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존엄한 죽음
[시론] 존엄한 죽음
  • 장소영
  • 승인 2010.05.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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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09년 03월 05일

 


송시섭 교수( 법학 )


얼마 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善終)과 장례과정을 지켜보면서 죽음이 슬픈 것이긴 하지만, 그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찌 보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지만, 자주 그 죽음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제 잘난 맛에 살아가는 범인(凡人)에게는, 문득 가까운 분들의 죽음이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한다.

얼마 전에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고등법원의 판결까지 나오자 법조계와 의료계, 나아가 사회단체까지 입법화의 시기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복가능성'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두 가지 핵심주제를 중심으로 내린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그 와중에 들려온 김 추기경의 죽음이 그 분의 평소지론이셨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반대'와 연결되어 존엄사를 더욱 옹호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분명 우리 주변에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 곁에는 입원과 치료의 과중한 부담 말고도, 평소 그 환자분의 뜻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가족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회복가능성마저 객관적인 의료기술로 희박함이 명백할 때 우린 그 환자로부터 연명장치를 제거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존엄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정범위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해 말 영국의 한 방송(Sky Real Lives)에서는 크레이그 이워트(Ewert)라는 59세의 은퇴교수가 퇴행성 운동신경질환(Motor Neuron Disease: 일명 루게릭병)에 걸린 후 영국에서는 금지된 조력자살을 행하기 위해 스위스로 가서 디그니타스(Dignitas)라는 한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자신의 입으로 인공호흡기 스위치를 끄고, 독극물을 마시고 사망했고, 이 과정이 녹화되어 방송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고든 브라운 현 총리까지 나서서 위 방송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존엄사는 조력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줄 위험이 있다. 더구나, 우리가 존엄사의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회복불가능'이라는 것도 현재의 의학수준에 기초한 것이고, 그것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도 사실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의학계 일부에서는, 이워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말기의 극한 호흡곤란증세도 모든 환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김수환 추기경도 작년 사경을 헤매다 깨어나셨을 때, '수녀, 나 살아났다'고 하셨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고, 이워트가 최후에 들었다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모든 생명이 기쁨을 마신다'는 환희의 송가로 마무리 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죽음과 생명의 경계선에 서게 되는 순간, 우린 언제나, 모든 방법을 다하여 (always and all ways) 생명을 선택하도록 노력해야 함을 두 위인은 우리에게 끝까지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숨을 건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죽음을 더욱 존엄하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동아대학보 제1068호 (2009.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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