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대한 사회를 기대한다
관대한 사회를 기대한다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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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9년 10월 09일


학식과 덕망을 갖춘 영국신사 몇 사람이 모여 유럽인들의 민족성을 국가별로 거론하며 폄하시키고는 영국인의 민족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좌담모임에서,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라는 영국 문인은 유럽 타민족의 장점을 열거하면서 영국인의 단점을 제시해 좌중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어떻게 정부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자기 나라를 저토록 싸잡아 험담할까', '도대체 애국심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사람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그 파렴치함은 어디서 나올까' 등의 의구심으로 자기를 취급한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골드스미스는 「민족적 편견」('National Prejudice')이라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밝힌 적이 있다.

신사연하는 영국인들의 태도는 내세울 것 없는 개인을 자기보다 나은 집단 속에 편입시키려는 열등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온 세상이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렸던 20세기 초반의 일이다. 그야말로 전근대적인 과거의 한 시대적 단면이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일들이 현재의 우리사회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얼마 전 어느 인도인 연구교수에게 차별적인 모욕을 해 고소를 당한 한국인이나, 현란한 춤과 노래솜씨로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보이그룹의 한 멤버가 자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옛날의 발언으로 인해 이 땅을 떠난 사건을 보면, 우리사회에서 변화하는 시대의 시계추를 붙잡고 늘어지는 망령을 보는 것 같아 아주 불편하다. 이 사건은 유명방송국 시사프로그램의 이슈로까지 부각되었고, 오역 논란이나 무차별적 애국주의, 악성 댓글, 소속사의 노이즈마케팅, 극성 팬덤(fandom) 등과 맞물려 확대 재생산된 갖가지 기사와 말들이 힘을 더하면서 그야말로 '무서운 한국인들'이라는 이미지를 외국인들에게 각인시켜놓고 말았다. 같은 땅에 살면서도 동일한 혈통의 이민자에게는 애국심을 강요하고 혈통이 다른 외국인에게는 철저한 배타심을 표출하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한 국가에 속하는 국민이 자신의 국가에 애착심을 가지고 국가의 운명을 자기의 운명과 같다고 여기는 감정을 나쁘다고 탓할 수는 없다. 이러한 감정은 아주 오래 전에 사람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내집단에 대한 연대감이 표출된 미개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맹목적 애국심까지 동원해야 했던 독립운동 시절도 아니고, 타국과 전쟁 중인 시기도 아니다.

소위 글로벌 환경의 다문화시대에 살면서 이제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게 한 몹쓸 군중심리와 비뚤어진 자아를 집단에 매몰시키려는 왜곡된 귀속감을 버리고,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동아대학보 제1073호 (2009.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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