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상품과 작품
[철학+]상품과 작품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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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9년 09월 10일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미술 작품들이 이른바 옥션을 통해 활황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런 와중에 삼성 그룹의 수뇌부, 특히 최고 경영자의 부인이 차명계좌를 통해 마련된 비자금으로 고가의 세계적인 미술 작품들을 구매했다고 해서 나라가 시끄럽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뛰어난 예술 작품을 구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면, 당사자의 예술에 대한 충동이 엄청나다 할 것이다. 그런 점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 결국은 안정성이나 환금성 그리고 수익성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상품을 구매한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앤디 워홀(Andy Worhol)과 같은 팝 아트(pop art) 작가들 때문에 예술 작품이 상품으로 둔갑하고, 상품이 예술 작품으로 행세하게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또한 그렇지 않다고 전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앤디 워홀의 팝 아트 작품들은 예술적인 힘으로써 상품 세계를 침범하여 전혀 다르게 변형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워홀은 상품에 매설되어 숨겨져 있던 작품으로서의 측면을 발견하여 드러낸 것이다.      

이래저래 상품과 작품 혹은 작품과 상품 간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허물어지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특정 상품이 작품으로 취급되고 또 어느 예술 작품이 고가의 상품으로 거래된다 할지라도 상품과 작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짧은 지면이라 간단하게 말하면, 상품은 교환을 통해 그 가치가 성립하고 작품은 잉여를 통해 그 가치가 성립한다. 또 상품은 욕망을 통해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작품은 충동을 통해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 상품은 기호(기표)적인 성격이 강한데 반해, 작품은 감각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상품은 이미지적인 측면이 강한데 반해, 작품은 물질적인 측면이 강하다. 상품은 교환의 무한한 네트워크를 통해 성립하기 때문에 그 자체 항상 결여를 수반할 수밖에 없지만, 작품은 교환을 통해 담아낼 수 없어 남아도는 잉여의 흐름이기 때문에 항상 충일을 수반한다. 상품은 우리 자신을 사물들의 표면 위를 떠돌게 하지만, 작품은 우리 자신을 사물들 속으로 밀어 넣어 몰입케 한다. 상품은 타자와의 관계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데 반해, 작품은 독자적으로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데서 성립한다. 상품은 충족될 수 없는 의미를 향해 있지만, 작품은 이미 충일한 것으로서 의미와 무의미의 갈래를 넘어선다.  

상품과 작품에서 성립하는 이러한 대립적인 관계들은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심중한 사태를 생각하게끔 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상품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작품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상품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게 되면, 우리 자신은 기표로서 이미지로서 철저히 교환되는 대상으로서 늘 결여에 시달리면서 사물의 표면 위를  미끄러지면서 떠도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의미 여부에 시달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 자신을 작품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게 되면, 우리 자신은 감각덩어리로서 때로는 과잉을 향해 충일하게 흘러넘치면서 타자들과의 교환 관계들로 결정될 수 없는 독자적인 잉여를 향유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의미와 목적을 넘어선 존재가 될 것이다. 상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작품이 될 것인가?
 


 
琅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장.
대표적인 저서로는
<쉬르필로소피아: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동녘, 2000),
<몸의 세계, 세계의 몸>(이학사, 2004),
<미술속, 발기하는 사물들>(안티쿠스, 2007)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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