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좋은 우리 영화가 보고 싶다
[시론]좋은 우리 영화가 보고 싶다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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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8년 09월 04일

 


 박인호 교수(생명과학과)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는 매우 탄탄한 구성에 등장 배우들이 과학수사의 현장을 아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자주 본다.

얼마 전 한국판 CSI라며 KPSI가 나왔는데 내가 보기에 플롯이 엉성하다. 등장하는 형사의 언행도 천박하고, 과학수사요원의 과학자 흉내도 어설프다. 플롯과 연기가 어색한 것은 돈 문제가 아니다. 다른 장르의 우리 영화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 영화를 자주 봐 줘야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기는 해도 즐겨 볼 우리 영화가 없다. 특히 CSI와 같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전무하다.

내가 우리 영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행하게도 '조폭'이다. 내 눈에는 한국영화의 90% 이상이 '조폭스러운' 영화로 보인다. 요즘 뜨는 '놈놈놈'도 그런 류인데 오래된 마카로니 웨스턴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를 패러디한 것이다.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좋은 놈이고, 다른 두 총잡이가 추악하고 나쁜 놈이다. 세 '놈'은 모두 총질로 먹고 사는 작자들이니 그 놈이 그 놈이다. 존 웨인이 주인공인 정통 서부극은 상당히 신사적이고 권선징악적인 면이 있는데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넘어가면 이처럼 지저분해진다. 젊은시절 그 영화가 상당히 인기였던 기억이 나는데 요즈음 그것을 패러디한 영화가 뜬다니 세월이 가도 우리들은 참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조폭스러운(?) 영화가 대체로 흥행에 성공하는 까닭이 뭘까.

전체 국민의 20%가 한 영화를 돈 내고 보는 희한한 현상은 상당한 연구가치가 있을 것인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또 조폭영화가 아주 나쁜 영화라는 것을 지적하는 평론가도 거의 없다. 비전문가인 내 생각에 그런 영화는 한 사람이 여러 번을 보았을 가능성이 많고, 그 사람은 시간이 남아돌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며, 매번 다른 사람과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조폭영화가 대체로 저질이라는 것도 누구나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눈 감고 대사만 들어보면 된다. 'X발', 'X같은' 등등 보통 사람이라면 입에 담기 거북한 욕설을 경찰이나 양아치 모두 마구 뱉어낸다.

헐리우드 조폭 영화들은 대체로 정의로운 캐릭터의 언행과 나쁜 놈의 언행을 확연히 다르게 하며 저질스러움은 나쁜 놈의 몫이다. 때로는 관객이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유력한 철학이나 문학적 의미를 갖는 대사를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아마 작가나 감독 스스로 싸구려 영화를 만든다는 자괴감을 떨쳐 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 무협영화도 한시나 고사성어 한 구절을 슬쩍 흘려 관객의 품위를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의 조폭 영화에는 정의로운 배역과 대사는 거의 볼 수 없고 오직 'The Bad'와 'The Ugly'만 있다. 이런 영화의 표적 고객은 상스러운 말에 익숙하고 그걸 들어야 공명이 오는 사람들이다. 멋모르고 극장에 들어간 관객들도 당연히 그런 저질 인간으로 대접받는다는 의미다.

이런 싸구려들을 '우리 문화'라고 아껴달라는 감독이나 평론가들은 내가 보기에 'The Ugly and The Bad' 에 딱 어울린다. 좋은 대사에 간혹 머리를 쓰게 하면서도 재미가 쏠쏠한 그런 우리 영화가 보고 싶다.

동아대학보 제1064호 (2008.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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