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동 농암종택,수려한 풍광에 매료되다
[기고]안동 농암종택,수려한 풍광에 매료되다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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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8년 11월 13일

 


 신홍철 교수(중국학부).


얼마 전 몇 분 선생님의 제안으로 안동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선생의 종택을 다녀왔다. 출발하는 목요일이 공교롭게도 비오는 날이었다. 한 달 남짓 가뭄 뒤의 반가운 단비라 오히려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상쾌한 느낌이었다. 영덕을 경유하면서 강구 바닷가 횟집에서 참가자미 회와 매운탕으로 점심을 하였다. 주인이 권하는 특산술을 기울이며 비와 안개와 파도가 어우러진 바다를 바라보니 그야말로 백로(白露 안개)가 횡강(橫江)하고 수광(水光 물빛)이 접천(接失)하는 소동파(蘇東坡) 적벽부(赤壁賦)의 묘사 그대로였다.
영덕에서 안동으로 오십천(五十川)이 흐르는 협곡 대로변에는 가뭄에 말라 일찍 든 단풍이 이제 막 오는 비에 젖어 윤기를 띠고 있었다. 영덕이 고향이지만 이 길은 거의 지나다닌 적이 없는데다 좋은 계절에 단비로 축여놓은 이런 계곡 단풍은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안동 시내를 거쳐 35번 국도를 따라 가니 우측 도로변에 농암 종택 팻말이 나왔다. 잠시 들어가니 종손 이성원 선생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우리에게 사랑채를 숙소로 내 주었다.


사랑마루에는 '적선(積善)'이라고 쓰여있는, 높이가 1미터도 넘는 큰 글씨가 벽에 걸려 있었다. 선조대왕의 어필이었다.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이미 여기가 예사로운 가문이 아님을 직감했다. 안동에는 서원과 종택은 물론 양반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니 나 같은 일반인은 알려는 엄두도 내지 못해 그냥 무관심으로 대처하는 것이 팔자 편한 것이다. 종손과 저녁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와 종손의 외가와 진외가가 서로 뒤바뀐 채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종손은 반가워하면서 어느 집안이냐고 물었다. 대구 서울 부산으로 흘러 수십 년을 보내는 동안 이처럼 구체적으로 물어온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자연 대답을 잃어 부끄럽고 답답했다. 훌륭한 가문의 종손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집안까지 상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문향(文鄕) 안동 문화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채는 열 명은 잘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바닥은 온돌로 따뜻하고 화장실에는 샤워시설과 세탁기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저녁을 마친 후 사랑마루에서 우리끼리 처마로 떨어지는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술에 젖어드는데 안채에서 과일을 내 오셨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니 아침 식사에 안동식혜가 있었다. 과거에 어머니가 해주신 것과 같은 맛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만인가. 어제 저녁 제대로 못 본 종택의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사랑채 앞에는 긍구당(肯構堂)이 있고 마당을 나가면 분강서원(汾江書院) 애일당(愛日堂) 명농당(明農堂) 강각(江閣) 등의 건물들이 차례대로 들어서 있었다. 명칭의 뜻과 지은 연대가 자세히 쓰여있었다. 들어보니 이 건물들은 안동댐으로 종택과 서원 등이 있던 옛터가 수몰되면서 이리로 옮겨 왔는데 원형 그대로인 것, 보수한 것, 새로 지은 것 등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옛터가 더 좋았겠지만 새로 선택한 여기도 전체가 배산임수의 훌륭한 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주위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운 한옥에서 지내 본 적이 없었다.


강각(江閣)에 앉아 바라보니 강 건너 물에 잠긴 산은 석벽을 이루고, 위로 안개가 덮힌 바위 위에는 가을비에 젖어 홍록으로 물든 단풍이 우거져 강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아래 물결 없이 조용히 흐르는 수면에는 주위의 고운 경치를 그대로 담아 거꾸로 비춰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내 몸과 마음이 그림 속에 들어온 느낌이고 금수산광(錦繡山光)과 유리수색(琉璃水色)을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여유를 내어서 청량산(淸 山)도 올라보고 예던길(예전길의 옛말)도 걸어보고, 도산서당(陶山書堂)의 천운대(失光雲影臺의 준말)와 천연대(失淵臺)도 거닐며 낙사무궁(樂事無窮)의 경지에 다가가 보자고 했다. 저녁에 술을 마시면서 한 선생님이 시를 지어 보라기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겨우 완성하여 나누어 읽어보면서 이번 여행을 기념하였다. 평측은 서투르고 압운은 간신히 맞추었다.

〈遊聾巖宗宅錄〉    〈농암종택 유록(遊錄 기행시)〉
霧煙兩岸楓林壁,   양 언덕 단풍 우거진 석벽에 안개 자욱하다.
賢士常來江畔閣.   옛 선비들이 강가 누각에 자주 놀러 왔으리.
不曉夜淹已醉心,   밤 깊은 줄 모르고 마음 이미 취하면서,
南來四友住一宿.   남에서 온 네 벗이 하룻밤을 묵었다.
雨後陽光照紅綠,   비온 뒤 햇살이 홍록을 비추고,
遠山近水路廻谷.   산은 멀리 강은 가까이 길은 계곡을 돈다.
歸巖承志人何知,   농암에 돌아와 선조 뜻 이음을 남이 어찌 알리오?
遊非人間旣自樂.   비인간의 별천지를 거닐며 스스로 즐거워한다.


동아대학보 제1066호 (2008.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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