세워졌다. 상동터널은 우리나라에 대한 일제의 억압을 상징하는 곳이다. 1940년대 경부선 복선화 사업 이후 철도가 이전되면서 상동터널은 도로가 됐고 직접 거닐 수도 있게 됐다. 어두컴컴한 상동터널 속에 있으니 옛 선조들의 아픔보다는 터널이 주는 시원함이 먼저 느껴졌다. 지금의 기자처럼 많은 이들이 역사를 기피하고 현재의 즐거움에 취한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친일파들의 만행을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영남대로를 걷는 이 걸음에 어떤 역사적 사명이 덧씌워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 영토는 70%가 산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고로 한양으로 가는 길을 단축하려면 산을 넘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산길을 '고개'나 '재'라고 부른다. 팔조령(八助嶺)은 영남대로에 속한 고개들 중 첫 번째로 넘어야하는 곳이다. 팔조령은 산적들이 들끓어 여덟 명이 모여 서로 도와야 고개를 건널 수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반면 팔조령 아래 마을에서 만난 허만호(경북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팔조령은 풍수지리적으로 여덟 개의 산이 서로 도움을 주는 형세로 이뤄져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팔조령이란 이름이 가진 다양한 유래는 흥미롭다. 다양하다는 것은 누구든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틈이 넓다는 뜻이다. 단 하나로 굳어진 길은 재미가 없다. 문득 지금을 사는 청년들이 떠오른다. 도서관이나 열람실을 지나다보면 임용고시나 공무원 시험, 아니면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밤새 공부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안정된 직업'이란 미명 하에 한 가지 길로 자신들을 우겨넣고 있다. 팔조령이란 이름이 가진 다양한 유래처럼 우리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졌다. 각자에게 어울릴 다양한 길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단 하나의 길은 결코 재미가 없다.

<다음 호에 계속…>

김무엽 기자
hakbomyk@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098호 2012년 10월 8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 (하단동) 동아대학교 교수회관 지하 1층
  • 대표전화 : 051)200-6230~1
  • 팩스 : 051)200-62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영성
  • 명칭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제호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이해우
  • 편집인 : 권영성
  •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동아대학교 다우미디어센터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