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존엄사 인정 판결, 그 의미와 과제
대법원 존엄사 인정 판결, 그 의미와 과제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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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9년 06월 0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21일 "생명권은 절대로 침해될 수 없으나 품위 있는 죽음 역시 생명권 못지않게 존중되어야 한다"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한 환자의 가족이 대학병원을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제거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9대4 의견으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의 조화가 핵심인 이번 판결의 의미는 그동안 대법원이 견지해 왔던 '생명권 절대 불가침'의 대원칙을 변경했으며, 생명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처음으로 인정했고, 입법 미비와 현실의 괴리를 적극적인 법해석을 통해 메우면서 '사법적극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에 있다.

환자의 생존가능성과 자기결정권을 두 가지 요건으로 제시한 이번 판결은 '존엄사' 논란의 마침표가 아니고, 새로운 논쟁의 시작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죽을 권리에 대한 합법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법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점을 지적해 보면, 첫째, 조력 자살과 존엄사를 합법화하기 전에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통증 완화 치료를 보장 받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WHO 권유 사항). 고통 경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존엄사 선택을 부추길 수 있고, 또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존엄사의 대상이 되는 환자의 기준, 대리인 선정문제, 연명치료의 범위 등 세부적인 문제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경시풍조가 확산될 수 있고, 또 의료진에게 치료중단을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셋째,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명문화해야 한다. 특히 환자의 추정적 승낙을 객관화할 수 있는 항목들을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환자의 가족이나 주변에서 환자의 뜻과 다르게 존엄사를 남용할 수가 있다.

넷째, 존엄사 판정은 병원과 법원이 각각 해야 한다. 환자에 대한 제1차 판정은 병원윤리위원회에서 하고, 제2차 판정은 관할 법원에서 내리도록 입법이 되어야 한다. 치료중단은 환자의 사망과 직결되기 때문에 통일된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것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극명하게 갈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존엄사 법제화 문제는 서두르되 졸속 입법은 안 된다. 우리 실정에 맞는 엄격하고 실용적인 법 제정이 필요하다. 존엄사는 생명윤리적 판단, 의료적 판단, 법적 판단, 국민적 공감대,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복잡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동아대학보 제1071호 (2009.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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