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발소를 찾습니다
[기고]이발소를 찾습니다
  • 장소영
  • 승인 2010.05.19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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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호 교수 9국어국문학과)

 

하루 동안 기분이 좋으려면 목욕을 하고, 일주일을 기분 좋게 지내려면 이발을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아니더라도 머리카락은 매일 쉬지 않고 자라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이발을 해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이발'이다. 그리고 이발은 이발소에서 해야 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미장원'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발'과 '미장'은 다르다!

이발소에서는 남자 이발사가 쓱쓱 머리를 깎고 난 뒤, 면도사가 면도를 해준다. 그 후에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감겨주고, 말리면 끝. 미장원에서는 주로 여자 미용사, 요즘 말로는 헤어디자이너가 머리카락을 중간 중간 묶어가면서 자르고, 면도는 없으며, 머리를 뒤로 젖힌 자세를 하면 감겨준다. 음.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발'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엔 깨끗하고 개방적이며 밝은 이발소를 찾기가 참 힘들어졌다. 내가 오랜 전통이 있는 동네로 이사 가기 전에는 정말로 근처에 이발소가 없었다. 그러니 한 달에 한 번씩 고민에 빠질 수밖에. 그러나 지금 사는 동네에는 이발소가 있다. 이제 고민 끝? 이 이발소는 나이 지긋한 부부 둘이서 운영한다. 그 탓인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이발 솜씨와는 달리 가위도 수건도 청결상태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 그러면 미장원에 가면 되지 웬 푸념이냐고? 아, 불편하다니까!

이런 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것이 다양성의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저런 이유로 이발소 업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오죽하면 남포동과 중앙동 일대에 깨끗하고 개방적이며 밝은 이발소 하나가 없겠는가? (혹시 있으면 알려주세요!)

나와 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고, 따라서 이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가 원하지는 않으므로, 이발소가 옛날만큼 이익이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해서 없어지는 것일 게다.

이런 식으로 다수가 원하는 것만이 남는다면, 세상은 점점 획일화되어 간다. 그리고 소수는 무시된다. 이런 사회는 경직되기 쉬우며, 외부의 충격에 쉽게 타격을 입는다. 한 가지 해법만을 가지고 있어 변화의 바람에 새로운 해답을 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해법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충격에 부딪히더라도 기존의 해법에서 또는 기존의 해법들을 새로 조합하여 적당한 해답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이것은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유전자 다양성을 잃으면 기후가 변화하거나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맞는다. 그래서 각 생물종의 원형, 또 희귀종 생물을 많은 돈을 들여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순수를 가장한 외골수가 세상을 망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골수들은 '순수'라는 깨끗한 이름 뒤에 숨어서 다양성을 거부한다.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을 매도하며, 힘이 있을 때에는 탄압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비판할 수는 있다. 건전한 비판은 서로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단순히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도하고 모욕하며 탄압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어떤 수식어가 붙든 '자유주의'라면 더욱 그렇다. 자유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을 피력할 자유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룩되는 것이지, 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나오지 못하게 하거나 지적 수준 운운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동아인 여러분, 다른 사람의 의견과 태도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집시다. 논쟁하되, 모욕하지 맙시다.
그나저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누가 깨끗하고 개방적이며 밝은 이발소 좀 만들어줘요!

동아대학보 제1079호 (2010.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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