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0호 특집]부산시 미디어센터장 차용범 전(前) 동아대학보 편집국장
[제1100호 특집]부산시 미디어센터장 차용범 전(前) 동아대학보 편집국장
  • 서성희
  • 승인 2012.12.0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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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이 녹아 있는 학보와의 추억




▲ 제438호(1979년 11월 22일)에 실린 차용범 동문의 기사.

<동아대학보>가 1100호에 이르렀다. 햇수로 65년 동안 학보를 거쳐 갔던 많은 기자들은 사회 곳곳에 진출해 자리 잡고 있다. 부산광역시 미디어센터장을 맡고 있는 차용범(법학 73학번) 동문 또한 본지 기자로 활동했다. 차용범 동문은 제20대 <동아대학보> 편집국장을 지낸 뒤 〈부산일보〉, 〈부산매일신문〉에서 언론인의 삶을 이어갔다. 제1100호를 맞아, 선배 기자이자 현 부산시 미디어센터장(부산시보 '다이내믹 부산' 편집주간) 차용범 동문에게 본지의 과거와 미래를 물었다.

차용범 동문의 학보 기자 생활은 1973년에 시작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 시절, 차 동문은 학보사 주간교수와 선배들의 꼬임(?)에 넘어가 기자 활동을 하게 됐다. "처음엔 술도 주고, 밥도 주고, 월급도 준다는 말에 혹해 학보사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학보사 일이었지만 허투루 활동하지는 않았다. 자유언론을 추구하는 학보사였기에 사회를 비판하는 기사와 학내를 감시하는 기사를 과감히 썼다. 대학당국은 <동아대학보>를 '언론'으로 인정해 취재에 상당한 자유를 허용했고, 학보사는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취합을 위해 출입처별로 담당기자를 배치했다. 기자들은 학교기구와 보직교수를 상대로 자유롭게 취재원과 취재기자의 관계를 유지하며 좋은 기사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다. 편집국장 시절의 차 동문 또한 기사를 위해서라면 주간 교수와의 의견충돌도 불사했다. 당시 주간교수와는 술자리도 자주 가지며 신뢰관계를 유지했지만 민감한 기사에 대해 주간교수가 대학당국 측 입장을 반영하려 할 때면 여지없이 기사를 놓고 '밀당'을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1970년대 당시의 <동아대학보>는 대단한 위상을 자랑했다. 차 동문은 "학생들이 줄을 서서 학보를 받아 갈 만큼 수요가 넘쳐 학생별 배부카드에 스탬프를 찍고 한 부씩 나눠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같은 영향력을 자랑하던 학보였지만 사고가 터지면 교내기구라는 한계에 부딪혀 가볍지 않은 곤욕도 치렀다. 차 동문은 학보 기자 활동 중 터진 한 사건을 아직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꼽았다. 학보 기획연재에서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차 동문은 퇴학처분을 받았고 강제로 떠밀리듯 군에 입대했다. 당시 교수들과 함께 처분에 대해 항의했었지만 그 시절은 '살벌한' 시대였다. 징계 수위는 변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입대한 뒤, 대학 당국이 퇴학처분을 무기정학으로 다시 유기정학으로 징계를 완화해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언론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학교의 배려 덕이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무렵에 쓴 '학풍의 재음미/'동아'전통의 의미…어제와 오늘' (1979.11.22, 개교 33주년 기념호)기사에서 모교에 대한 구구절절한 애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차용범 동문은 '대학언론 위기'에 직면한 본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차 동문은 "위기라고 '쫄'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해답은 콘텐츠의 힘이라고 역설했다. "라디오는 라디오대로의, TV는 TV대로의, 신문은 신문대로의 기능을 가진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전통적 유력지들도 온라인 구독자를 늘려가며 부수를 확장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힘이다." 차용범 동문은 "읽어야만 하는 콘텐츠, 나아가 읽지 않고는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의 콘텐츠를 학보에 담는다면 충분히 독자를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학보사와 방송국이 통합돼 출범한 '다우미디어센터'에 대해 "매체융합의 시대에 신문, 방송, 인터넷의 통합운영은 발 빠르고 당연한 대응이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와 함께 통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플랫폼의 융합'과 '독자와의 융합'이라는 과제 또한 함께 제시했다.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언론계에 많이 도전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 모교에 되돌려 줄 것이 있으면 돌려주고 싶은데 다른 직업은 그 방법이 쉽지 않다. 그러나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교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문이 학교를 담당하는 기자라는 것은 상당한 보탬이다."

차 동문에게 있어 우리 대학은 때로는 서운함을 안겨줬던 모교지만, 언제나 자랑스러운 모교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동아대 또는 <동아대학보> 출신임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차 동문은 <동아대학보> 기자 경험을 정말 소중하게, 또 우리 대학의 일원임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천상 '동아인'이었다.

박성훈 기자
hakbopsh@donga.ac.kr

동아대학보 제1100호 2012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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