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인간은 과연 신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
[철학+]인간은 과연 신 없이 존재할 수 있는가?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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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9년 09월 10일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철학적인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의 제목을 본 순간 니체가 말한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라는 언명을 떠올릴 것이다. 신만 죽었다고 선포된 것이 아니라, 니체는 인간을 대지의 부스럼딱지와 같다고 하여 인간의 죽음도 함께 선포했다. 니체가 죽은 해부터 20세기가 펼쳐지고 '우리의' 20세기가 반쯤 지났을 때 구조주의적인 사유가 나타나 롤랑 바르트나 푸코의 입을 통해 "인간은 죽었다" 혹은 "인간은 파도에 쓸려 없어지는 모래 위의 발자국과 같다"라는 언명을 한 것은 니체가 선포한 인간의 죽음을 변형시킨 것이라 할 것이다.

니체에서부터 진단된 신과 인간의 '동반 사망'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묻게 된다. 신이 죽으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과연 누구인가? 신에 얽매여 신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런데 구조주의자들이 인간의 죽음을 설파하기 수십 년 전에 이미 신은 죽고 없었다. 그렇다면 신이 죽고 없는데도 따라 죽고만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신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형성하여 찾아나가는 이른바 실존적 주체로서의 인간이다. 이 실존적 주체로서의 인간은 니체가 말한 '초인'의 변형이다. 

여기서 '초인'은, 신이 없기에 매우 우울하게 삶을 저주하면서도 부정적인 방식으로 꾸역꾸역 생존만 하는 인간이 아니다. 초인은 신의 죽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대지에서부터 우주 전체로 울려 퍼지는 감각적인 리듬을 온몸에 채우고 넘쳐나는 삶의 희열을 스스로 만끽하는 '인간을 넘어선 인간'이다. 이른바 온 우주의 음악에 몸을 드리워 함께 전율하는, 감각적으로 넘쳐나는 존재 전체의 시공간을 자신의 몸에 응축시켜 폭발 직전의 전율을 향유하는 인간을 넘어선 인간이다. 

그렇다면 과연 초인의 존재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구조주의자들은 그런 인간은 불가능하다고 일종의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인간이란 사회 전체적인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그 구조를 이루는 거대한 그물의 한 가닥 매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이 구조를 이루는 교환 구도의 근원성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가상에 불과하다고 말한 셈이다. 자본주의를 염두에 둘 때, 만약 이러한 대대적인 교환 관계의 구조를 신의 옥좌라고 한다면, 그 신은 바로 자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히도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을 죽임으로써 신이 살아있음을, 신이 없이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음을 역설한 셈이다.  

하지만 포스트구조주의는 대대적인 교환 구도에서 발원하는 구조주의적인 진단, 즉 초인의 불가능성이 오진이었음을 알린다. 료타르는 대대적인 사회 구조의 원리를 제시하는 이른바 '거대 서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자본주의적인 교환 구도의 촘촘한 그물을 벗어나 그러한 구도를 만들어내는 기관들이 전혀 없는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삶의 근본을 들여다보고 역설하는 데 있어서 정확히 니체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들뢰즈의 예술 중심의 존재론이 암암리에 우리 시대의 늑골을 진동시키면서 울려 퍼지는 것은 이제야말로 우리가 신을 확인사살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총성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신은 죽었는가? 이 물음은 이제, "우리는 자본으로 부활한 신에 얽매이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에둘러 보면,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한 것은 자본이 신의 옥좌를 찬탈했기 때문이다. 신의 옥좌가 있는 한, 언제든지 신은 변신할 뿐 항상 되살아난다. 그러고 보면, 진정 신을 살해하기 위해서는 신의 옥좌를 불태워버려야 한다. 신의 옥좌는 과연 신을 믿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부스럼딱지 같은' 인간 외에 그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러기에 신을 죽이는 것보다 인간을 죽이는 것이 훨씬 근본적이고 힘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현대 사상의 반인간주의(anti-humanism)가 인간의 계몽적 이성을 내세워 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것에 비해 어떻게 더 근원적으로 신을 살해코자 하는 것인가를 알게 된다.

 


<필자 약력>
? 현재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장.
대표적인 저서로는 『쉬르필로소피아: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동녘, 2000), 『몸의 세계, 세계의 몸』(이학사, 2004),『미술속, 발기하는 사물들』(안티쿠스, 2007)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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